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초기작 특별전]을 감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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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 본 글은 <천국은 아직 멀어>,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CGV 아트하우스에서 진행한 하마구치 류스케 초기작 특별전에서 총 세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나머지 두 편인 <친밀함>과 <아무렇지 않은 얼굴>은 스케줄 상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흑 ···.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을 고르라면 단연 <천국은 아직 멀어>다. 이 작품에는 무려 유령이 나온다. 하마구치 류스케도 이런 깜찍한 발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분위기는 <우연과 상상>과 비슷했지만 내용은 <드라이브 마이 카>의 판타지 버전 같았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어릴 적 살해 당한 미츠키가 귀신을 볼 수 있는 같은 학교 학생인 유조에게 빙의해 좋아하던 선배에게 고백한다. 그 덕에 유조는 학교를 자퇴하게 되고, 미츠키는 꼼짝없이 유조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몸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미츠키의 동생이 언니의 죽음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유조에게 연락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의식할 수 있는 것과 의식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고 있는 것.


유조의 눈에는 미츠키가 보이고, 동생의 눈에는 미츠키가 보이지 않는다. 유조는 미츠키를 믿고, 동생은 미츠키의 존재를 부정한다. 유조는 미츠키를 의식할 수 있지만 동생은 미츠키를 의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미츠키를 끌어안는다. 정말로 그가 유조에게 빙의되어 자신을 찾아온 것이길 바라기 때문에. 자신의 눈이 아니라, 이성에 안주한 현실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솔직함에 기대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품은 묘하게 께름칙하다. 글쎄. 이걸 긍정적인 표현이라고 해야 할지, 부정적인 표현이라고 해야 할지. 영화 속 인물들이 무척이나 솔직하다. 그의 스승인 구로사와 기요시가 인간의 침묵을 다룬다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인간의 진솔함을 다룬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는 사회 자체의, 가족 공동체의, 친구끼리의, 회사에서의 생활을 엿보는 면이 있지만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인물 자체의 인생을 그린다. 덕분에 관객은 '주인공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네? 근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말을 하네? 왠지 속이 후련해 ···.'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조언하는 인물은 관객의 상담사가 되어 준다.


흔히 비슷한 걸 만들어 내는 이를 두고 '김치찌개를 끓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확신했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김치찌개에 매우 소질 있다는 걸. 특히 그의 초기작들은 <드라이브 마이 카>와 굉장히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마치 드마카의 데모 버전들 같았던 ···. (내가 직접 보진 못했지만 <친밀함>에는 연극 장면도 나온다고 하니.) <섬뜩함이 피부에 닿는다>의 경우에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와 분위기가 흡사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하마구치 류스케가 좋아하는 설정이랄지, 남자 둘과 여자 하나의 관계성은 뚜렷하게 보였다.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는 대부분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남자를 배반하고, 남자는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자를 아주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모른 척한다.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를 봤을 때 분명하게 깨달았고, 동시에 '왜 이렇게까지 이런 설정을 좋아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의문이 다 풀린 건 아니지만 내가 고민해 본 바로는 이렇다. 인간이 가장 유치해지고, 절절하게 매달릴 때는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우리 세계에 만연해 있는 '거짓'은 대개 연인 사이나 부부 사이다. 그래서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은 현실이면서 동시에 픽션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타인의 힘을 빌려 자신의 행동을 고백한다. 그 '타인'이 곁에 있을 수도 있고, 단지 주인공 내면에 있는 진솔함을 이끌어내는 역할만 수행할 수도 있다. 앞서 말했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인물 자체의 인생을 그린다.'는 게 이것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소통'의 힘을 보여 준다. 엉망으로 꼬여 버린 관계와 인연을 대화로 풀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잔뜩 엉킨 실을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앉아 푸는 것처럼.


그의 영화는 너무 솔직해 께름칙하다고 말했었는데 앞으로도 그 생각은 변함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거짓이 판치고, 진솔함이 약점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것은 언제나 두렵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나에게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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