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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19. 2021

이사 간친구

 “엄마 몇 밤 자면 가요?”

정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엄마에게 물었어요. 정우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는 살짝 웃으면서

 “네 밤만 자면 가지.”

라고 대답했어요.

“아직도 네 밤이나 자야 돼?”

정우는 시무룩해서 말했어요.

 “네 밤만 자면 가는데?”

엄마는 식탁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을 놓으면서 말했어요.

 “난 매일 승지가 보고 싶다구요. 승지가 이사 가기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승지가 그렇게 보고 싶어?”

 “그럼요. 승지는 제일 친한 친구였으니까요.”

엄마는 정우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식탁에 수저를 놓으며 말했어요.

 “정우야 이제 손 씻고 아침 먹자.”

 “네.”

정우는 손을 씻으러 가면서 달력을 들여다보았어요. 8월 6일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승지 만나러 가는 날이라고 쓴 글씨가 보입니다.

 승지는 유치원도 같이 다니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같은 반이 된 친구였어요.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학교가 끝나면 정우와 승지는 놀이터에서 노는 날이 많았어요. 놀이터를 한 바퀴 도는 달리기 시합도 하고 딱지치기도 했어요. 정우는 승지에게 가장 아끼는 대왕 딱지를 4개나 주기도 했어요. 공격력이 강한 딱지라 다른 친구라면 아까워서 망설였겠지만 승지에게 주는 것은 아깝지 않았어요.

 승지도 정우한테 아끼던 포켓몬 카드를 10장 넘게 준 적이 있었어요. 정우와 승지는 정말 단짝이었어요.

 그런데 1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 여름방학이 되려면 한 달도 넘게 남았는데 승지가 이사를 갔어요. 정우가 사는 곳에서 2시간이나 떨어진 파주라는 곳이었어요. 이사를 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정우는 알고 있었어요. 정우도 2년 전에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에요.      

 2년 전 여섯 살에 이사를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때였어요. 엄마 아빠가 사정이 생겨서 사는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때 사실 정우는 좋아했어요. 새로운 건 다 좋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새로운 장난감, 새로운 운동화는 항상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이사를 오니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거의 매일 만나서 놀던 친구들도 만날 수가 없고, 같은 유치원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게 되었어요.

 새로운 유치원에 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서 신나게 놀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집에 와서 세수를 하거나 밥을 먹을 때는 예전 친구들 생각에 울음이 났어요. 그런 정우가 걱정된 엄마 아빠는 가끔 시간을 내서 예전 동네를 찾아갔어요. 정우는 친구들과 만나서 하루 종일 놀다가 돌아왔어요. 친구들을 만나서 놀 때는 좋지만 헤어져서 다시 돌아오면 한동안 더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어요. 이제는 이곳에서 다른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이 더 많아졌어요. 그래도 가끔 예전 친구들을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그래도 승지가 있어서 정우는 이곳이 좋아졌고, 친구들 생각도 많이 잊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승지가 이사를 간다니 정우는 승지가 이사 안 가고 여기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승지를 자주 못 만나는 것도 속상했지만 이사를 가서 친구 없이 지낼 승지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에요.      

 어느새 6월 1일 승지가 이사 가는 날이 되었어요. 승지는 학교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갔어요. 정우네 반 친구들은 모두 승지를 꼭 안아 주고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정우는 속상해서 하루 종일 힘이 없었어요. 정우는 승지가 떠난 오늘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꿈이 아니었어요. 매일 놀이터에 나가봐도 더 이상 놀이터에서 승지를 만날 수 없었어요.

 며칠 동안 정우는 놀이터에서 놀아도 신나지 않았어요. 승지가 아닌 다른 친구들과 딱지치기도 하고 팽이 돌리기도 했지만 자꾸 승지도 놀이터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정우네 학교는 여름방학을 했어요. 정우는 이제 승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줄었어요. 하지만 승지와 놀이터에서 딱지치기를 하며 놀던 일이 여전히 정우는 그리웠어요.

 방학 첫날 저녁을 먹으면서 아빠는 정우에게 물었어요.  

 “우리 정우는 방학해서 좋겠네. 혹시 방학에 하고 싶거나 가고 싶은 곳 있니?”

 “네 있어요. 승지 집에 가고 싶어요.”

정우는 아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리쳤어요.

 “승지가 많이 보고 싶었구나. 그래 그럼 일단 승지네 집에 전화를 해서 가능한 날을 정해보자.”

 이렇게 해서 승지의 집에 갈 날이 정해졌어요. 방학으로부터 열흘 후로 정해지고, 어느새 6일이 지났어요. 정우는 6일 동안 매일 달력을 보고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까지 남은 날을 세어봤어요. 6일은 정말 천천히 갔어요.

 그래도 이제 4일만 지나면 승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정우는 그 날이 오늘이 아닌 것이 속상했어요.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드디어 오늘로 다가왔어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정우는 아직 자고 있는 엄마 아빠를 재촉했어요. 평소에 느리게 먹던 아침도 허겁지겁 먹느라 뭘 먹었는지 모를 지경이었어요. 싫어하던 양치질도 세수도 누가 시키기 전에 해치웠어요.

 승지의 집으로 가는 2시간 동안 정우는

 “언제 도착해요?”

라고 수없이 물어봤어요. 묻고 또 묻고 그렇게 2시간이 지나 승지의 집에 도착했어요. 승지네 가족에게 줄 선물과 과일을 들고 승지의 집 벨을 눌렀어요. 승지는 4학년 누나와 6살 남동생, 그리고 엄마 아빠가 함께 살아요. 승지네 가족은 정우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었어요. 정우는 승지 앞에 서자 잠깐 어색하게 서 있었어요.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막상 만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정우와 승지는 금세 이야기하고 웃기 시작했어요. 정우가 가지고 간 새 장난감 얘기를 하면서 예전처럼 웃고 떠들 수 있었어요. 그렇게 놀다가 승지는 엄마의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놀기 시작했어요. 정우가 가지고 간 새 장난감을 승지의 동생 승호가 가지고 놀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정우는 승지 옆에서 승지가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것을 구경했어요.

 정우는 처음 보는 게임이지만 승지가 자유자재로 게임을 하는 것을 보니 부러웠어요. 승지는 정우가 옆에 있는 것을 잊은 것처럼 게임에 빠져들었어요.      

 승지네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정우 가족과 승지 가족은 저녁을 먹으러 갔어요. 승지가 사는 동네도 정우가 사는 곳처럼 산도 가깝고 가는 길에 시골처럼 넓은 논도 많았어요. 식당은 고기도 나오고 칼국수도 나오고 정우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와서 정우는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정우는 밥을 먹으면서 승지에게 가지고 온 포켓몬 카드를 보여주었어요. 정우와 승지는 카드를 보면서 대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어요. 정우는 기분이 좋았어요. 승지와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승지 동생 승호가 정우의 카드를 낚아채는 바람에 정우와 승지의 이야기는 멈췄어요.

“야 승호 너 이리 내!”

승지는 승호 손에서 카드를 다시 빼앗았어요.

 “엄마!”

승호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울먹이기 시작했어요. 정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던 승지 엄마는 승지에게 말했어요.

 “승지야 동생 울리지 말고 놀아야지.”

 “엄마 정우랑 내가 놀고 있었어, 이 카드는 내 친구 거야.”

승지의 말을 듣고 승호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어요. 승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카드를 다시 승호에게 돌려주었어요. 그러면서 승지는 승호의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았어요. 그래도 승호는 좋아서 카드를 이리저리 만지고 신이 나서 정우한테 같이 놀자고 했어요. 승지는 심통난 표정으로 스마트폰 게임을 시작했어요. 정우는 승지 옆에서 승지가 하는 게임을 구경했어요. 혼자 놀기 심심한 승호는 자꾸 정우에게 말을 걸었어요. 정우는 승지와 놀고 싶은데 자꾸 혼자 놀거나 승호와 놀게 되는 상황이 속상했어요. 정우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승지와 신나게 뛰어놀고 팽이 돌리기, 딱지치기를 하는 것이에요. 승지만 만나면 신나게 놀 줄 알았는데 어딘가 허전한 마음에 정우는 속상했어요.

 어른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승지와 승지의 누나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승호는 정우의 포켓몬 카드를 가지고 놀았어요.

 “형 같이 놀자.”

 “어? 그래.”

정우는 마지못해 승호와 놀면서 승지한테 같이 놀자고 했어요. 승지도 스마트폰을 끄고 셋은 같이 카드를 가지고 놀았어요. 어른들이 이제는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고 했어요. 정우는 승지와 더 놀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엄마 더 놀고 가면 안돼요?”

정우는 엄마 손을 잡고 매달렸어요. 엄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어요.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어둑해졌기 때문이에요. 승지네도 가서 쉬어야 하고, 내일 아빠들은 출근하셔야 한다고 해도 정우는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어요.

 “엄마 제발요?”

 “그럼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서 조금 더 놀다가 갈래?”

 “네.”

정우의 마음을 알고 승지 엄마가 말했어요. 정우는 눈물이 맺힌 눈을 크게 뜨고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어요.  

 “앗싸!”

승지도 정우랑 놀이터에 가는 것이 좋아 소리쳤어요.      

 해가 지고 깜깜했지만 가로등이 밝혀진 놀이터는 시원한 저녁 바람에 놀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미끄럼도 타고 술래잡기도 하고, 그냥 뛰어도 정우와 승지는 신이 났어요. 옆에서 승호도 덩달아 뛰면서 신나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많이 놀지도 못했는데 정우는 미끄럼틀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내리는 비를 원망했어요.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어요. 굵은 빗방울이 요란하게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어쩔 수 없이 정우네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정우와 승지는 아쉬움에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차에 오르자마자 정우는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빠는 정우의 안전벨트를 채워주면서 정우를 달래 보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정우야 승지 만나서 신나게 놀았는데 아직도 속상해?”

아빠가 운전을 하면서 뒷자리에 탄 정우에게 물었어요.

 “승지랑 팽이도 갖고 놀고, 딱지치기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정우는 울먹이면서 말했어요.

 “많이 놀지 못해서 속상한 거야? 엄마 아빠가 네가 원하는 대로 승지를 만나러 왔잖아. 승지도 만나고 같이 밥도 먹고 좋지 않았어?”

 “그건 좋았지만 그래도 속상해요.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었는데……나는 승호랑 놀려고 온 것도 아니에요.”

 “그래 놀이터에서 더 놀았으면 좋았을걸. 비가 와서 어쩔 수가 없었어. 그렇다고 승지네 집에서 너무 늦게까지 있으면 내일 출근하는 승지 아빠가 힘드실 거야. 이해하지?”

아빠는 정우에게 상황을 설명했어요.

 “네, 알아요. 그래도 속상해서 자꾸 눈물이 나요.”

 “그래 정우야 우리 다음에 또 승지 만나러 오자.”

 “네. 그래도 난 승지가 옛날처럼 우리 동네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승지가 이사 가기 전으로 돌렸으면 좋겠어요.”

정우는 울면서 창밖을 보았어요. 어두운 창문에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졌어요.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비를 퍼붓는 것 같았어요. 정우는 비를 바라보며 울다가 잠이 들었어요. 잠이 들자 정우의 눈물도 멈췄어요. 비가 어두운 길에 요란하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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