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하가 잠이 들면 그림책을 읽어줍니다
잠들기 전에는 아무것에도 골몰하지 않으니까요
잘 때도 눈을 뜨고 잡니다
손에 쥔 딸기 인형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지로 보입니다
플라스틱 과일을 칼로 자르는 시늉을 하는 내게
찢어! 하며 손으로 당겨 반으로 가르더군요
찍찍이의 원리를 이미 알고 있었나 봅니다
오늘 생각의자에 한 번 앉았습니다
생각의자에 앉아 생각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주머니에는 밤이 한 톨 별이 세 개 부엉이 두 마리가 있습니다
로하는 20개월, 항상 옳습니다
슬프면 울고 아프면 떼쓰고 즐거우면 웃습니다
우리는 슬프면 삼키고 아프면 참고 즐거우면 눈치를 봅니다
기저귀에서 떨어진 똥에게 ‘안녕’하고 손을 흔듭니다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리는데 로하는 정중히 예의를 갖춥니다
그런 로하에게 잠깐 질투가 났습니다
바깥놀이 중에 돌멩이와 민들레꽃을 혀로 맛보더군요
분홍 혀의 오돌톨한 돌기들이 입맛을 다실 때마다
벚꽃의 멍울들이 간간하게 톡톡 터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의를 주었지만 사실 꼭 한번 따라 해 보고 싶습니다
낮잠 자는 몸이 물고기처럼 흔들렸습니다
꿈속에는 금붕어 두 마리 강아지풀 한 개가 있습니다
우주어린이집 별들반에서 작은 행성이 먹고 놀고 자며
하루가 다르게 지구인과 가까워집니다
*강나무,「로하는 항상 옳다」,『긴 문장을 읽고 나니 아흔 살이 됐어요』, 걷는사람,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