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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Nov 21. 2023

연인의 뒷모습

깊은 상처이자 그리움으로

'정읍사井邑詞)'는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문학이다. 멀리 행상을 나간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다 돌이 된 여인, 망부석(望夫石)의 애절한 사랑 노래... 백제 멸망 이후에 약 1000년 동안 불리다가 조선 성종 때에 이르러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수록되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훗날 고려가요의 영향을 받아 덧붙여진 '정읍사' 후렴구이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다. 아리랑 후렴구와 닮았고, 소리와 운율이 아름답다. 한 드라마에서 현대적으로 편곡하여 OST로 사용했다. 전북 정읍에는 망부석이 서있는 공원이 있다. 지자체의 행정력이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가수 문희옥은 이호섭 작사작곡 ‘정읍사'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다. 이런 행정력의 야심찬 관광용이든, 사람을 모으는 홍보용이든, 백제여인의 사랑을 담은 흥미로운 드라마이든 '정읍사'의 그 깊은 곳에는 오랜 옛날 뒷모습을 남기고 떠난 남편의 앞모습을 그리는 그리움이 있다. 그것도 아주 사무치는 애절한 천년의 사랑으로 이어진 그리움이…

연인의 뒷모습은 거의 다 사랑에 얽힌 이야기다. 애틋한 감정을 한껏 실은 노래에 많다. 사랑하다 돌아서간 헤어진 연인을 그리는 노래는 버려진 사랑의 낙담과 좌절, 그리움의 고통이 뒤섞인 애절한 분노가 있다. 대표적으로 가수 도성이 부른 '배신자(1969)'. "얄밉게 떠난 사람~~ 사랑의 배신자여!" 배신을 외치지만 그리움으로 들린다. 가수 배호는 돌아선 뒷모습마저도 볼 수 없게 된 '안갯속으로 가버린 사랑(1967)'을 노래했다. 이미 만날 때부터 괴로웠다는 그의 외침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랑에 대한 회한으로 읽힌다. 가수 노사연의 '님 그림자(1983)'는 "저만치 앞서가는 님 뒤로 그림자 길게 드린 밤~~, 님 그림자 밟은 날 없네."라며 끝내 다가가지 못했던 마음속 연인을 향한 짙은 그리움과 아쉬움이 배어있다. 윤종신 작사작곡 '뒷모습(2007)'은 가수 나윤권이 불렀다. "먼저 일어나겠다며 돌아서 서두르듯 떠나가던 뒷모습이 내 기억 속 너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몰랐어..." 이별 없는 이별을 아쉬워하며 언젠가 재회를 기다리는 소심한 사랑이 슬프다.

연인의 뒷모습 노래가 슬픈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 가수 송창식은 '한번쯤(1975)' 1절에서 “뒤돌아보고 싶지만 손짓도 하고 싶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봐야지"라며 용기가 없어 막상 뒤돌아서 그를 향해 앞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수줍은 여자의 뒷모습을 노래했다. 2절에서는 "한번쯤 돌아서겠지~~ 집에는 다 왔을 텐데 왜 이렇게 앞만 보며 나의 애를 태우나" 차마 그녀를 불러 세우지 못하고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바보같은 남자의 순수한 앞모습을 노래했다. 모든 게 아직은 서툰 젊은이들의 풋풋한 사랑노래… 사연은 안타깝지만 곡이 재미있고 흥겨워서 좋다. 게다가 젊은 시절 생각에 슬며시 미소 짓게 하는 끝맛이 있어 매력적이다. 가수 조덕배는 '뒷모습이 참 이쁘네요.(1993)‘에서 "뒷모습이 참 이쁘네요. 당신 얼굴을 볼 수 없을까요."라면서 그녀의 앞모습을 상상한다. "참 예쁠 거야"  그러나 상상일 뿐 결론없이 노래는 끝난다. 조덕배의 포크송 형태를 락(Rock) 형식으로 재해석하여 부른 인디그룹 '검정치마'의 노래를 들으면 더 흥겹다. 현실과 상관없이 상상만으로도 그렇게 된다. 끝내 어쩌지 못한 뒷모습 사랑의 결말이다.


연인의 뒷모습만큼 가슴 깊이 남는 게 또 어디 있겠는가. 그것이 사랑이든, 그리움이든, 배신이든, 회한이든,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이든, 돌이 되고만 천년의 슬픔이든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루어지지 않은 연인의 뒷모습은 사랑의 칼에 베인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이자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틀림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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