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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10. 2024

11. 슬픈 노래는 이제 그만!

Essay


쨍, 쨍, 쨍쨍쨍, 쨍쨍쨍쨍, 쨍, 쨍

해가 떴는데 어디 가세요

나~는 어린이집 갑니다     


이 노래는 내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즐겨 부르는 동요이다.

쭉, 쭉~~~ 비가 오는데 // 쌩, 쌩~~~ 바람 부는데 등등 총 4절로 된 노래지만 나는 다양한 의성어를 넣어 이 노래를 10절 정도로 늘여서 부르고 총명탕을 먹은 것처럼 유독 아이디어가 번뜩일 때는 15절까지도 끄떡없다.     


엉, 엉, 엉엉엉, 엉엉엉엉, 엉, 엉

울고 싶은데 어디 가세요

나~는 어린이집 갑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는 대부분 여덟 마디를 넘지 않고 내용도 단순하다.

많이 먹어서 배탈 나고 그래서 병원에 가고……(원인과 결과가 뚜렷하다)

쿠키가 세 개 있어서 너 먹고 나 먹고 하나 남았는데……(이런 게 걱정이다)

소방차는 불 끄러 가고 경찰차는 나쁜 사람 태우고 구급차는 아픈 사람 태우고……(사람보다 차가 열일한다)     

큰 걱정이 없다. 이별, 슬픔, 원망, 배신도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해서 가슴앓이를 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사랑해서 이별한다는 말은 더더욱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아이들 세상에서는.

나 없이 행복하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아이들이 이 말을 들으면 펄쩍 뛰고 간식 접시를 엎을지도 모른다.      

자를 들고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어떤 게 내게 이득인지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잘 먹고 잘살까, 그런 거 안 하고 이 닦기, 손 씻기, 사이좋게 놀기 같은 각자 맡은 책임을 다하고 가끔 욕심도 좀 부리다가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미워죽겠지만 결국 안아 주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처럼 이렇게 단순하게 살 수는 없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 미영이는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다. 동생들도 서울에 있었고 유치원 실습도 서울에서 한 터라 당연한 듯 서울로 올라갔고 그래서 졸업 이후에 서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큰맘 먹고 미영이를 만나러 서울 가는 기차를 탔다. 말로만 듣던 혜화동 대학로도 무척 궁금했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안치환의 공연이 그곳에서 사흘간 있을 거라는 정보를 입수한 미영이가 나를 부른 것이다.

과수원집 셋째 딸 미영이는 그새 ‘서울사람’이 다 돼 있었다. 전보다 세련되고 예뻐 보였다.

나는 위풍당당한 미영이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대학로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이윽고 우리는 설레는 맘으로 표를 끊고 기나긴 줄 속에서 공연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요즘 가수들 공연은 다 스탠딩 콘서트야.”     

“스탠딩… 콘서트? 그게 뭔데?”     


나름 착실하게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던 미영이는 호기심 가득한 내게 확신을 갖고 설명했다.     


“의자가 필요 없다는 말이야, 얼마 전 김경호 콘서트장에 갔을 때도 그랬거든.”     

“아! 김경호.”     

“그래, 그냥 뭐, 열광의 도가니야, 다 일어나서 끝까지 무대 위 가수와 혼연일체가 되는 거지, 그러니 의자가 왜 있겠어, 걸그적거리기만 하지.”     

“그렇구나, 그런 걸 스탠딩 콘서트라고 하는구나!”     


난 기대에 부풀어 그 도가니에 얼마든지 빠질 각오를 하고 공연장 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객석은 일인용 플라스틱 의자가 빼곡히 놓여있었다.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런 내 맘을 알아챈 미영이가 말했다.     


“이 의자들, 나중에 다 벽 쪽으로 옮겨져서 쌓일 거야, 김경호 콘서트 때도 그랬어, 두고 봐.”     

“하긴, 안치환 노래 중에는 나름 발라드도 많이 있는데 그런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뻘쭘하게 서 있는 것도 좀 이상하겠다. 그치?”     


콘서트 장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공간이었고 일찌감치 줄을 서서 기다렸던 터라 우리는 무대와 가까운 5번줄에 앉게 되었다. 공연장은 빈 의자 없이 관람객으로 꽉 찼고 나는 거기서 생전 처음으로 가수를, 그것도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엘피음반 속의 주인공이 내 코앞에서 노래하는 황홀경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미영이가 말한 그 스탠딩 콘서트에 대한 기대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예상대로 1부는 다 발라드였고 ‘내가 만일’로 시작해서 ‘소금인형’으로 막을 내렸다.

잠깐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객석과 무대가 순간 깜깜해졌다. 그때 무대 위에서 현란한 조명들이 터지듯 내리 쏘면서 귀를 때리는 전자기타와 드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안치환의 외침 내지는 절규 같은 한 마디가 귀를 찢었다.     


“슬픈 노래는 이제 그만!!”     


그렇다. 그가 스탠딩 콘서트의 서막을 알린 것이다.

맨 앞줄에서 젊은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이야, 일어나!!” 이어서 들리는 미영이의 외침.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치환은 밴드의 강렬한 사운드에 맞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르기 시작했고 미영이와 나는 선 채로 몸을 흔들었다.     

나는 스탠딩 콘서트라는 대세에 편승한 자신을 기뜩하게 여기며 막춤 속에 나를 완전히 무방비로 풀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둠 속에 익숙해진 내 시야가 점점 주변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서 있는 사람은 바람잡이 역할을 맡은 것 같은 앞줄 남자와 미영이 그리고 나, 셋뿐이었다.

설마, 그래도 우리 뒤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서서 몸을 흔들고 있겠지, 찜찜해하며 슬쩍 뒤를 보았다. 그런데 뒷줄 모두 스탠딩 상태에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노래 중간에 다시 자리에 앉는 건 일단 노래하는 가수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춤추다가 갑자기 창피해져서 쭈빗쭈빗 거리며 앉는 건 더 창피한 일이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계속 서서 춤을 추는 게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는 길어도 너무 길었다. 거기다가 안치환은 후렴구를 끝도 없이 부르고 또 불렀다. 나는 속으로 제발 노래여 빨리 끝나라, 기도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서울사람’ 미영이를 원망했다. 조용히 대학로를 빠져나온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지금도 안치환의 노래를 들으면 그때 벌게졌던 내 얼굴을 그는 기억할까 궁금해진다. 우린 그때 너무 가까이 있었고 한참 동안 서로의 눈이 마주치기도 했으니까…     


꽃보다 아름다웠던 그도 미영이와 나도 이제 젊지 않다.

잠깐 ‘서울사람’이었고 ‘스탠딩’을 좋아했던 그 친구는 지금 용인에 살면서 어린이집 원장이 되어 앉아있을 새가 없이 바쁘다.     

우리는 ‘앞으로는’으로 시작하는 말보다 ‘전(前)에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더 많이 하는 나이가 되었다.      

전에는 슬픔도 기쁨도 모든 게 선명했다.

이제는 많은 것들이 무뎌지고 흐리다.     

그러니 이제 슬픈 노래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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