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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무 Jun 12. 2024

7. 잇자국

Essay





어린이집에서 제일 난감할 때는 유아가 친구 몸을 깨물어 잇자국을 남기는 일이다.

말을 못 하는 어린 반에 속할수록 그럴 확률이 높다.

화나고 속도 상한데 혀는 둔하고 주먹을 날려봤자 헛방이니 믿을 건 이밖에 없는 것도 이해는 간다.

제법 영근 이도 문제지만 연한 피부가 더 문제라면 문제다.

아무리 예의 주시해도 그 물고 물리는 찰나는 교사가 보디가드처럼 몸을 던져도 이미 늦다.

나는 실제로 아이를 둘 낳고 그 붓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선생님의 육중한 몸이 케빈 코스트너 저리 가게 공중부양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런 무리한 희생이 무색하게 물린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물은 아이는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후폭풍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대부분 전개된다.     

이럴 때 교사의 입에서는 한숨이 백 번도 넘게 나온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선명한 잇자국에 바셀린을 발라 열심히 문질러주고 물은 아이를 앉혀놓고는 훈육을 함과 동시에 상황을 미리 막지 못한 불찰에 대해 학부모에게 사과할 일을 떠올리며 걱정에 땅이 꺼진다.

다행히 집에 돌아가서 아이 상처를 들춰보며 대성통곡을 할지라도 교사 앞에서는  ‘괜찮아요, 다 그러면서 크는 거죠’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있다. 또 모든 상처와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만고의 진리를 증명해 주듯 몸에 난 잇자국이 점점 옅어지는 일 또한 이쪽 세상에서는 흔한 일이다.      

어린이집에서는 문 아이도 물린 아이도 다음날 만나면 내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아무 일 없었던 듯 함께 잘 논다. (그래서 또 물거나 물리기도 한다)    


어른으로 사는 건 시간을 넘어 강산이 변하고 세상이 뒤집어져도 사라지지 않는 잇자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에 새겨지는 일 같다.     


나는 언제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을까?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 잇자국들을 내내 보기 민망하고 화가 나서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어서였을까?     


대학 다닐 때 교지에 실릴 시를 공모하는 포스터가 대학교 정문에 붙어 있었다.

상금이 5만 원이었으니 그 당시에는 그 돈으로 함께 몰려다니던 친한 동기들과 주점에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막걸리와 안주를 먹고 마셔도 남는 돈이었다. 나는 그때 상금에 눈이 돌아갔고 그래서 처음으로 시라는 걸 써 봤다. <팔색의 천궁>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였고 신기하게 당선이 됐다. 제목을 풀어쓰자면 여덟 색깔 무지개다. 있지도 않은 남동생을 만들어서 갓난아기 때 홍역을 앓아 죽게 만들고 그 아이의 영혼의 색이 더해진 여덟 색깔의 무지개를 봤다는, 뭐 그런 내용의 시였다.      


거기서 끝이었다. 시는 내게 맛있는 술과 안주를 주었다. 나는 무용한 것은 거들떠보지 않는 현실적인 사람이었기에 충분히 만족했다. 세상에는 골방에서 쓰는 시보다 더 재미있고 신나는 일들이 가득했다. 친구, 직장, 연애, 결혼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혹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왜 시 쓰는 K와 결혼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알겠다.

헤어진 지 오래지만, 나는 가끔 한가할 때 K의 장례식을 상상한다. 혼자 빈소를 지키고 있을 아들이 딱해서 나도 가서 음식도 좀 나르고 문상객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의 나래도 펼친다. 이렇듯 한 사람의 부모이기에 끝난 게 끝난 게 아닌 사이라는 걸 실감할 때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데는 이만한 게 또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어쨌든 나는 긴 장대 하나 의지하며 외줄 타는 사람처럼 조마조마했던 그 세월에 물린, 좀 심하게 말하면 물어뜯긴 잇자국 때문에 지금도 가끔 괴롭다.     


K는 대학 재학 중에 등단을 했고 문학과는 상관없는 전공이었음에도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당시에 그 대학 국문과 출신 중에 나름 괜찮은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당시 시를 좀 쓴다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교수가 관여하고 있던 한 문예지에 추천을 받아 학부생 때 신인으로 이름을 올리며 등단을 했다. K와 사귈 때 나와 안면을 튼 그들을 결혼 후에도 종종 보았고 지금도 서점에서 그때 우리 집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의 책들을 가끔 발견하기도 한다. 그중 특히 자주 보던 시인이 있었는데 서점에서 시집이 그의 시집과 한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걸 보았다. 그때 그 감정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결혼과 동시에 전에는 신기하기만 했던 시인들을 허구한 날 보면서 나는 무시로 술상과 밥상을 차리고 커피를 끓이고 과일을 깎았다. 그들이 모여서 나누는 얘기들이 흥미로웠지만 내가 낄 자리가 없었다. 가끔 한 번씩 말을 거들기도 했는데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고 이내 이야기 주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 틈에서 “그 작가 정말 몰라요?”라는 질책인지 질문인지 헷갈리는 말을 몇 번 들은 뒤로는 여름에는 찔 듯 덥고 겨울에는 얼듯 추운 비좁은 부엌에서 그저 부엌데기 역할을 하는 게 더 편했다.

그 무리들이 허세에 사로잡힌 체 뿌연 담배 연기로 신혼집의 흰 벽지를 누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얼마 안 가 점점 그들에게서 정나미가 뚝, 뚝, 떨어지는 소리가 내 귀에서 들렸다.     


시인이라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남아있던 콩깍지가 확 벗겨진 순간은 다름 아닌 그 가운데 누군가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새해 첫 일간지에 얼굴이 실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질 때였다. 그럴 때면 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왜 내가 떨어지고 네가?’라는 말 대신, 당선된 그 작품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그리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기성 시인에 대한 실랄한 질타를 끝도 없이 해대는 것을 목격할 때였다.      


언젠가는 우리 집 거실에서 K와 얘기를 나누던 한 여자가 구석에서 쭈빗쭈빗 주변인처럼 맴돌고 있는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언니, 이리 오세요. 저도 연예인 얘기 그런 거 좋아해요”     


그때 나는 K의 서재에 있는 온갖 책들을 다 불 싸질러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먹고 마시는 상을 뒤엎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런 위인은 못 된다.

또 백수로 지내던 중년의 남자 시인이 있었는데 K가 형이라 부르며 잘 따르던 선배였다. 그 사람이 갑자기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앉혀놓고 시 한 번 제대로 써보겠다고 직장도 관두고 고시원으로 출근하던 K의 어깨를 토닥이며 “제수씨가 우리 K, 꿈 좀 밀어주세요, 앞으로 크게 될 사람이에요, 부탁이에요!”하며 호소를 한 적도 있다.     


 ‘그럼……, 내 꿈은요?’


모기만 한 소리로라도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역시나 난 그런 위인은 못되고…….    

그 선배 옆에서 얼굴 붉히며 ‘잘 들었지?’라고 말하듯 미소 짓고 있던 K.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그 시인은 최근에 열다섯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이런 다작이 가능한 건 그의 꿈을 제대로 밀어주는 공무원 부인 덕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득히 먼 옛날얘기다. 그래도 흔적은 남은 잇자국 같은…….

나는 내가 그렇게 혐오하고 미워했던 그들처럼 시인이 됐다. 그리고 내 비겁함이나 속물근성을 마주 대할 때마다 당시 젊고 철없던 그들에게 내가 너무 모진 마음을 가졌었나 하는 생각도 한다.       

이쯤에서 내가 왜, 어떻게 시인이 됐는지 뭔가 시적인, 눈물 차오를 만한 답을 말해야 할 차례인 거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고 그런 건 솔직한 거 같지도 않다.     


확실한 하나는 <뜨개질을 해요> 시가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덜 마른 양말 짝처럼 쉰내 나고, 울음 끝에 나오는 딸꾹질처럼 멈출 수 없던 내 청춘의 한고비를 넘긴 그 후미진 똥산동 신혼집이 떠올랐다. 그리고 수도 없이 무너져서 가루로 내려앉은 자존감이 빠지직, 소리와 함께 먼지 날리며 일어서는 소리를 들었다. 뒤엉킨 거미줄과 여기저기에서 굴러들어와 한 몸처럼 굳어버린 흙과 자갈들을 멀리 차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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