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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이별

그녀는 파리 대신, 자신을 선택했다

by fiore 피오레 Mar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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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준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수현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긴 침묵에 잠겼다. 그들 사이엔 차가운 공기만이 흘렀다.

민지는 수현을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차오르는 서운한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민준은 어떻게든 수현을 붙잡아야 했다. 수현이 없는 민준은 빈 껍데기와 같았다.

“수현 씨.”
민준은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애타고 있었다.
“내가 꿈꿨던 결혼생활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어. 나는 당신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야. 당신이 자유로워지길 원하면 그렇게 해줄게. 당신 일도 다시 시작해. 난 우리를 닮은 2세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게 당신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없어도 괜찮아. 난 무엇보다 당신이 더 소중하고, 더 중요해.”

수현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그의 말에 작은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민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수현 씨,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고칠게. 난 정말 당신 없이 살 수 없어.”

그때 민준은 작은 상자를 꺼내 수현에게 건넸다. 상자 안에는 수현을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민준의 마음을 적은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첫 페이지를 열었다.
“1996년 5월 10일. 그녀는 나의 운명의 상대일까?”
라는 글로 시작된 일기에는 수현을 만나며 느꼈던 민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민준 씨, 고마워. 당신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줄 몰랐어. 우리 그동안 서로에게 너무 무심했나 봐.”
수현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속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깊은숨을 내쉬며 민준의 손을 꼭 잡았다.

“당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있었어. 일과 생활에 치여서 당신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수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눈물을 참으며 민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게 가능할까, 민준 씨?”
수현은 민준을 회의적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수현 씨, 당신에게 말은 안 했지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어. 그래서 말인데, 우리 다음 달에 파리로 여행 가자. 티켓도 미리 끊어놨어. 다녀와서 우리 문제는 그때부터 다시 얘기하자.”

수현은 민준의 말을 듣고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파리라니… 민준 씨, 정말 그게 답일까?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민준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애원하듯 말했다.
“수현 씨,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파리로의 여행은 단지 시작일 뿐이야. 그곳에서 다시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 사이의 문제들을 풀어나가자.”

수현은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민준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며, 마음 한편에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이 문제가 민준과의 대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 자신이 문제였다.

수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엔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파리 여행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민준의 믿음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이 갈등을 마주하고 해결해야만 했다.

“민준 씨, 내 문제는 단순히 우리 관계에만 있지 않아. 나는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혼란스러워. 그 답을 찾기 전까지는, 우리 관계가 아무리 좋아져도 난 여전히 불안할 거야.”

민준은 수현의 말을 들으며 잠시 침묵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더 꽉 잡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수현 씨. 우리 함께 그 답을 찾아보자. 파리에서든, 여기서든, 어디서든 말이야.”

수현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녀는 조용히 짐을 챙기며 말했다.
“민준 씨, 나에게 시간을 줘. 나 자신을 찾고,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는 걸 이해해 줘.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야.”

그리고 수현은 짐을 들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 흔들림 없이 곧고, 당당했다.

수현은 고개를 들고 걸었다. 더 이상 두려움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듯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도 민준은 그녀의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나게 해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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