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불행의 연속이지만 ···
*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작품보다 "인생은 원래 불행한 것이며 세상 사람 모두 똑같으니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악착같이 살아라 어차피 앞으로도 쭉 불행할 거다 그러니까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라 그러다 결국엔 죽음으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라고 말해 주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을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데 투자할 만하다. 매년 돌아오는 작품. 올해는 벌써 cgv에서 한 번, 부국제에서 두 번 감상했다. 이미 너무나 많이 본 영화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민할 것이 잔뜩 남았다.
일단 첫 번째로 주목할 장면은 가후쿠의 교통사고 이후 병원 씬이다.
표면적으로는 가후쿠의 녹내장에 대해 알려 주는 장면이지만 녹내장을 가후쿠의 상처로 빗대어 생각해 보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녹내장 → 오토의 간통으로 인한 가후쿠의 상처
이렇게 치환한다면 의사의 "빨리 알게 돼 불행 중 다행입니다"라는 대사는 가후쿠에게 매우 잔인하게 들릴 것이다. 그는 과연 오토의 바람을 빨리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평생 몰랐으면 오히려 상처받을 일 없지 않았을까.
가후쿠가 살짝 격양되어 운전은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도 그렇다. 빨간 차는 가후쿠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다. 단순한 '차'의 개념을 넘어 사랑하는 아내 오토와의 추억이 묻은, 오토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어쩌면 오토 그 자체일 수도 있는 공간이다. (그 근거로 처음엔 자신과 오토를 제외한 누군가를 차 안에 들이는 것을 꺼려했다) 가후쿠는 묻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내의 행동에 상처를 받았어도 예전과 같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냐"고. 나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내를 잃고 싶지 않은 가후쿠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문장 같기도 했다.
두 번째로 주목할 수 있는 건 오토가 죽기 전 가후쿠에게 하고자 했던 말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오토를 연기한 배우 키리시마 레이카 또한 답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즉, 정해진 게 없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가 이혼 얘기를 꺼내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고 한다. 나는 이 의견에 백 번 동의한다. 이 대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르지만 우선 세 번째 주제로 넘어가야 한다.
세 번째로 주목해 볼 만한 장면은 오토의 이야기이다.
소년 '야마가'와 그를 짝사랑하는 소녀, 그리고 빈집 털이범이 나오는 이 이야기는 언뜻 보면 매우 뒤죽박죽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작중 인물들에게 오토가 만든 역할을 하나씩 배분해 전개한다면 이해가 수월해진다.
소년 → 가후쿠
소녀 → 오토
남은 건 빈집 털이범인데 사실 원래는 이 역할을 다카츠키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다카츠키는 예술을 사랑하는 남자고, 오토는 그가 바랐던 예술의 이상향 그 자체이다. 때문에 소녀가 빈집 털이범을 죽인 것이 오토의 남자가 되지 못한 다카츠키의 마음이 죽은 것이라 봤었는데 최근에 또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빈집 털이범을 오토가 난도질한 가후쿠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녀는 빈집 털이범의 왼쪽 눈을 찌른다. 아마 오토가 가후쿠의 녹내장, 즉, 가후쿠의 상처에 대해 매우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녹내장이 온 눈이 왼쪽) 빈집 털이범은 소녀가 소년의 침대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역할로 치환해 말하자면, 오토가 간통 상대를 집에 데려온 것을 가후쿠가 목격한 것이다. 빈집 털이범의 경우 앞서 말했듯 소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가후쿠 또한 그 순간, 아주 큰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가후쿠는 동시에 소녀, 즉, 오토가 사랑하는 소년인 '야마가'이기도 하다. 야마가는 빈집 털이범의 시신을 보고도 CCTV를 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마치 오토의 바람을 그가 죽을 때까지 묵인 해 준 가후쿠처럼 말이다. 그 사건 이후, 가후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여전히 오토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오토의 손을 잡고, 오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지만 '소녀' 오토가 만든 변화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CCTV, 바꿔 말해 가후쿠가 은연중에 만든 벽이다.
소녀는 그 CCTV를 향해 몇 번이나 말한다. "내가 죽였어."라고. 이쯤에서 다시 두 번째 주제를 불러와야 한다. 오토도 가후쿠에게 고백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동안 자신이 가후쿠 몰래 어떤 행동을 해 왔는지.
오토가 가후쿠에게 들려 준 마지막 이야기에서 "이제 끝이야. 하지만 이걸로 드디어 그만둘 수 있어."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건 빼도박도 못하게 오토의 심정 그 자체로 느껴진다.
한껏 예리한 척하며 심층 분석하는 티를 내 보았지만 전부 나의 망상에 더 가까운 주절거림일 뿐. 하하하.
<드라이브 마이 카>는 좀 잔인한 작품이다. 앞서 말했듯 '언젠간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라는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너의 삶은 지금처럼 불행할지도 모르나 종착지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해 주기 때문에. 솔직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니까.
이런 메시지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하기에 특성상 현실에서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 관객들은 3시간 내내 그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내용을 곱씹으며 비로소 깨닫게 된다.
요는 이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주고, 나의 과거와 과오, 상처를 나 스스로 헤집게 만든다. 하지만 전혀 괴롭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내 인생이 쉽게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 일만 아니었더라면'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그때 내가 어떻게 했더라면' 따위의 복기는 오히려 내가 나아갈 방향에 걸림돌이 된다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