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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Nov 08. 2023

사진의 뒷모습

같은 방향의 시선, 그러나 그는 볼 수 없는 나의 시선

뒷모습은 그가 보는 것을 내가 보는 것이고 그가 볼 수 없는 것을 내가 보는 것이다. 사진에서도 뒷모습은 하나의 표현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사진작가 에드아르 부바(Edouard Boubat, 1923~1999)는 인물의 뒷모습 사진을 찍은 작가로 유명하다.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프랑스 최고의 작가 미셀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2016)는 에드아르 부바의 뒷모습 사진 47장에 글을 써서 <뒷모습>이라는 책을 출판했다.(미셸 투르니에, 김화영 역, 2020 개정판) 포토에세이 형식이다. 사진에 작가의 생각의 옷이 입혀져 새로운 형식의 문학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 소녀의 뒷모습 사진을 보여주면서 “뒤쪽이 진실이다(Pile est lavérité)”라고 역설한다. 아무 말이 없는 뒷모습의 인물대신 작가가 말을 하고 있다. “뒤쪽이 진실이다.”는 것도 증명된 것이 아니다. 작가의 느낌과 감정, 주장일 뿐이다. 하지만 이 주장이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미셀 투르니에는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얼굴 모습을 꾸며 표정을 짓고 양손을 움직여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하다.”라고 말하면서 뒷모습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렇다면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내게로 오는 것을 보고 난 뒤에 그가 돌아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뒷모습은 순진무구함을 지나 이제껏 숨겨왔던 앞모습의 가면을 벗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사실을 넘어 기억의 재현과 결합된 작가의 상상은 뭇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가 있다. 뒷모습이 훌륭한 메시지가 된다.

소녀(에드아르 부바)
연인(무라드 오스만)

러시아 출신 사진가 무라드 오스만(Murad Osmann)은 세계 유명 관광지를 다니며 찍은 자신의 연인 뒷모습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사진 속 뒷모습의 여자는 뒤로 쭉 뻗은 한 팔로 남자의 손을 잡고 있다. 남자의 손이 사진을 보는 사람 자신의 손으로 착각되어 그녀와 함께 아름다운 풍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풍광과 건물, 이미지가 있는 세상을 향해 가는 인물의 뒷모습이 오히려 능동적으로 변모하여 보는 나를 잡아끈다는 감정에 빠진다. 그녀의 뒷모습이 멈춰진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카리스마를 지닌 역동적인 모습으로 재탄생된다. 뒷모습이 앞모습을 이끌고 나아가는 모양새다.


이렇게 뒷모습은 놓인 위치, 상황, 보인 부분과 포즈, 배경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으며 수많은 의미로 해석되고, 이런 특징을 활용한 예술적 표현형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볼 수 없음이 오히려 상상을 자극하여 사실 너머에 있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양종훈은 일상에서의 사진을 맑고 천진한 얼굴로 담아낸 사진가로 평가받는다. 고통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 스와질란드의 에이즈 환자들의 사진기록, KBS의 ‘6시 내 고향’ 리포터로 활동하며 촬영한 전국 방방곡곡의 우리 서민들의 진솔한 얼굴과 삶의 현장기록인 <강산별곡(2011)>, 유네스코에 등재된 해녀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해녀사진 기록물 등은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 동생과 연결된 인류 보편적 가족애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사진들이다. 양 사진가의 <강산별곡>에는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얼굴, 긴 노동의 흔적이 담긴 손, 오랜 삶을 같이 한 노부부의 애틋한 모습, 특징적으로 부각된 사물과 신체 등의 사진이 많지만 그중 뒷모습을 다룬 감동적인 사진도 많이 발견된다. 특히, 물질을 앞두고 바다 앞에 앉아있는 검은 해녀 복장을 한 해녀의 뒷모습 흑백사진은 온통 검은 빛깔이지만 심도 깊은 사진 질감과 인물의 포즈가 보는 이들에게 풍부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해녀(양종훈)

비비안 마이어(Vivian Dorothea Maier, 1926-2009)는 미국 뉴욕 출생으로, 유년시절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살았다. 그녀의 직업은 보모였으며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녀는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늘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누비며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아무런 연출 없이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을 촬영했다. 사후 사진 15만 장이 어느 경매장에서 발견됐고, 사망 후에야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 사진가로 알려진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그림자를 많이 찍었지만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 사진도 즐겨 찍었다. 시대와 공간적 배경은 다르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모습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는 점에서 양종훈 사진가의 한국적인 사진과 쌍벽을 이룬다.

거리(비비안 마이어)
거리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Dorothea Maier, 1926-2009)

사진의 뒷모습은 그림과 달리 인물의 앞모습 시선을 암시하고 있다. 그림에는 앞모습 자체가 애초에 부존재로 처리되었지만 사진의 앞모습에는 그의 시선이 존재한다. 나는 그를 보고 있지만 그가 진짜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다. 같은 방향이라 공감의 시선인 듯 하지만 이런 장애가 있다. 결정적으로 뒷모습은 내가 그를 보고 있는 것을 그는 볼 수가 없다. 시선의 권력이 보는 이에게 귀속된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진의 뒷모습은 보는 이와 같은 방향 같은 시선이어서 뒷모습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공감이라는 같은 배를 탄 듯 하지만 정작 뒷모습의 인물은 그를 보는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시선의 권력, 감시, 훔쳐보기와 시선의 지배가 숨겨져 있는 숙명 앞에 놓여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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