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경험했던 리듬의 추억, 그리고...
나는 음악을 처음 접하고 리듬을 알았을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밴드부의 멋있는 모습에 반해버렸다. 나는 밴드부에 들어가 사이드 드럼(작은북)을 치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는 야구부에 들어갔다. 나는 선배들의 지도로 리듬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트레물로부터 배우고 고고, 솔, 스윙, 슬로 록, 탱고, 보사노바 등의 리듬을 배우면서 기막힌 리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난 리듬을 알게 되면서 남들이 모르는 이것을 알게 되었다는 감격과 흥분에 너무 기뻤다.
내가 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내 인생에 해야 할 것은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우는 방법이 너무 가혹했다.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방법은 이런 식이었다. "내일까지 이 리듬을 못하면 몽둥이로 10대". 실제로 10대를 맞고 나면 일주동안 안되던 리듬이 서너 시간이면 되는 것이었다. 수업 중에도 그 생각, 집에서 자면서도 그 생각이었으니 안 될 리 없었다.
나는 지금도 조옮김을 기억한다. 조옮김 시험에서 60점을 받지 못해 음악선생님으로부터 엉덩이 10대를 맞았는데, 그 이튿날 알게 되었다. 나는 이 경험에 비추어 체벌의 단기적 효과를 알고 있다. 하여간 나는 여러 가지 리듬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중학교 2학년 초 어느 날, 성적표를 받는 순간 눈물이.... 61명 중 56등. 5명의 누나들이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음악을 해서는 먹고사는데 어렵다는 이유로 나는 그렇게 좋아했던 음악을 그만두게 되었다. 하긴 내가 음감이 좋았으면 클라리넷, 오보 등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박자를 중요시하는 타악기를 했으니, 계속했더라면 젊은 시절 나이트클럽에서 드럼을 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야구부에 들어갔던 친구는 훗날 농협 야구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고, 나와 같이 음악 했던 친구들은 훗날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데뷔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 주자들을 유심히 본다. 어릴 적 핀란디아를 연주할 때 박자를 놓쳐 소리를 못 냈던 기억들.... 그러면 나를 위해 처음부터 다시 연습할 때, 불안에 떨었던 기억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리드미컬한 음악의 흐름 속에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여러 가지 타악기, percussion을 연주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영원한 낭만 청년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