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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ul 03. 2024

10. 시(詩)가 가장(家長)이었을 때

Poem


‘빗소리가 구월의 꽃씨 봉지* 흔들리는 소리 같아’      


그가 말하면 서둘러 마당에 펼쳐놓은

건조대에서 빨래를 걷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지만 나무는 역류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고수(鼓手)처럼 아하!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봐라, 꽃 피었다’***     


말미에서 북을 때리듯 무릎을 쳤다      


앉은 자리에서 문지방 쪽으로 걸레를 훔치면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바람과 새와 감춰둔

기억들을 불러내 오래 같이 놀았다      


니코틴을 먹은 벽의 안색이 점점 노래졌다

시상(詩想)은 부지불식간에 나타난다 해서

나는 방안에서도 뒤꿈치를 들고 다녔다      


색깔 다른 두 개의 머그잔에 노는 물이 서로 달랐다      


푸른 멍이든 바람이 입구에서 서성였다

다리를 저는 새가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밥심과 시심이 서로의 유통기한을 세었다


아픈 새를 안고 집을 나선 날

시절이 불은 면처럼 툭,

끊어졌다




*   K가 쓴 시 '구월의 꽃씨 봉지' 제목에서 빌려왔음.

**   ***  이 문장들은 K가 쓴 시 '봄'에서 빌려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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