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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03. 2021

베트남 엄마

 올해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인 경수의 하루는 아이들의 따돌림과 폭력으로 끝이 난다. 벌써 2년이 넘게 경수의 학교생활은 이런 식이었다. 변한 것이 있다면 따돌림은 더 심해졌고, 폭력은 더 잔인해졌다는 것이다. 오늘도 경수의 몸에 담뱃불로 지진 자국을 하나 더 남기고 남서야 아이들의 폭력은 끝이 났다. 경수는 힘들지만 이상하게도 2년간 그 폭력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제 그 시간만 견디면 그날 하루도 끝났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읍에 있는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경수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집에 일찍 간다고 해도 경수가 할 일도 없고, 경수를 반겨 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을 챙겨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경수는 집에 가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말을 못 하는 아버지는 버섯 하우스에 가셔서 날이 어두워져야 집에 돌아오실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경수는 4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 집에 도착했다. 빈집일 거라 생각했지만 집에는 아버지와 이장님이 와 계셨다. 그리고 어색하게 서 있는 낯선 여자의 모습도 보였다. 며칠 전에 아버지가 얘기했던 새엄마가 될 사람인 것 같았다.      

 처음에 아버지한테 새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경수는 이상하게 심장이 뛰었다. 항상 가까이 있지만 불러보지도 못하는 엄마에 대한 아련함이 경수를 설레게 했다. 아버지가 베트남이라는 나라에서 새엄마가 온다고 했을 때 경수는 자신의 주위를 맴돌지만 결코 자신을 안아주지 않는 엄마를 생각했다.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멀지만 그곳에서 오는 엄마는 같은 곳에 살고 있는 친엄마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마을에 이미 베트남이나 그 비슷한 나라에서 온 여자들이 몇 명 있기 때문에 경수는 새엄마가 낯설지 않았다.      


 새엄마는 베트남에서 왔고, 올해 26살이라고 이장님이 소개해 줬다. 아버지와 11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엄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로 여겨졌다. 경수 새엄마의 이름은 타잉이다. 타잉은 이 자리가 어색하고, 여행에 지친 표정이지만 웃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경수를 보자 타잉은 살짝 웃어 보였다. 그런 타잉을 보자 경수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잉의 웃음이 지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도 웃어 주려고 했지만 경수의 미소는 이상하게 비뚤어져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타잉은 얼굴에서 웃음을 감춰 버렸다. 경수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장님이 타잉을 대충 소개하고 가 버리고 나자 세 사람은 힘든 침묵 속에 빠지게 되었다. 오늘은 일단 아버지가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타잉을 환영하는 의미로 아버지는 저녁을 푸짐하게 준비했다. 아버지는 요리를 잘했다. 엄마와 함께 살 때도 아버지는 요리를 자주 했다. 경수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는 요리를 잘하지 못했다. 항상 짜거나 싱거운 음식을 먹는 것이 힘들었던 아버지는 스스로 음식 솜씨를 키워갔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음식을 하는 것은 아주 익숙한 일이다.

 타잉이 도우려고 부엌으로 들어왔지만 아버지는 몸짓으로 나가라는 의사를 전했다. 부엌을 나온 타잉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경수 옆에 앉았다. 경수는 타잉이 싫지 않았지만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색함이 싫은 경수는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타잉은 그대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지만 불안했다. 경수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자신을 싫어할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살아야 한다는 것이 타잉에게는 가장 낯설고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가 차린 저녁상에 세 사람은 마주 앉았다. 서로 무심하게 밥을 먹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 사람은 서로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타잉이 자신이 한 음식을 잘 먹는지 보고 있었고, 타잉은 음식을 먹는 경수와 아버지를 따라 반찬을 집어 먹었다. 입맛에 안 맞는지 타잉은 음식을 조금만 먹었다. 그런 모습이 신경이 쓰이는 아버지는 자꾸 타잉을 봤다. 타잉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몰라 답답했다. 당장 내일 아침은 무슨 반찬을 할지 당분간은 자신이 차릴 밥상의 메뉴가 걱정이었다.

 타잉은 자신을 위해 음식을 해준 것이 고마웠지만 아직 한국음식보다 베트남 음식이 먹기에 편했다. 게다가 베트남에서도 타잉은 많이 먹는 편이 아니어서 한 공기 가득 담은 밥을 다 먹기가 힘이 들었다.

 밥을 반이나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직 밥을 먹고 있던 경수도 타잉이 남긴 밥에 신경이 쓰였다. 한국음식이 싫은 건지 우리가 싫은 건지 경수는 그런 생각들과 함께 밥을 입으로 가져갔다. 세 사람은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저녁 식사를 마쳤다.


 타잉의 훌쩍거리는 소리에 아버지는 잠에서 깼다. 거실에서 타잉이 울고 있었다. 오늘 하루가 타잉에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버지가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타잉이 떠날까 봐 두려웠다. 경수 친엄마와 헤어지고 난 후 아버지는 경수에게 항상 미안했다. 엄마 없이 자라는 것이 안쓰러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런 시골에 게다가 말 못 하는 자신에게 올 여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베트남에서 경수 새엄마를 데리고 오기로 했지만 처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이장님이 타잉을 데려왔을 때 그 생각은 달라졌다. 타잉의 선한 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경수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신에게도 경수에게도 행복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타잉의 눈물이 아버지를 잠 못 들게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세 사람은 가족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직은 서로 서먹하고 낯선 기운이 다 가신 것은 아니지만 어제보다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먼저 부엌에서 아버지를 도와 된장찌개를 끓이는 타잉의 모습이 그랬다. 타잉은 이 집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경수는 오랜만에 집이 꽉 찬 기분이었다. 아침부터 자꾸 웃음이 나왔다. 엄마, 아빠 그리고 경수가 사는 집이 경수를 설레게 했다.

 그날 저녁 세 사람은 다시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타잉을 위해 정성을 다한 흔적이 보이는 아버지의 식단이었다. 하지만 타잉이 먹는 모습은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버지는 타잉을 보다가 경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듯 눈짓을 보냈다. 타잉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경수라고 해서 타잉에게 말을 걸기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경수도 아버지를 향해 눈짓으로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느냐는 뜻으로 눈썹을 위로 올렸다 내렸다. 두 사람이 이런 조용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타잉은 경수의 손에 난 상처에 눈이 갔다. 아버지와 눈짓으로 대화를 나누던 경수는 타잉의 손길에 놀라 몸이 움찔했다. 타잉이 상처부위를 만지자 경수의 손이 빠르게 움츠려 들었다.     

 경수의 손에 생긴 상처는 오늘 새로 생긴 것이었다. 그래서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채 붉은 핏자국이 보였다. 경수는 타잉이 자신을 걱정스럽게 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왜 다쳤는지 물어보는 것이겠지만 경수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도 경수의 손에 상처를 못 본 것은 아니지만 모른 척했다. 경수에게는 항상 미안하지만 경수를 대신해 싸워주거나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아버지가 나설수록 경수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자신 때문에 그동안 경수가 겪었을 일들에 아버지는 많이 아팠다.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놀림이나 시선만큼이나 경수가 지금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는 경수를 보는 것이 많이 아팠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타잉은 약상자를 꺼내 경수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경수는 쑥스러워 손이 자꾸만 움츠려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타잉의 손은 아버지와 달리 부드러웠다. 경수는 그동안 잊고 있던 엄마를 느꼈다. 상처 때문인지 타잉의 부드러운 손 때문인지 경수는 손끝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타잉의 얼굴을 가까이 보기는 처음이었다. 예뻤다. 우리나라 사람보다 피부가 조금 검은 편이지만 이렇게 예쁜 사람이 새엄마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경수는 타잉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저녁이 저물어갔다.

 밤이 깊어서 타잉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가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경수가 화장실에 있다고 생각한 타잉은 소파에 앉아 경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물소리는 나는데 경수는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타잉은 조금 열린 화장실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경수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속옷과 양말을 빨고 있었던 것이다. 타잉은 얼른 안으로 들어가 경수의 손에서 양말을 뺏어 들었다. 자신이 대신 빨래를 하려는 것이었다. 경수는 놀라서 타잉을 보고 말했다.

 “빨래하는 거예요.”

 말하고 나서 경수는 타잉이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처럼 수화나 몸짓으로도 말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경수는 답답했다.

 “괜찮아요. OK? 진짜 괜찮아요.”

 경수의 말이 무슨 뜻인지 타잉은 알 것 같았다. 아버지와 둘이 살아오는 동안 경수는 혼자서 자기의 일을 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밥을 하는 일이 경수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타잉은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곳에 왔는지 타잉은 알고 있다. 그래서 도착하기 전에 기도했다. 아직은 사랑하지 않지만 새로 생긴 가족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다행히 말을 못 하는 남편도, 이미 커버린 아들 경수도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타잉은 마음이 놓였다. 베트남에 살 때 한국사람과 결혼해서 고통받고 버림받은 여자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걱정했는데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경수와 남편에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을 다친 경수가 빨래를 하게 둘 수는 없었다. 경수의 상처는 이미 빨래를 하면서 물이 닿아서 약도 씻기고 살갗이 벗겨져 흐물거리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타잉은 강제로 경수를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이 경수의 옷을 빨아서 건조대에 널었다. 그리고 경수의 방에 들어가 보았다. 경수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타잉은 경수의 손에 다시 약을 바르고 나서 경수의 방을 나왔다.      


 한 달이 지나자 타잉은 혼자서 요리도 하고 대부분의 집안일을 능숙하게 해냈다. 타잉은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청소나 설거지를 아주 깔끔하게 했다. 그래서 경수는 매일매일 기분이 좋았다. 엄마가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는데 이제 그 편안한 일상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도 타잉을 조금 더 편안하게 대했다. 타잉이 만든 음식은 대체로 먹을 만했지만 가끔 아주 희한한 맛이 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장난스럽게 맛있다는 표현을 했다. 엄지손가락을 들고 활짝 웃었지만 경수를 향해 웩하는 시늉을 해 보여 타잉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서로 대화는 없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타잉은 여전히 밥을 많이 먹지 않아 아버지는 항상 타잉을 걱정했다. 타잉에게 더 먹으라는 시늉을 해 보이지만 타잉은 항상 “괜찮아요” 하면서 배부르다는 뜻으로 배를 내밀었다.

 경수의 눈에 아버지가 이렇게 마음을 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표현이 없고 무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일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었다.      

 사실 경수가 생각하는 만큼 아버지가 무심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말을 못 하기 때문에 겪었던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아니 털어놓을 방법을 몰랐다. 경수 할머니는 수화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항상 혼자 마음에 담아두는 버릇이 생겼다. 경수 친엄마가 정신을 놓은 것도 자신 때문은 아닐지 아버지는 모든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경수 친엄마는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을 위해 수화도 열심히 배우고 경수를 낳고 나서는 정말 행복했다. 경수가 다섯 살 쯤이었을 것이다. 경수 친엄마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이었다. 커피를 타면서 고춧가루를 넣거나 김치를 담그면서 커피를 붓는 것 정도였다. 그러다가 이웃집에 들어가 널어놓은 옷을 다시 빨기도 하고, 더러운 옷을 옷장을 정리해 두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점점 경수 친엄마를 불편해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경수 엄마와 헤어질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행동이 경수를 위험하게 만들었다. 너무 뜨거운 물로 경수를 목욕시켜서 경수를 경기하게 했다. 경수가 먹으면 안 되는 할머니 약을 간식으로 먹여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좋아지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경수 엄마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경수 엄마를 대했지만 알 수 없는 병은 깊어갔다. 결국 경수 외할아버지가 이혼을 권했고, 경수 엄마는 친정으로 갔다. 경수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경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견딜 만했었다. 하지만 2년 전 경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와 경수는 많이 외로웠다. 타잉이 두 사람에게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은 조금 불편하지만 집안에서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 변화였다.


 며칠 후 경수는 학교에 다녀오던 길에 마을 입구에서 이장님을 만났다. 자전거를 타고 경수의 인사를 받고 가던 이장님은 다시 돌아와 경수를 붙잡았다. 의아해하는 경수에게 이장님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경수야 집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갑작스러운 이장님의 말이 순간 경수를 불안하게 했다. 혹시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요. 아침까지는 아무 일 없었는데요. 왜 그러세요?”

 “방금 동네에서 니 친엄마를 봤거든. 몇 년 만에 처음 동네에서 보는 거라서 무슨 일인가 하고.”

 친엄마라는 말에 경수는 얼어붙었다. 친엄마에 대해서는 항상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뿐이었다. 아이들의 따돌림 속에서 경수는 항상 엄마의 소식을 들었다. 엄마가 어느 동네에서 남의 집 안방을 차지하고 자고 있다가 주인에게 쫓겨난 이야기에서 지나가는 버스를 세우고 비켜주지 않아서 끌려 나갔다는 이야기까지 아이들이 들려주었다. 지금 엄마가 사는 동네와 경수가 사는 동네는 자동차로 이십 분 가까이 가야 하는 거리지만 이렇게 작은 읍에서는 누구나 엄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멀어도 아직도 오일장이 있는 이곳에서는 장날이 되면 서른 개가 넘는 마을의 사람들이 읍으로 나와 커다란 하나의 동네를 이루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 결혼하고 같은 학교를 다닌 터라 대부분이 친척이고 친구였다. 어느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장날만 되면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이런 곳에서는 사생활이라는 것을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간섭을 좋아해서 경수는 가끔 듣고 싶지 않은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일이 자주 생겼다. 엄마는 가끔 정신이 돌아오는지, 정신이 돌아오면 경수를 찾아오는지, 그 후로 엄마를 만난 적은 있는지 묻고는 항상 마지막은 어린것이 안됐다는 내용으로 끝이 났다. 그런 질문에 경수가 어떤 상처를 받는지 말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냥 지나가는 안부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항상 경수는 엄마를 만나지 못하지만 엄마와 함께 했다. 엄마는 늘 경수를 힘들게 했다. 또 어떤 일로 자신에게 잔인한 소문을 듣게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우리 동네에 와 있다니 무슨 일인지 걱정이었다.

 “너네 집에 가던 길은 아닌 것 같더라. 나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람이 더 변했어.”

 “네. 안녕히 가세요.”   

 경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런 대화는 길어져도 항상 같은 내용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경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아저씨한테 찾아와라.”

이장님은 걱정 어린 말로 경수를 보냈다.      

 집을 나간 후 엄마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좁은 지역이라 어쩌다가 길에서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엄마는 경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경수도 엄마를 아는 체하지 않고 멀리서 보다가 돌아서곤 했다. 경수와 엄마는 다른 집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수는 엄마가 미울 때가 많았다. 아이들의 따돌림이 싫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살고 싶었다. 아버지도 다른 사람과 달라서 힘든데 엄마까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원망이나 미움은 많이 사라졌다. 아이들로부터 받은 폭력에 익숙해지듯이 이런 상황들이 조금씩 일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아버지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아버지도 엄마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경수는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갑자기 동네에 나타난 것도 마음에 걸리고 타잉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온 것은 아닌지도 걱정이었다. 그러다가 경수는 갑자기 엄마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타잉과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행복하게 지내는 동안 엄마를 잊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좋은 추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많았지만 그래도 경수는 엄마가 불쌍했다. 엄마가 하는 행동들은 엄마가 진심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고 할머니가 말해 주었다. 사람이 몸을 다치면 아픈 것처럼 마음을 다쳐서 마음이 아픈 거라고 했다. 그래서 경수는 어른이 되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게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타잉과 함께 있는 동안 경수는 그런 결심까지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엄마가 혹시 더 안 좋아진 것이 아닌지 경수는 죄책감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경수의 걱정과는 다르게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요리라기보다는 라면처럼 간단하게 만들 수 있게 나온 베트남 쌀국수를 조리법대로 만드는 것이었다. 타잉은 옆에서 내심 기대에 차서 쌀국수를 끓이는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포장지를 보고 경수는 빨리 맛보고 싶었다. 집에 오기 전에 자신을 괴롭히던 생각도 처음 먹어보게 될 쌀국수 때문에 잠깐 잊게 되었다.

 드디어 요리가 완성되고 식탁에 세 사람은 앉았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먼저 한입 떠먹은 경수는 맛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라면보다 맛이 있지는 않았다. 아버지 생각도 같았다. 첫 숟가락부터 국수 맛도 아닌 것이 묘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라면만 못했다. 그래도 모처럼 맛있게 먹는 타잉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와 경수는 먹을수록 라면 생각나게 하는 쌀국수를 억지로 먹으면서 타잉이 그동안 한국음식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잉은 처음으로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사실 베트남에서 먹던 음식에 비해 맛은 별로였지만 신경 써 준 것이 고마워서 남길 수가 없었다. 타잉은 그동안 마음에서 멀리 두었던 이 집과 경수와 경수 아버지가 조금씩 마음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마음으로 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교문을 나서던 경수는 자신을 기다리는 무리 옆에 있는 엄마를 보았다. 경수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가야 할지 아니면 모른 척 지나쳐야 할지 망설여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에게 아는 체 하기가 어색했다. 게다가 평소에 엄마를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 앞에서 경수는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교문 앞에 얼어붙은 경수를 본 아이들이 경수를 향해 다가왔다.

 “야 찐따!”

 경수는 주저주저하면서 엄마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아이들은 엄마를 알아볼 것이다. 시골에서 아이들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소문에 빠르고,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공격부터 하고 보는 식이었다. 엄마 얼굴을 아는 아이들은 몇 명이 고작이지만 금세 경수 엄마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다. 어차피 경수는 자신이 엄마와 완전히 남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최대한 의연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외할아버지 댁에 계신 탓에 엄마의 옷차림은 깔끔했다. 겉모습만으로는 엄마는 얌전한 주부처럼 보였다. 엄마는 경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엄마가 왜 학교 앞에 와 있는지 경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수가 엄마에게 다가가는 것을 본 아이들은 그제야 경수를 놀리기 시작했다.

 “찐따 너네 엄마냐?”

 “야 그럼 이거냐?”  

 “맞네. 미친년”

 아이들은 오른쪽 검지를 귀 옆에 대고 거꾸로 원을 그리면서 경수와 엄마를 둘러쌌다. 경수는 자신을 생각 없이 보고 있는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엄마는 조용히 경수를 따라 걸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두 사람을 따라 걸으면서 놀림을 계속했다. 엄마는 아이들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따라 하면서 천진하게 웃었다. 자신을 미쳤다고 표현하는 엄마의 행동에 아이들은 웃겨서 죽겠다는 듯이 웃어댔다. 아이들의 행동은 경수의 몸을 아프게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충분히 아프게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금방 두 사람에게 싫증을 내고 사라졌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경수는 여전히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걸었다. 마을에 도착한 경수는 잠시 망설였지만 엄마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자신도 배가 고팠지만 엄마도 배고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타잉이나 아버지가 집에 있을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그동안 엄마에게 느낀 미안함에 엄마를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집에는 타잉도 아버지도 없었다. 부엌에 밥이 없는 것을 보고 경수는 라면을 끓여 엄마를 대접했다. 경수 생각처럼 배가 고팠는지 엄마는 맛있게 먹었다. 모자는 말없이 두 사람만의 만찬을 함께 했다.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경수는 순간 긴장했다. 아버지나 타잉이 엄마를 보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냥 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아버지의 얼굴이 엄마를 보자 일그러졌다. 다짜고짜 경수의 뺨을 때렸다. 놀라기도 했지만 정말 아팠다. 지금까지 아버지한테 맞은 적은 없었다. 경수도 놀랐지만 엄마와 타잉도 놀랐다. 겁먹은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경수 뒤로 숨어서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밥상을 엎고 불같이 화를 냈다. 말로 할 수 없는 마음을 말 대신 행동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물건을 집어던지고 경수를 잡고 흔들면서 소리 지르듯이 수화를 했다. 엄마가 왜 집에 와 있는지 경수가 데리고 온 건지 그동안 계속 이렇게 집에 드나들었는지 아버지의 수화는 너무 빠르고 흥분한 탓에 경수도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경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말 못 하고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경수는 아버지가 거칠게 화를 내고 있지만 눈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맞은 얼굴이 아팠지만 경수는 아버지가 지금 느낄 두려움과 답답함을 알 것 같았다. 타잉이 엄마를 알 것도 아니지만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놀랐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타잉에게 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라면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경수 마음도 타잉이 알아주길 바랐지만 아버지는 타잉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마음을 잃고 겁에 질린 경수 친엄마도 안쓰러웠다. 그런 마음이 흔들리는 아버지의 눈에 나타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 타잉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접하는 상황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은 아니지만 그동안 베트남에서 들었던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생각에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되었다. 타잉은 짐도 싸지 않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타잉이 안 보이자 찾으러 나갔다. 다시 둘만 남게 되자 경수는 아직 떨고 있는 엄마에게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하고 대충 집을 정리했다. 바닥에 쏟아진 라면과 국물을 걸레로 닦고 설거지통에 그릇들을 담아놓을 때까지도 엄마는 너무나 얌전히 앉아 있었다. 경수는 엄마를 외할아버지 댁에 데려다 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 거리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타잉을 찾으러 나간 아버지는 우선 타잉이 친하게 지내던 베트남 여자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갔다. 마침 여자는 집에 있었지만 타잉은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디서 타잉을 찾아야 할지 몰라 힘없이 그 집을 나왔다. 그 시간에 타잉이 그 집에서 숨죽이고 있었던 사실도 모른 채였다.

 타잉은 베트남 여자에게 대충 상황을 이야기했다. 여자는 타잉을 위로하면서 경수 아버지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사실이었다. 이 마을에 산지 3년이 되었지만 경수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예의가 없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비록 말은 못 하지만 경수 아버지는 점잖은 사람이었다. 타잉은 조금씩 두려움이 사라졌다. 상황을 되짚어보니 경수 뒤에 낯선 여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 여자와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수 식구와 지내는 동안 느꼈던 따뜻함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타잉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집을 나온다고 해도 타잉이 갈 곳은 없었다.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갈 돈도 없다. 그리고 결혼할 때 받은 돈은 이미 동생 수술비로 써 버렸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타잉은 경수 식구와 지낸 지난 한 달을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밤늦도록 타잉을 찾아다니던 아버지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경수 엄마의 겁먹은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경수는 자신에게 맞고 놀라서 자신을 쳐다봤다. 타잉은 차마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고 말았다. 도대체 오늘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조차 정리가 되지 않았다. 왜 경수 엄마가 집에 왔는지 모르지만 경수에게 책임을 물은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버지는 경수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경수는 침대에 누워서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아마 타잉이나 자신을 기다리다 잠이 든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불을 덮어주고 경수의 뺨을 만져 보았다. 어린 경수의 작은 얼굴에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이 마음이 아파왔다.


 다음 날 아침 경수는 일어나서 타잉이 부엌에 없는 것을 보고 실망해서 아침도 거르고 학교에 갔다. 자기가 엄마를 집에 데리고 온 일이 후회가 되었다. 아버지도 타잉도 자신의 행동 때문에 행복을 잃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하교를 하는 무리들은 어제처럼 경수 엄마 흉내를 내며 경수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아이들의 잔인한 웃음이 학교 앞 길에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천천히 경수에게서 물러났다. 아이들의 모습은 많이 당황한 것 같았고, 어떻게 보면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해도 경수가 이런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경수의 행동이 당황스러웠다.

 “야 너 우냐?”

 “찐따 너 왜 그래?”

 경수는 울고 있었다. 아이들은 우는 경수에게서 서서히 물러나서 점점 멀어져 갔다.

 혼자 남은 경수는 아이들과 자동차가 정신없이 지나가는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그동안 겪은 일들보다 어제 하루 겪은 일이 경수를 더 힘들고 서럽게 했다. 경수의 눈물은 그 뒤에도 계속 멈추지 못했다.

 그 시간에 이미 타잉은 집에 돌아와서 경수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타잉에게 했던 것처럼 경수에게도 사과하기 위해 경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경수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 집으로 가지 못했다. 그렇게 거리에는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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