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비치돼 있는 모서리 없는 가구들처럼 둥그런 이미지와도 상충하고 파스텔톤의 보들보들한 색을 입고 있는 건물 외관과도 전혀 닮지 않은 직함이었다. 내가 맡은 책무가 연두나 분홍과는 상관없는 검정과 하양만이 존재하는 흑백필름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꿈에라도 무지개 같은 것은 그릴 생각도 하지 말라고 누가 미리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
익히 알고 있던 '종일반'은 그 이름에서 풍기는 약간의 슬픔은 있지만 먹고, 놀고, 싸고, 자고, 장난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돌아서 여유롭게 엄마나 아빠가 어린이집 벨을 누를 때까지 '난 기다릴 수 있어요'라는 안정감이라도주는데 이 '연장'이라는 말은 마치 입에 물고 있는 풍선껌을 손가락으로 길게 늘이다 결국 매가리 없이 푹 가라앉으며 끊어지는 느낌이랄까!
언제, 어떻게, 무엇을, 누가,라는 질문에 두 음절로 똑 떨어지는 대답 같은 연장전담보육교사 말고 다른 말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건 여기저기에 사인을 끝낸 고용계약서를 고용인인 원장과 한 부씩 나누어 가질 때였으니 직함에 강한 거부감을 갖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이 거부감이 나중에는 마음이 쓰릴 정도의 질투심 같은 것으로 바뀌었는데 각 반의 담임교사들이 반 이름 그대로 하늘선생님, 바다선생님, 구름선생님 등등 자연스럽다 못해 아주 아름답게 호명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부터였다. 나만 직함에 있는 두 글자를 가져와서 '연장선생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투가 절망의 언저리까지 가닿았은 적이 있었는데 그건 내가 막 출근해서 교사용 앞치마를 두르고 두 팔을 뒤로 둘러서 끈을 묶고 있을 때였다. 구름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반갑게 고개를 내밀었다.
“선생님! 케이크 드세요, 오늘 생일 파티했거든요.
조리실에 가면 냠냠선생님이 주실 거예요.”
“네? 냠냠……선생님요?”
그랬다. 이슬, 구름, 하늘, 우주보다 더 맛깔난 이름, 어떤 호칭보다 혀끝에 척척 감기는 달코롬한 그 이름, 냠냠선생님!
어린이집 복도 맨 끝에 있는 조리실에서, 하물며 출근부터 퇴근까지 유아들을 대면할 기회가 거의 없는 그분께도 그런 존재감 넘치는 이름이 있었다니…….
아이들이 '냠냠선생님'을 입에 올릴 때마다 나는 저 멀리 떨어진 조리실에서 하얀색 위생모자를 쓰고 스마일 이모티콘처럼 웃고 있는 냠냠선생님 주변으로 색색의 하트들이 뿅뿅, 날아다니는 환시를 경험하곤 했다.
이렇게 입사하자마자 늘 검댕을 얼굴에 묻히고 있는 부엌강아지처럼(하다못해 그런 강아지도 메리나 쫑 같은 이름이 있는데) 의기소침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연장떤땡임!” 하고 넘어질 듯 달려와 안기는 아이를 기쁨으로 안으면서도 된장, 춘장, 고추장처럼 뭔가 홀로 설 수 없는 것들이 비빌 면이나 쌈채소도 없이 밥상 위에 뻘쭘하게 올라와 있는 것 같은 허전함과 민망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어쨋든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에 남은 공중전을 위해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연장전담보육교사'라는 건조한 이름을 달고 이 촉촉한 어린이집 세상에 풍덩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