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
한여름 한낮, 태양은 하늘 한가운데에서 맹렬히 내려쬐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강렬한 햇빛이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들판에서는 풀이 햇빛을 받아 마치 타들어가는 듯한 향기를 뿜어내며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저 해인인데요. 현수 선생님 계신가요?"
"나야, 강현수. 목소리가 힘이 없네. 많이 아픈가 보구나."
"현수 선생님, 지금 와줄 수 있으세요? 다른 선생님 말고 현수 선생님이 직접요."
"알겠어. 해인아! 기다리고 있어."
현수는 허둥지둥 진료 가방을 챙겨 들고 임시 진료실을 뛰어나갔다. 멀리서 해인의 할아버지 집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펜스가 쳐져 있었고, 적송 소나무가 눈앞에 보였다. 라벤더, 로즈메리, 민트 같은 허브가 아담하게 심어진 그곳으로 현수는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한낮의 뜨거움은 더 이상 현수에게 불편함이 아니었다.
초인종을 누를 시간도 없이 현관문을 잡았는데, 문이 열렸다.
"어머, 현수 쌤! 정말 빨리 오셨네요."
해인이가 시원한 물수건과 함께 얼음물 한 잔을 건넸다.
"괜찮은 거니, 해인아? 아까 전화상으로는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얼마나 걱정하며 왔는지 몰라."
"그래서 이렇게 뛰어오신 거예요? 저는 괜찮아요. 현수 쌤 좀 쉬게 해드리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나서야 현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집은 조용했다. 현수가 물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디 가셨니?"
"네, 작은할아버지가 오늘내일하고 계셔서 두 분 다 올라가셨어요."
"너 혼자 두고?"
"네, 제가 괜찮다고 혼자 잘할 수 있으니까 다녀오시라고 했어요. 할머니는 그래도 걱정되셨는지 안 가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억지로 보내드렸어요."
"해인아, 너 정말 괜찮겠어?"
"문제없어요."
해인은 그렇게 말하며 빙그르 한 바퀴 돌더니 갑자기 주저앉았다.
"괜찮니, 혜인아? 안 되겠다. 오늘 내가 이곳에 남아서 너를 돌봐줘야겠어."
현수는 마을회관 임시 진료실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김 교수였다. 김 교수는 현수가 다니는 의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교수였다. 진료실에서는 엄격했지만, 학생들에게는 따뜻하고 자상한 지도자로 유명했다. 그는 의료 봉사를 통해 학생들이 실질적인 경험을 쌓고,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늘 힘썼다.
"교수님, 저 현수인데요. 오늘 제가 여기 남아서 해인이를 돌봐야겠어요."
"그래, 현수야! 우선 거기서 해인이 상태를 잘 보고,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연락드려라."
"네,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
현수는 우선 해인이를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
침대에 혜인을 눕히고 일어서려는 현수를 해인이 손으로 붙잡았다. 그 손길은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했다. 현수가 손을 빼려고 하자 해인이 말했다.
"잠깐만요, 현수쌤. 잠시만 손 좀 잡고 있을게요."
해인은 현수의 손을 놓지 않았다. 손이 잡힌 채, 현수는 해인의 침대 옆에 앉았다. 해인은 현수의 손을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었다. 잠든 해인 곁에서 현수도 피곤한 몸을 뉘었다.
한여름 저녁,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은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하늘은 오렌지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진 장관을 펼쳤다. 공기는 낮 동안의 열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산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었다.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마치 속삭이는 듯 들렸다. 시원한 저녁 풀바람 냄새가 현수를 깨웠다.
이미 깨어 있던 해인이 현수의 뺨을 어루만졌다. 현수는 해인이 하려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흥분과 야릇한 체온, 그리고 행복한 나른함이 밀려왔다. 그를 감싸는 공기는 어딘지 모르게 미지근하면서도 끈적거리는 것 같았다.
해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현수에게 말했다.
"현수쌤, 제 얼굴 앞으로 좀 더 가까이 와주세요."
현수의 맑은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해인은 호수 같은 큰 눈으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둥글게 올라와 있는 짙은 속눈썹을 감으며 혜인은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로 현수의 입술을 감싸 안았다.
해인은 그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멀어지는 듯한 고요함에 휩싸였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따뜻함과 맑은 빛이 가득했고, 그녀는 그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비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이 살짝 지나가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마치 축복이라도 하는 듯 부드럽게 흩날렸다. 해인은 용기 내어 눈을 감으며, 자신의 감정을 진심으로 전했다.
입술이 맞닿는 순간, 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스함과 평온함이 번져갔다. 키스는 서두르지 않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이어졌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엮이는 듯한 순간, 밖에서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저녁 햇살이 그들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과 새들의 잔잔한 노랫소리는 그 장면을 한 폭의 그림처럼 완성시키며 두 사람의 행복을 축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