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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무 Jun 26. 2024

9. 소꿉놀이

Essay

바다반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역할놀이영역이다.

이곳은 냉장고, 싱크대. 탁자. 화장대, 옷장 그리고 갖가지 음식들과 조리기구들을 갖춘 아담한 집 모양을 하고 있다. 더운 여름에는 맛있는 과일주스와 팥빙수를 척척 만들어내고 피자, 떡볶이, 스테이크 등등 뭐든 주문만 하면 식탁에 척척 차려진다. 물론 이 음식들은 ‘냠냠’ 소리를 내며 먹는 시늉만 해야 하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여자아이들은 하나같이 엄마가 되길 원하고 남자아이들은 당연히 아빠 역할을 원한다. 다음번에는 꼭 엄마나 아빠 역할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교사의 중재로 한 발짝 양보한 아이들은 정체성을 바꿀 필요 없이 그대로 아이 역할을 한다.     


그 작은 집에서 엄마는 최선을 다해 손님을 맞이하고 아이를 먹이고 돌본다. 아빠는 ‘여보, 다녀올게’하고 돈을 벌러 집을 나선다. 별다른 사건이 없다.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그건 어쩌다 보니 한 집에 엄마가 둘이 있어서 더 예쁜 앞치마나 그럴싸한 접시를 먼저 차지하려고 할 때이다. 이런 분란을 야기한? 아빠는 출근해 버린 후 가정사는 금방 잊어버리고 블록 놀이하는 친구들과 합류하거나 자동차를 가지고 재밌게 놀기도 한다. 그러다가 생각난 듯이 부랴부랴 다시 집으로 와서 ‘여보, 나 왔어요!’ 한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엄마, 아빠 놀이라는 걸 증명하듯 놀이를 하는 유아도, 어디쯤에서 이 놀이를 좀 더 교육적으로 바람직하게 확장시켜줄까 하고 머리를 굴리며 지켜보는 교사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릴 때 내가 했던 소꿉놀이는 이와 비교도 안 되게 열악했지만 그래서 더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드레스를 입었다고 상상하고 멋진 식기들과 가구들이 있다고 상상하고 내 앞에서 저 코를 연신 들이마시고 있는 발갛게 볼이 튼 사내아이는 먼 나라에서 온 왕자라고 상상하고 또 상상하고…… 풀잎을 뜯어 돌돌 만 후 그대로 잘게 썰면 구불구불한 초록 국수 무침이 되고 모기장을 치고 남은 네트쪼가리에 붉은 흙을 거르면 티라미슈 케이크에 뿌려진 코코아 파우더 같은 고운 가루들이 나왔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작은 돌멩이들은 장식용 기능을 더한 지금의 스프링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우리는 이렇게 재미지고 간질간질한 소꿉놀이를 영원히 하기 위해 결혼을 한다. 놀이와 실제의 차이점을 간과한 상태로 말이다.

종착역이라 생각했던 결혼은 사실 전보다 더 험난한 수만 개의 역을 거쳐야 할 출발역이었고 멈추면 얼어붙어서 죽을까 봐 쉼 없이 엔진을 가동해야 하는 설국열차처럼 용을 쓰는 일의 연속임을 우리는 뒤늦게 알게 된다.      

엄마, 아빠 역할에 열중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맡은 역할을 저렇게 즐겁게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왜 그 역할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매일 한숨과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에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빛나는 상상은 엄마의 ‘밥 먹어라!’ 소리에 사라지지만 우리는 미련 없이 신나게 진짜 집으로 달려갔다. 해가 뜨면 다시 리셋되는 소꿉놀이가 있으니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삶은 종종 무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두려움과 무게감으로 하루를 맞는다.      


가장(家長)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이고 또 ‘남편’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빨리 죽나 보다. 이 사전때문에……     

한 번도 반장이나 회장, 사장, 그런 ‘장’ 자 붙은 명함을 갖은 적 없는 내가 이혼으로 졸지에 가장이 되었다. 뭐든 앞에 서는 건 질색이고 그저 샛길로 안 빠지고 주어진 길을 군소리 없이 걸어만 갔던, 평타를 치는 것도 어디냐며 늘 자족하던 내가 약골인 사내아이를 짊어지고 혼자가 됐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는 찾을 수 없는 그 ‘가장’ 말이다.

어쩌면 내게 결혼은 그 ‘가장’이라는 말을 탁구공처럼 동글게 빚어서 핑퐁핑퐁 주거니 받거니 하다 큰맘 먹고 한 번 크게 때려 탁구대 밖으로 나가떨어진 공을 서로 네가 주워라, 아니 내가 왜? 네가 주워! 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었던 거 같다.

그러니 당연히 이혼은 양쪽을 오가며 혼자 핑퐁핑퐁 공을 받아치다가 누구에게 미룰 사람도 없어서 땅에 떨어져 멀리 굴러가는 공을 쫒아서 숨을 헐떡이며 뛰어야 하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혼의 좋은 점은 하늘이 내게 주신 또 한 번의 기회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더 젊잖게 문학적으로 너스레를 떨 수도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 촌스럽고 일말의 원초적 욕망마저 엿보여 덜 믿음직스러워 보일 우려가 있는 이 말이 좋다.     


오늘의 날씨처럼 내 옆 사람의 배려 없는 말 한마디나 표정과 심경이 내 일상을 좌지우지하는 그런 삶을 더는 살지 않아도 될 기회.

나도 알고 보면 꽤 괜찮은 사람이고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알게 될 기회.     


교실의 불이 꺼진다.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도 함께 사라진다.

이제 플라스틱으로 된 놀이집도 조용하다.

이 고요가 외롭지 않은 건 저 올망졸망한 살림살이에 깃든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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