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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Nov 14. 2023

영화의 뒷모습

끝이 아니라는 암시와 상상의 시작

영화에서 배우의 뒷모습으로 끝나는 장면은 셀 수 없이 많다. 관객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에 배우의 뒷모습을 등장시키는 영화감독의 연출 의도는 영화의 끝이 아니라 암시와 상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2003)'에서 영화 마지막 장면으로 주연배우 송강호의  앞모습 얼굴을 선택했다. 관객을 향해 쏘아보는 듯한 송강호의 눈빛은 숨어서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범인을 향한 강한 경고였다. 처제 살인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이던 실제 범인 이춘재는 교도소에서 이 영화를 3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배우의 강렬한 앞모습은 관객을 향한 반항이자 도발적 행위로 읽힌다. 배우와 관객의 관계를 극도의 긴장으로 치닫게 하여 진한 여운을 남긴다.

범인을 쏘아보는 듯한 배우 송강호의  앞모습과 눈빛 =영화장면 캡쳐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2022)'에서 마지막 장면을 다소 난해하면서도 상상을 자극하는 남자주인공 박해일의 뒷모습을 연출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형사 박해일의 감시를 받던 여주인공 탕웨이는 부산 바닷가 백사장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밀물의 바닷물에 잠겨 숨진다. 박해일은 미제사건에 유독 매달리는 형사이다. 이 점을 알아 채린 탕웨이는 자기의 죽음을 미제사건으로 남김으로써 사랑하는 사이가 된 박해일이 영원히 자신만을 생각하며 찾도록 만들겠다는 의도로 엽기적인 죽음을 택한 것이다. '헤어질 결심'의 제목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더 극적인 것은 주인공 박해일이 바닷물이 잠긴 해안을 정신없이 헤집고 다니며 탕웨이를 찾는 뒷모습이다. 서 있는 뒷모습이 아니라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는 뒷모습… 관객은 뒷모습의 박해일이 찾고 있는 탕웨이의 죽음을 알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헤매는 박해일의 뒷모습에서 상상은 날개를 단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관객은 박해일이 미제로 남은 연인 탕웨이의 실종상태(죽음)를 밝히기 위해 평생을 찾고 그리워하며 살아갈 것이란 암시를 받는다. 이때 영화 테마곡 가수 정훈희의 노래 '안개'가 울려 퍼진다. 형사 박해일의 남은 삶에 대한 암시, 관객들 각자의 가고 오지 않는 사랑에 대한 숨겨뒀던 그리움이 저마다의 안개가 되어 자욱이 피어오른다. 그래서 영화는 끝나도 진한 여운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탕웨이를 찾아 나선 마지막 장면 중 하나인 박해일의 뒷모습=영화장면 캡쳐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의 고통, 기묘하게 얽힌 사랑과 강한 미국의 여성상을 보여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년)의 마지막 장면도 여주인공 비비안리의 뒷모습이다. 이 영화는 미국 여류 소설가 마거릿 머널린 미첼(Margaret Munnerlyn Mitchell, 1900~1949)의 방대한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영화 끝부분에 남자 주인공 클라크 케이블이 떠나자 절망하며 쓰러진 비비안리는 하늘로부터 들리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다. “타라, 타라, 붉은 흙의 땅, 타라로 돌아가라." 이때 비비안리의 각오를 다지는 앞모습이 보이며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내일은 또 다른 내일(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우리나라에서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 번역되었다. 이어서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고향을 향해, 미지의 내일을 향해 우뚝 선 비바인리의 뒷모습이 연출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녀가 다시 일어서 남북전쟁으로 상처 투성이인 미국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지금의 미국이 가냘프고 예쁘기만 할 것 같은 어머니들, 남편을 잃고 절망에 빠질뻔한 그 여성들이 일으켜 세웠다는 역사성을 일깨운다. 뒷모습이 전하는 강렬한 암시와 메시지이다.

붉은 땅 타라 고향집을 향하는 비비안리의 뒷모습=영화장면 캡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의 마지막 장면도 여주인공 오정희의 뒷모습이다. 한이 있어야 노래를 잘할 수 있다는 비정한 아버지의 독단으로 독한 약을 먹고 눈이 먼 오정희. 창을 하며 떠돌다 아버지를 잃고 남동생마저 자신을 떠나자 우연히 어느 홀아비를 만나 그 집에 기거하며 3년을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남동생과 하룻밤을 지내며 남동생 북소리 장단에 맞춰 창을 다시 부르는 시점을 계기로 홀아비와 이별하고 운명 같은 유랑을 또 시작한다. 눈먼 그녀는 열 살 남짓한 여자아이를 앞세우고 지팡이에 의지해 눈송이가 날리는 추운 겨울날 아득한 길을 간다. 빨간 외투를 입은 어린아이를 앞세운 그녀의 뒷모습, 아이의 뒷모습, 가사 없이 소리만 들리는 애끓는 서편제 노래가 묘하게 어우러져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오정희의 묵은 한, 앞으로 오정희처럼 될지도 모르는 빨간 외투의 어린 여자아이의 운명, 누구나 살아오면서 가슴속에 묻어둔 한, 그 한들이 서로 엉키고 엉켜 슬픈 덩어리가 된다. 한이 한을 낳고 겆잡을 수 없는 한이 관객의 가슴에 사무친다.

어린아이를 앞 세우고 길 떠나는 오정희의 뒷모습=영화장면 캠쳐

영화에는 앞모습과 뒷모습 2개의 시선이 있다. 앞모습은 자신을 표현하고 주장하지만 등을 돌린다는 것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자신을 감추는 일이며, 강한 부정과 비정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더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뒷모습은 현존과 부재, 현실에서 은폐를 말하지만 그의 미래를 상상하는 방아쇠가 된다. 특별히 뒷모습에 영화의 줄거리와 메시지가 응축되면 그 인물이 앞날에 처하게 될 지금은 보아지 않는 운명의 암시가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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