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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24. 2021

스무 살

단편소설

카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아닌 공장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공장이 편의점보다 돈을 더 주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아르바이트에게 주는 시급은 별 차이 없었다. 잔업이 있는 날은 수당이 나오긴 했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수능이 끝나고 수험생에게 주는 다양한 특혜가 끝나갈 무렵, 나는 대학을 포기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집에서 뒹굴고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아침에 내가 먹을 밥을 준비해 놓고 출근했다.

한 때 은행원이었던 엄마는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채 아빠와 이혼을 하고 더 이상 네일아트가 필요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엄마는 언제나 예쁘고 화려한 손톱을 연출할 줄 알았다. 나는 엄마의 손톱을 좋아했다. 엄마가 손톱에 반짝이는 돌이나 진주, 금색 고리를 붙일 때면 나도 해 달라고 조르곤 했다. 엄마의 예쁜 손톱은 아빠를 잡지 못했다. 아빠는 손톱보다는 얼굴을 보거나, 잘 빠지는 몸매를 보는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어쩌자고 엄마는 손톱만 꾸미면서 살았을까.


아빠가 우리 집에서 완전히 나가던 날 나는 기분이 영 엉망이었다. 6학년이던 나는 자주 기분이 나빠졌다. 그 날은 정말 별일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슬러시를 사고 있었다. 5월인데도 가방을 멘 등에 땀이 스멀스멀 맺히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언니가 투명한 컵에 하늘색의 슬러시를 기계에서 받고 있는 모습만 봐도 입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투명 컵이 반쯤 채워지자 아르바이트 언니는 뚜껑을 닫고 빨래를 꽂아 나에게 내밀었다.

 “왜 반 만 줘요?”

 “원래 여기까지야.”

 아르바이트 언니는 무심하게 말하고는 뒤의 아이가 내미는 젤리를 계산했다. 더 따지고 싶었지만 하교시간이라 붐비는 편의점에서 주목받고 싶지 않아 참았다. 편의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빨대가 전해주는 슬러시를 입속에서 녹이면서 걸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계속 뭔가 찜찜하게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


 아빠는 짐을 이미 다 보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작별인사를 위한 의식 같았다.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한다는 사실은 일주일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사실 몇 달 동안 집에는 한 달에 한번 겨우 들어오는 아빠를 보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민선아 아빠 갈게. 너무 속상해하지 않아도 돼. 자주 만나면 되니까.”

 아빠는 조심스럽게 내 팔을 잡고 말했다. 속상하다니 아빠는 착각이 심하다. 나는 속상하거나 아빠와 살 수 없는 시간이 서운하지 않다. 엄마는 나와 살기 위해 아빠와 이혼하면서 이 집을 포기했다. 우리는 곧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집은 이제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살게 되고 아빠는 이 집을 정리해서 다른 여자와 다른 장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엄마와 나는 이 도돌이표 같은 공식 어디에도 없었다. 아빠는 손을 뻗어 내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아빠의 손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축축한 감촉 때문에 짜증이 나려고 했다.

 "이혼하고 이사 간대는데 민선 엄마 말이야."

 내가 슬러시를 기다리면서 들은 이 말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이혼이 뭐 별거라고. 슬러시 한 컵은 2000원인데 반 컵만 따랐으면 1000원만 받아야 한다. 나는 슬러시 1000원의 가치를 빼앗긴 것과 같다. 아빠는 나를 포기하고 아파트를 가지고 떠났다. 그러니까 나는 아파트 한 채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아파트를 비우고 엄마와 나는 이 집으로 이사 왔다. 2개의 방과 작은 거실 겸 부엌, 화장실이 있는 3층 빌라. 집에서 가장 큰 창문은 안방에 있는데 여름에도 열고 자기가 부담스럽다. 창문을 열면 이웃집에서 먹는 저녁 메뉴가 보일 지경이다. 이 집에서 엄마와 나는 마치 처음부터 아빠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고 있다.    

 

 15명의 직원이 일하는 작은 공장은 화장품을 담는 통이나, 작은 약통과 그것의 뚜껑을 세척하고 반짝이게 코팅하는 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통의 모양이나 크기는 매번 다르지만 방식은 한결같았다. 50대 초반의 과장님과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의 팀장님만 남자이고 젊은 외국인 여자 4명과 나머지는 60대 전후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여기에 나와 동갑인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나보다 이틀 먼저 들어온 그 아이는 수현이었다. 머리가 허리 위까지 길고 부드러워서 만지고 싶게 했다. 눈이 크지 않았지만 매력적이었다. 얼굴이 전체적으로 예뻤는데 묘하게 지켜주고 싶은 얼굴이었다. 누구나 말을 걸고 싶게 만드는 그런 얼굴. 아마도 부드럽게 처진 눈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애를 보고도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친구를 사귀는 일이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시시했다. 어떤 사람과도 처음처럼 좋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시간이 지나서 아주 사소한 비밀이라도 공유하면 나는 상대가 불편해졌다. 그리고 상대도 그럴 것이라는 짐작으로 나는 조금이라도 친해진 사람과는 처음 만나는 사람보다 거리를 두게 되었다. 친구들과도 그런 관계를 반복하다 보니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알고 지내거나 가끔 떡볶이를 먹는 친구가 있긴 하지만 그런 친구와도 나는 한데 뭉쳐지지 않는 모래 같았다.

나는 팀장이 시키는 일만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무리에 섞여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수현은 마치 공장에서 일 년은 일한 사람처럼 아주머니들과도 친하고 외국인 여자애들과도 서슴없이 지냈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뭐가 웃기는지 친한 친구처럼 팔을 툭 치면서 웃기도 했다. 나는 그런 수현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꾸 시선이 갔다. 마치 나와는 다른 공기를 마시고 나와는 다른 음식을 먹는 존재처럼 보였다.     

 “스톱! 스톱!”

 돌아가는 라인 위의 제품 하나를 집어서 살피던 팀장이 코팅된 뚜껑을 보더니 외쳤다. 은색의 뚜껑이 코팅제를 입고 예쁘게 반짝였다.

 “불량이 너무 많은데 양 다시 맞추고 해야겠네. 일단 잠깐 쉬고 갈게요.”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점보다 작은 흠이 보였다. 공기가 픽 하고 빠진 것처럼 작은 흠집이었다. 아무리 작은 흠이라도 있으면 모두 폐기해야 했기 때문에 불량의 양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했다. 나는 장갑을 벗고 멈춘 라인에 엉덩이를 기대고 서 있었다.

 “야!  너 민선이지?”

 공장에 들어온 지 이틀만의 일이었다. 아마 수현의 입장에서는 엄청 뜸을 들인 접근이었을 것이다. 수현에게도 내가 풍기는 우울하고 지루한 기운이 느껴진 듯 수현은 나를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멈춘 기계가 오히려 수현을 움직이는 기름이 된 모양이었다.

 “응.”

나는 수현의 약간 아래로 처진 눈을 보면서 말했다. 그 눈이 수현의 인상을 한없이 부드럽게 하기도 했지만 나약하게 보이게도 했다. 하지만 매력적인 눈이었다. 마치 성난 고양이처럼 위로 올라간 내 눈은 아마 수현과 반대로 사람들을 멀어지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수현이 동갑인 나에게 가장 나중에 말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수현이야. 김수현! 나도 여기 3일밖에 안 됐어.”

 “응.”

 “넌 응 밖에 안 하는구나. 그래 접수했어. 여기 일 간단하지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응.”

 수현이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20분 후에 기계가 다시 돌아갔고 나는 자리에 앉아서 코팅이 안 된 뚜껑을 라인에 끼우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작은 시장이 있다. 시장 입구에 있는 과일 가게에서 사과를 사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집에 사과가 떨어지지 않게 했다. 과일 중에서 사과를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엄마.”

 나는 엄마를 뒤에서 안으면서 말했다.

 “지금 오는 거야? 힘들지 않았어?”

 “힘들긴 뭐.”

 과일봉지를 받아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하루 일을 엄마한테 말했다. 수현이라는 눈이 예쁜 아이가 말을 걸어왔던 일과 점심을 먹으면서 아주머니들이 이런 곳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거 보니 기특하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대학을 가야지 라고 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공장에 있는 외국인들은 식당에서 밥을 안 먹고 밥값을 따로 돈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야기도 했다. 외국인들은 아마도 공장 뒤에 있는 숙소에서 점심을 해 먹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돈을 더 아끼면 자기네 나라로 더 빨리 가게 되는 것이겠지 생각이 들었다.

 “에고 남의 나라에 와서 고생이 많네. 음식이 안 맞아서 직접 해 먹는 거겠지.”

 엄마의 말을 들으니 그런 이유도 있을 것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그것도 이런 공장에서 일을 하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울까 싶었다. 나는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도 매일이 낯설고 외로웠다. 학교에서는 좀처럼 친해지지 않았던 친구들이, 대학을 가든 안 가든 닥칠 홀로서기가 두려웠다. 대학 진학이나 취직을 위해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과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들이 내가 다 알고 있는 한국말인데도 어려웠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밥을 해 먹고 그 돈을 남기는 일들을 해 낼 수 있는 것일까.      

 저녁을 먹고,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는 옆에서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었다. 스마트폰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스마트폰 속에서 일어나는 연애와 영상, 쇼핑이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이 손바닥 크기의 세상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오지도 않는 카톡을 열었다. 새 친구가 있다는 알림 표시에 보니 수현이었다. 낮에 번호를 물어서 알려줬더니 새 친구로 자동 등록이 된 것이다. 수현의 프로필 사진은 남자 친구처럼 보이는 남자와 얼굴을 맞대고 찍은 사진이었다. 남자는 정면을 보고 수현은 남자를 향해 웃고 있었다. 수현과 비슷한 나이의 남자는 심하다 싶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마치 무대에서 도망친 아이돌 가수 같은 얼굴이었다. 수현과 다르게 남자는 웃지 않았다. 수현의 프로필 사진을 넘겨보니 남자가 함께 찍은 사진은 두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사진들은 모두 수현만 웃고 있었다. 남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 나는 둘의 사진을 보면서 둘이 만나서 보낼 시간을 상상해 보았다. 같이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가거나 카페를 가서 한 몸처럼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보였다. 끝없이 재잘대는 수현과 무심하게 대답하는 남자도 보였다. 나에게는 이런 사진을 찍는 순간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수현과 나의 성격만큼이나 나와는 먼 이야기 같은 사진이었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는 위태로운 돌탑 같았다.     


 로커룸에서 겉옷을 입고 가방을 꺼내 들고 나왔다. 오늘은 잔업이 있는 날이라 아주머니와 외국인들은 퇴근을 하지 않았다. 나와 수현은 퇴근하라는 팀장의 말에 수현이 먼저 나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수현이 보였다. 오늘도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겠지 생각했다. 수현이 버스를 타고 갈 때까지 기다릴까 생각하면서 걷는데 수현이 먼저 나를 발견했다. 마지못해 수현을 향해 걸어갔다.

 “민선아 너 집으로 가?”

 수현이 물었다.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수현이 갑자기 팔짱을 걸어왔다. 나는 수현에게 잡힌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가 이렇게 친한가 라는 물음과 엄마가 아닌 사람의 몸이 이렇게 가까이 닿은 적이 없어서 느끼는 긴장이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수현이 기분 나쁠까 봐 팔을 빼지 못했다. 3월이라 저녁 공기가 쌀쌀했다. 미세먼지가 많은지 코끝이 간질간질했다. 자꾸 재채기가 나려고 했다. 수현이 없으면 크게 재채기를 해서 코 끝에 묻은 먼지를 날려 보내고 싶었다. 나는 간질거리는 코와 수현의 팔 때문에 몸이 뻣뻣해졌다.

 “민선아 우리 저녁 먹고 가자. 이 근처에 떡볶이 맛있는 데 있어.”

 “응.”

 넌 여전히 응 이구나 하면서 수현이 웃으면서 나를 끌고 걸었다.      

 넓은 철판에서 떡과 쫄면 어묵 양배추가 빨간 양념과 함께 끓었다. 떡이 익자 수현은 접시에 담긴 치즈가루를 철판에 부었다. 치즈가 녹으면서 국물 위에 하얀 구름이 드리운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 여기 맥주 두 잔 주세요 하면서 수현이 떡에 치즈를 돌돌 말아먹었다. 나도 떡을 포크로 찍어 먹었다. 맥주가 나오자 수현은  단숨에 반잔을 마셨다. 술은 처음이라 나는 떡만 먹었다.

 “민선아 너 술 안 마셔?”

 “응. 난 마신적이 없어.”

 “헐~~ 믿어야 하냐? 그럼 일단 마셔봐. 기분이 좋아져서 너라도 안 웃고는 못 배길걸.”

 수현의 말에 맥주를 마셨다. 수현처럼 벌컥벌컥 마시자 쓴 맛과 함께 개운한 탄산에 속이 뚫리는 것 같았다. 떡 하나 맥주 한번 마시다 보니 떡볶이를 다 먹었을 때는 맥주 세 잔을 마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제야 몸이 노곤하게 취하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입이 간질간질 말이 하고 싶어 졌다. 아저씨 맥주 한잔 더 주세요. 수현아 맥주가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어. 나는 테이블에 몸을 기대면서 수현에게 말했다. 술 취하니까 너도 말하네 라며 수현은 어포 튀김을 시켰다. 어포를 마요네즈 간장소스에 찍어서 먹으니 맥주 맛이 더 났다. 청양고추가 마요네즈와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놀랐다. 어포가 아니라 마요네즈가 맥주를 불렀다. 나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대학을 가느니 돈을 벌겠어 어차피 대학 졸업해도 취업은 못하니까. 엄마는 손톱이 아니라 얼굴을 꾸며야 했어 손톱에 신경 쓰는 남자는 없으니까 나는 엄마한테 다 줄 거야 집도 돈도 나도.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방에 누워 있었다. 머리가 번개모양으로 아팠다. 속에서 어제 먹은 맛있는 마요네즈와 어포 튀김이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내가 몇 잔의 맥주를 마셨는지, 어떻게 집까지 올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수현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동영상이 아니라 사진으로만 남아서 알 수 없었다. 처음 마시는 술이라 양을 조절 못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맥주는 톡 쏘는 맛과는 다르게 숙취가 끔찍했다.

 부엌으로 나가서 엄마가 차려준 콩나물국을 마시니까 좀 나아졌다.

 “누구랑 그렇게 마셨어? 괜찮아?”

 “히히 맛있어서 마시다 보니까 수현이랑.”

 엄마는 쿨하게 나를 믿어주는 성격이라 별말 없이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먹고 있었다. 아마 달콤한 술에는 끔찍한 숙취가 남는다는 것을 내가 깨달을 것을 알기 때문인 듯 잔소리는 없었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겪고 느끼고 깨달으면 다시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엄마도 사랑하고 결혼하고 이혼하면서 달콤한 맛이 남긴 끔찍한 끝 맛을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수현과 나는 그날 이후로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수현이 남자 친구를 만나지 않는 날 우리는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수현은 맛있는 떡볶이를 파는 식당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떡볶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누들 떡볶이와 카레 떡볶이, 마라 떡볶이까지 수현은 모든 떡볶이를 좋아했다. 어쩌면 수현은 남자 친구와도 떡볶이를 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현이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공장이 바빠서 직원들은 잔업을 해야 했다. 집에 가도 별일 없고, 수현과 늦게까지 놀던 시간에 익숙했던 나는 집에 가기 싫어서 잔업을 하기로 했다. 9시까지 일을 하고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10시가 가까웠다. 3월 말이라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았다.

 “민선아!”

집 방향으로 걸어가는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정아였다. 정아는 같은 동네에 사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보낸 친구다. 대학에 다니는 정아가 보낼 스무 살이 나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정아를 보는 순간 들었다. 동시에 나는 내가 정아의 앞에서 걷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정아가 내 앞에 걸어가고 있었다면 나는 정아를 부르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걸었을 것이다. 어쩌면 중간에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어 정아야! 학교 갔다 와?”

 분명 내 목소리에 반갑지 않다는 기분이 묻어났을 것이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나는 이 기분을 숨기고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응. 학교 끝나고 알바 갔다 오는 거야. 넌?”

 “나도 알바.”

 짧게 답하고 둘 다 조용해졌다. 졸업한 지 고작 두세 달인데 공통의 화제가 없어진 우리는 6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는 것이 무색했다. 대학생이 되고서도 알바는 하는구나 그럼 공부는 언제 해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정아는 학자금이니 용돈이니 하는 말들을 하면서 나처럼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한숨을 쉬면서 걸었을 것이다.

 “민선아 잘 가. 나중에 전화할게.”

 정아의 집은 버스정류장과 우리 집 중간에 있는 빌라였다. 나도 그래 하고 손을 흔들었다.      


 드디어 첫 월급을 받는 날 아침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을 해서 번 돈이다. 집에서 엄마의 일을 도와주고 받은 용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공장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시간이 빨리 가서 저녁에 집으로 오는 버스에 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를 몽땅 건너뛰고 싶었다. 얼른 엄마를 만나서 나의 첫 월급을 엄마에게 바치고 싶었다. 아파트를 버리고 나를 택해준 엄마에게. 다시 사랑하고 재혼할 수 있었는데 나를 택해준 엄마에게.

 오전 작업은 작은 일회용 플라스틱 병을 세척하고 코팅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화장품을 사면 주는 샘플을 담는 통인 모양이다. 이런 작은 통은 작업하기 힘들었다. 10센티 정도의 간격으로 거꾸로 솟은 고드름 같은 막대에 세척 전의 통을 하나씩 끼우면 라인이 돌아가면서 윤이 나는 제품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다른 팀이 이 통들을 라인에서 빼서 박스에 담는다. 언젠가부터 수현과 나는 나란히 앉아서 작업하게 되었다. 자꾸 수다를 떨다가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팀장님은 우리가 나란히 앉아서 작업하는 것을 눈감아주고 있었다.

 “민선아 오늘 월급 받는 거 알지?”

 “그럼. 알지.”

 “월급 받으면 뭐할 거야?”

 “난 엄마 줄 거야. 넌?”

 “헐 엄마 준다고? 대박사건!”

 수현은 내 물음에 답하지 못할 만큼 놀랐는지 연달아 헐만 외쳤다. 그러는 수현은 그 돈을 어디에 쓸 계획일까 궁금했다.

 점심시간에 수현과 나는 근처 ATM 기계로 가서 통장을 확인했다. 백육십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스무 살이 된 것 같았다. 졸업을 하고 술을 마시고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나는 아직 고등학교의 앳된 티를 벗지 못한 것 같았는데 돈을 버는 순간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체크카드를 넣어 돈을 인출했다. 백오십만 원을 봉투에 넣어 공장 로커룸에 있는 가방에 넣고 번호키를 잠갔다. 첫 월급을 엄마에게 줄 생각으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오래 미룬 효도를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남은 시간은 너무 지루하게 지나갔다. 마치 시간이 1분마다 쉬어가는 기분이었다.

 6시 퇴근시간이 오자마자 나는 로커룸에서 가방을 꺼내 들고 나왔다. 가방에 있는 돈봉투를 확인하던 나는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돈이 없었다. 가방을 이리저리 뒤지고 샅샅이 찾아봤지만 없었다. 분명히 가방에 넣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수현아 나 민선인데 혹시 내 돈 못 봤어?”

 내가 왜 수현에게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수현이 내 돈을 가져갔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가 친하니까 물어본 것뿐이었다. 수현이가 혹시 로커룸에서 뭔가를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무슨 돈? 못 봤는데 왜?”

 수현은 남자 친구가 기다린다고 서둘러 나갔다. 아마 벌써 남자 친구를 만나서 근처 떡볶이집으로 가는 중일 것이다.

 “진짜 못 봤어? 나 돈이 없어졌어.”

 “못 봤어. 무슨 돈? 내가 가져갔다는 거야?”

 수현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롭게 올라갔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지만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네가 가져갔다는 게 아니고. 알았어. 미안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서 로커룸을 다시 둘러봤지만 돈봉투는 없었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수현과 남자 친구가 길을 막았다.

 “야 따라와.”

수현의 남자 친구가 차갑게 말했다. 나는 몸이 떨렸다. 수현이 왜 다시 왔고 남자 친구가 왜 나를 부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나를 찌를 것 같았다. 우리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앞서 걷던 두 사람이 홱 돌아보는 바람에 나는 두 사람과 부딪힐 뻔했다.

 “야 너 수현이한테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건데? 수현이가 돈 가져가는 거 봤어?”

 “아니요. 가져갔냐고 물은 게 아니고 봤냐고 물은 건데요.”

 내 목소리가 안쓰럽게 떨렸다. 아직 추운 저녁 공기가 얼굴에 스칠 때마다 더 심하게 몸이 떨렸다. 게다가 이런 좁고 외진 골목에서 무슨 일을 당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내 몸속에 있는 심장까지 떨리는 기분이었다.

 “야이 씨. 그게 그 말이지. 너 무슨 작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이거 완전 미친년이네. 이렇게 사람 마구 의심해도 돼. 네가 봤어?”

 마치 나를 때릴 것처럼 몰아붙이는 말에 나는 벽으로 밀려갔다. 나는 수현을 봤다. 수현은 남자 친구와 팔짱을 한 채 말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수현아 말해 봐 남자 친구한테 뭐라고 한 거야? 내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수현은 모른 척했다.

 “제 제가 잘못 알았나 봐요. 돈 잃어버린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나는 어서 이 좁고 무서운 골목과 수현과 남자 친구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둘러댔다. 이 곳에서 벗어 날 수만 있다면 그깟 돈 따위 없어도 살 것 같았다.

 “뭐야. 야 이 미친년이 장난하냐? 너 말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마라. 사람 완전 도둑 만들고 미친년이네. 너 정말 조지고 싶은 거 참는 거니까 나랑 안 마주치는 게 좋을 거야.”

 이 말을 남기고 두 사람은 골목에서 나갔다. 수현은 끝내 별말이 없었다. 나는 혼자 남은 골목에서 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른 낙엽과 과자 봉지, 담배꽁초가 널브러진 골목길 위로 지는 해의 끝자락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얼른 일어나서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그들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서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눈물이 쏟아지고 몸은 눈물에 잠기듯 굳어갔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오늘 아침에 걸었던 길과 달라져 있었다. 시장 입구의 과일가게에 담긴 딸기는 검은빛으로 보였다. 과일가게 아주머니가 랩을 씌운 망고에 가격표를 쏘고 있었다. 마치 기관총을 쏘는 군인 같았다. 아주머니의 얼굴에 비친 백열등 빛이 핏빛으로 아른거렸다. 시장 안에서 들리는 갖가지 소리들이 거대한 덩어리로 나를 덮칠 듯이 밀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소리가 나를 삼키고 주물러서 검은 반죽을 만들어 버릴 것 같았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어둠이 안개처럼 깔리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거리는 낯설었다. 이 동네에서 7년을 살았는데 이런 어둠과 이런 두려움은 처음이었다. 자주 지나쳐서 아는 가게와 가게 주인들의 얼굴들이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었다. 설익은 어둠 속은 깊은 밤보다 더 불안한 두려움을 준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아니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출근할 때까지 자는 척하다가 엄마가 나가면 똑바로 누워서 천장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보지는 않았다.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아침도 점심도 먹지 않고 누워서 천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수현이 정말 내 돈을 가져갔을까? 로커룸 번호를 모를 텐데 말이 안 된다. 아니야 내가 로커룸을 열 때 봤을지도 몰라. 아니야 수현이 안 가져갔다고 했어. 안 가져갔는데 왜 두 사람은 나를 협박했을까? 내가 수현을 의심한다고 생각해서 화가 나서 그랬을 거야. 혹시 그 전에도 수현이 내 로커룸을 열어서 가방을 뒤진 적이 있을까? 나는 작업 중에 화장실에 간다고 종종 자리를 비우던 수현을 생각했다. 그날 점심시간에 돈을 찾아서 로커룸에 넣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가 밀려왔다. 공장에서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가 왔다. 나와 수현을 잘 챙겨주던 순옥 아주머니였다. 월급 다음날부터 수현도 나도 출근을 안 해서 공장이 바빴다고 했다. 며칠 만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했다는 말도 했다. 수현은 왜 출근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나는 카카오톡으로 들어갔다. 수현의 프로필에서 수현과 남자 친구가 웃고 있었다. 배경에 이국적인 해변의 풍경이 보였다. 둘이 여행을 간 모양이었다. 나를 골목으로 몰아붙이고, 위협하던 남자는 없었다. 남자는 정면을 보고 있었고, 수현은 남자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고, 수현의 얼굴은 사랑으로 포근했다. 내 얼굴에 독거미가 내려앉은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소리도 지를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나한테 욕을 해대던 남자의 말들이 아지랑이처럼 살아났다. 엄마한테 미안한 모멸감이 밀려왔다. 엄마가 모든 것을 버리고 키운 딸이 이런 취급을 당하고 다녔다는 사실이 엄마의 삶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졌다. 치욕스러움과 공포에 떨면서 하루 종일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을 보는 척했다. 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나에게 엄마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엄마가 물어와도 해줄 말이 없었다. 언젠가 내가 편하게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못할 것 같았다.

 퇴근을 한 엄마와 먹는 저녁이 나의 첫끼이자 마지막 끼니였다. 그것마저도 먹지 않는다면 엄마가 너무 걱정할 것 같아서 나는 저녁을 먹고 드라마를 보고 잠을 잤다. 드라마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 나는 뱃속이 텅 빈 것 같은 상태였다. 잠깐씩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는 집이 통째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벽을 짚고 걸어서 화장실에 갔다. 이렇게라도 해서 나를 채우고 있는 후회와 공포를 비워내야 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나는 집 밖으로 나왔다. 5월의 햇살이 눈을 찔렀다. 어디선가 향긋한 라일락 향기가 났다. 나는 집 바로 앞에 있는 슈퍼로 들어갔다. 슈퍼 안의 그늘의 냉기가 서늘했다. 다시 어지러운 짧은 길을 걸어 집으로 온 나는 슈퍼에서 산 라면 두 개를 끓였다. 계란도 파도 넣지 않고 끓인 라면 두 개를 나는 멈추지 않고 먹었다. 오래 비워둔 배는 금방 찼다. <2021 소설미학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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