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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ore 피오레 Oct 28. 2024

두 번의 이별

지리산 계곡

“안녕하세요.” 해인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우리, 조금 닮은 것 같지 않아요?”

“정말 그러네요.” 하면서 현수는 웃음을 지었다.

“반가워요. 해인이 할아버지올시다. 오랜만에 파란 청춘의 젊은이를 보니 내 눈이 즐거워. 여기 계시는 동안 불편한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말씀해 주게, 의사 선생.”

“해인이도 지금 몸이 성치 않은 상태로 우리와 같이 있는 거라오.” 단정하게 흰머리를 말아 올리고 감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해인이 할머니가 뒤이어 거들었다.

현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옆에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던 해인을 봤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총기 있어 보이는 눈은 현수의 행동을 쫓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해인은 할머니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수에게 물었다.

“제가 밤중에 아플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어디로 전화하면 되나요?”

“아, 제가 지금 마을회관에서 묵고 있거든요. 그쪽으로 전화 주시면 됩니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농촌에서의 의료 봉사는 녹록지 않았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은 대사성 질환은 별로 없었지만, 관절이나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가끔 어린아이들이 고열 때문에 밤중에 전화를 하거나 문을 두드렸다. 현수는 고단한 의료 봉사가 끝나면 중산리 마을 길을 따라 저녁 산책을 즐겼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그는 늘 이 길을 선택했다. 현수는 초록빛 가득한 길을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플라타너스의 향기와 함께 차분한 고요함이 그의 마음을 감쌌다. 그는 산책을 하면서도 주변의 작은 생명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다. 작은 제비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길가에 멈춰 서서 손가락 끝으로 보라색 꽃잎을 만져 보기도 했다.

마을 길을 걷고 있을 때, 현수는 혼자 걷고 있던 해인과 마주쳤다.

“해인이 아니니? 너도 이 시간에 산책을 나오는구나.”

해인도 현수를 발견하고는 반가워서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반갑네요, 현수선생님.”

“응. 의료 봉사 끝나고 나면 종종 산책하러 나와. 여기 공기가 참 좋잖아. 해인아, 요즘 몸은 좀 어떠니?” 현수가 해인의 왼편에 서서 걸으며 물었다.

“지리산이 정말 좋은가 봐요. 이곳에서 암이 완치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그냥 소문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몸이 너무 가뿐해지는 걸 느껴요.”

“다행이다, 해인아.”

현수와 해인은 산책길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의 산책 시간은 함께여서 더 좋았다. 둘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어느 맑은 아침, 현수와 해인은 지리산의 노고단 등산로를 따라 길을 나섰다. 초록이 가득한 숲 속을 걸어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작은 폭포를 발견했다. 해인은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현수도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발목을 감쌌다. 상쾌했다.

“여기 정말 아름다워요.” 해인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물소리와 어우러져 한층 더 맑게 들렸다. 해인의 긴 머리가 햇살 아래  부드럽게 나부꼈다.

그녀의 하얀 피부는 우유 빛깔처럼 도드라져 더욱

빛났다. 현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해인의 모습이

그에게 너무나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정말 그러네.” 현수가 대답했다. “하지만 더 아름다운 건 너야.” 해인은 얼굴이 붉어지며 고
개를 돌렸지만, 그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물속에서 둘은 나란히 서 있었다.
현수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현수의 손끝이 해인의 손끝에 닿자, 해인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도 용기를 내어 손을 움직여 그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손끝이 터치하는 순간, 마치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둘 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그러나 미소를 잃지 않고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부끄러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들의 마음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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