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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20. 2021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불고기인가 생강인가

아들 인생 최악의음식 3위

얼마 전, 아들이 좋아하는 불고기를 했다. 평소와 같은 양념이었다. 마늘을 꺼내려고 냉장고를 열다가 겨울에 먹다 남은 생강청이 보였다. 생강청을 넣으면 고기 냄새도 잡고 생강향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강청 반 스푼 안되게 불고기에 넣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온 아이가 불고기 냄새에 앗싸 신나 했다. 아들은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아들 앞에 불고기 한 접시, 우리 부부가 먹을 불고기 한 접시. 아들 좋아하는 깻잎쌈과 쑥갓, 내가 좋아하는 치커리와 상추쌈까지 야채 덕에 식탁이 풍성해 보였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불고기를 먹던 아들이 윽!


"아들 왜?"

"엄마 혹시 생강 넣으셨어요?"

"응? 어 조금. 아주 조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지고 기가 죽었다. 생강향이 강해서 못 먹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우적우적 맛나게 불고기를 먹던 남편이


"생강? 난 모르겠는데. 고기 냄새 안 나고 오늘 더 맛있는데."

"이 냄새가 안 난다고요?"

"아 또미 말을 들으니까 약간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빠 그게 아니죠. 이건 그냥 생강 불고기라고 불러야 할 정도죠."


아들은 고기만 깨작깨작 먹는 둥 하더니 깡 쑥갓만 먹어댔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불고기 국물에 밥 비벼 먹겠다고 좋아했던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긴 했지만 많이 상처 받지는 않았다. 아들은 반찬 투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 불고기가 맛없다고 했지만 다른 반찬으로 밥 한 그릇 뚝딱 먹어치웠다. 쑥갓이랑 깻잎도 클리어했다. 


내가 해준 반찬 항상 맛있다고 하는 아들에게 나는 가끔 의문이 들었다. 진짜 맛있어서 맛있다는 것일까? 그냥 맛있다고 해야 편해서 하는 말일까? 아님 혹시 아들은 미각이 없거나 둔한 것일까? 쑥갓이랑 당귀, 깻잎을 쌈장이나 고기 없이 깡으로 먹어치우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미각을 의심했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이런 반찬투정이 그런 의심을 한 번에 사라지게 했다. 사실 아들의 미각은 예민한 편이다. 남편과 내가 느끼지 못하는 향이나 맛도 아들은 알아차린다. 나중에 확인해 보면 아들의 입맛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매번 내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들이 반찬투정을 한 것은 내 기억으로 이번이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3년 전쯤일 것이다. 더운 여름에 가스불에서 밥하기 싫어서 오이냉국을 만들었다. 네이버에서 찾은 레시피를 충실히 따랐다. 그런데 남편도 아들도 한번 먹고 다시 먹지 않았다. 언제나 엄마 편이던 아들이 '윽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오이냉국을 만든 적이 없다.


두 번째는 톳나물이었다. 아들은 톳나물을 엄청 좋아한다. 아니 우리 가족 모두 톳나물을 좋아해서 톳이 제철이면 나는 자주 톳을 산다. 그날은 내가 의욕적으로 톳나물을 무쳤는데 새콤한 톳나물을 좋아하는 남편 생각에 식초를 평소보다 더 넣었다. 좋아하는 톳나물 먹을 생각에 들떴던 아들은 한 젓가락 먹어보고 고스란히 남겼다. 그리고 세 번째가 생강 불고기다. 생강 불고기로 처절하게 저녁식사가 끝날 무렵 아들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불고기인가 생강인가?"


저학년 때는 글씨 잘 쓴다는 말 듣곤 하던 아들의 글씨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들은 이날 일기장에 생강 불고기에 대해 썼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일주일에 세편의 일기를 쓰게 하고 매번 꼼꼼하게 답글을 써주신다. 나는 아들의 일기장에 선생님이 써 주실 글에 나름 긴장했다. 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일기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이 요즘 부쩍 휘갈겨 쓴 아들의 글씨만 지적해주셨다. 



최악의 음식 3가 모두 최근 한 달 동안 먹은 음식이다. 최근의 일이라 더 강렬하게 남은 것 같다^^

얼마 후 일기 쓸 소재가 없었던 아들이 일주일에 한 번 쓸 수 있는 주제 일기에 인생 최악의 음식 3으로 다시 일기를 썼다. 이번에도 문제의 생강 불고기가 당당히 한자리 차지했다. 아들의 일기를 읽으면서 자꾸 웃음이 났다. 잔뜩 기대했다가 배신당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직은 저녁 반찬 뭐예요? 가 중요한 문제인 아들의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아들의 그 평화로운 일상에 작은 파문을 던진 생강 불고기 사건의 주범인 나는 아직 아들이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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