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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11. 2021

사방치기

연주가 집 앞 골목에서 사방치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네에서 연주의 친구는 딱 한 명입니다. 연주와 나이가 같은 정아입니다. 연주는 서른 가족이 전부인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많습니다. 연주네와 정아네가 딸기 농사를 지으려고 이 마을에 오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정아가 이사 오기 전에는 연주 혼자서 노는 날이 많았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놀았습니다. 아무도 내리지 않을 때가 많지만 오일장에 다녀오는 할머니들이 손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내리는 것을 구경하며 놀기도 했습니다. 여름에는 엄마랑 도랑에 가서 물장난을 하거나 다슬기를 잡았습니다. 겨울에는 아빠랑 눈싸움을 했습니다. 지금은 정아랑 이 놀이들을 하고 놀아서 좋습니다. 


“연주야! 노올자!”


연주는 하루 종일 심심했는데 정아의 목소리를 듣자 신나서 달려 나갑니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놀까 생각하니 콧노래가 납니다.


“연주야 우리 사방치기하자!”

“그~래!”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연주가 이겼습니다. 연주는 작은 돌을 1단에 놓고 폴짝 뛰어 줍고 돌아옵니다. 연주는 신이 납니다. 2단에 돌을 던집니다. 그런데 돌이 또르르 굴러서 1단에서 멈춥니다. 정아가 시작할 차례입니다. 정아는 3단까지 다녀오고 4단에서 기우뚱 넘어집니다. 연주는 이번에는 꼭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연주는 2단에서 다시 정아에게 차례를 넘겨줍니다. 정아는 4단도 5단도 춤추듯 뛰어넘습니다. 정아는 신이 나서 돌을 던집니다. 정아의 다리는 나비처럼 그림판을 왔다 갔다 합니다. 연주는 그런 정아가 얄밉습니다. 정아가 빨리 실수를 하기를 기다리는데 정아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새 어둑어둑 땅 꺼미가 지고 있습니다. 언제 엄마가 연주야 저녁 먹자 하고 부를지 모릅니다. 그런데 연주의 차례가 도통 오지 않습니다. 연주는 얄미운 정아를 노려봅니다. 어서 실수를 하라고 주문을 걸어보기도 합니다. 


“연주야 너 왜 자꾸 나 노려봐?”

“노려본 적 없거든.”


정아의 말에 연주는 속마음을 숨깁니다. 또 노려본다고 할까 봐 정아의 발만 뚫어져라 봅니다. 분홍색 작은 구두를 신은 정아의 발은 폴짝폴짝 잘도 뜁니다. 


“연주야! 저녁 먹게 그만 놀고 들어와라.”


엄마의 목소리가 대문 넘어 들려옵니다. 연주는 속이 상해서 집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한 번만 더 연주의 차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연주야 나도 저녁 먹으러 가야겠다. 안녕~!”


연주의 마음도 모르고 정아는 손을 흔들고 집으로 갑니다. 정아는 폴짝폴짝 신이 나서 뛰어갑니다. 뒤로 묶은 정아의 꽁지머리가  폴짝폴짝 춤을 춥니다. 연주는 속이 상해서 집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녁도 먹고 싶지 않습니다. 텅 빈 그림판을 보다가 돌멩이를 툭 차고 돌아섭니다. 

 저녁상이 차려진 평상에 아빠가 앉아서 연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마가 계란말이가 담긴 접시를 가지고 부엌에서 나옵니다. 엄마 아빠를 보자 연주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돕니다. 그래도 울지 않을 생각입니다. 울음을 참고 서 있는 연주를 보고 엄마가 묻습니다.  


“연주야 왜 그래? 정아랑 싸웠어?”


연주는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눈물이 한 방울 똑 떨어집니다. 눈물이 떨어지면서 갑자기 아~앙 소리가 입에서 나옵니다. 

 

“연주야 왜 그래?”

“정아가~정아가.”


연주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연주가 말합니다. 정아가 사방치기를 4단도 넘고, 5단도 넘고, 6단도 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연주는 2단도 못했는데 더 이상 차례가 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속상해서 눈물이 난다고 말합니다.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 정아가 얄미워서 노려봤다고 말합니다. 정아가 미워서 눈물이 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폴짝폴짝 뛰어서 집으로 가는 정아의 뒷모습이 신나 보여서 눈물이 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따라 빨리 어두워진 골목길도,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도 연주는 속상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연주는 훌쩍 눈물만 닦습니다.


“우리 연주가 속상한 일이 있나 보구나!”


아빠가 연주를 번쩍 안아 무릎에 앉힙니다. 아빠의 커다란 팔에 안긴 연주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다시는 정아랑 놀지 않을 거라고 생각입니다. 내일 정아가 불러도 놀러 나가지 않을 겁니다. 


“연주야 무슨 일인지 아빠한테 말해줄래?”


아빠의 말에 연주는 겨우 말합니다. 

 

“이제 정아랑 놀지 않을 거야!”

"정아랑 싸웠어? 아빠한테 말해봐."

"정아가 내가 노려보지도 않았는데 노려봤다고 했어요."

"정아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연주가 정아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지?"

"나 이제 정아 싫어."


연주는 사방치기 얘기는 더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빠가 연주의 등을 토닥토닥해줍니다. 연주의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우리 연주 배고픈데 어서 저녁 먹자!”


아빠는 연주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연주 입에 넣어줍니다. 따뜻한 계란말이를 오물오물 먹으니까 연주의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아빠가 소시지를 먹여줍니다. 연주는 7살이지만 아기처럼 받아먹습니다. 맛있습니다. 


 “아빠! 내일은 정아랑 공기놀이를 할 거예요!”


연주가 말합니다. 다시는 정아랑 놀지 않겠다고 한 말은 까먹었습니다. 대신 공기놀이는 정아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두워진 밤하늘에 공기처럼 작고 예쁜 별이 하나둘 반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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