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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06. 2021

예은이의 파란 풍선

잠잘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어요. 불 꺼진 예은이의 집에도 깨어있는 사람은 예은이 뿐, 모두 잠들었어요. 사실 예은이도 자야 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어요. 그런데도 예은이는 잘 수가 없어요. 엄마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엄마는 벌써 잠이 들어 어느새 작은 소리지만 코까지 골고 있어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예은이에게 유독 크게 느껴져요. 자기로 인해 편히 자는 엄마를 생각하면 예은이는 자신이 너무 뿌듯해요. 그래서 감기는 눈을 비비면서 깨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꾸만 눈이 감기는 것은 예은이도 어쩔 수가 없어요. 예은이가 어떻게든 눈을 떠 보려고 하지만 자꾸만 자꾸만 눈이 감깁니다.      


 예은이의 가족에게, 아니 예은이에게 잠 못 드는 걱정이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일곱 달 전쯤이었어요. 예은이가 5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봄이었어요. 그날도 예은이는 아빠가 예은이 방문 천장에 걸어 주신 그네를 타는 일에 푹 빠져 있었지요. 예은이는 그네 타기를 다른 어떤 놀이보다 좋아해요. 그래서 너무 신나게 그네를 타다 보면 예은이는 마치 하늘을 날 듯 높이 오르다가 문 천장에 발이 닿기도 합니다. 그런 예은이를 엄마와 아빠는 매우 걱정스럽게 바라보세요. 하지만 예은이는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오히려 그네가 움직일 때마다 보였다가 사라지는 창 너머 풍경이 재미있습니다.


 그날도 예은이는 그네 타기에 빠져 있었어요. 그네가 움직일 때마다 창 너머로 저물어 가는 해가 예은이의 눈을 장난스럽게 간지럽혔어요. 예은이는 눈이 부셨지만 그 따스함이 좋아서 그네 타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그때, 오늘따라 예은이를 집에 두고 혼자 외출하셨던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얼굴 가득 웃음을 안고서 말이에요.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에 방에서 책을 읽고 계시던 할머니도 방문을 열고 나오셨어요.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엄마 얼굴만 바라보셨어요. 할머니의 얼굴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기대로 가득했어요.

 엄마는 조금은 수줍은 듯 살짝 웃으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순간 할머니의 얼굴이 아침 이슬을 머금은 나팔꽃처럼 환해지셨어요. 그리고는 여전히 그네를 타면서 엄마와 할머니를 보고 있는 예은이를 그네에서 안아 내리시면서 말씀하셨어요.

 “우리 예은이 동생 생기네, 동생!”

할머니는 기쁜 마음을 담아 예은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셨어요. 예은이는 동생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다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어요.

 “어디? 엄마 동생 사러 갔다 온 거야?

예은이의 엉뚱한 물음에 엄마와 할머니는 기분 좋게 웃으셨어요. 그리고 엄마는 예은이 키에 맞춰서 앉으시고는 예은이에게 동생에 대해 설명해 주셨어요.

 “예은아 엄마 뱃속에 아가가 있어. 이 아가가 예은이 동생이야. 이제 예은이한테 동생이 생기는 거야.”

엄마의 말을 들은 예은이는 동생에 대해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했어요. 하지만 엄마도 할머니도 기뻐하시는 것을 보니 동생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일 것 같았어요. 그리고 예은이는 이 모든 사실을 잊은 듯 다시 그네에 올랐어요. 동생에 대한 생각도 예은이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예은이는 하늘에 닿을 듯 신나게 그네를 타고 놀았어요. 예은이가 다칠까 봐 걱정하는 엄마와 할머니의 얼굴이 예은이의 눈에 흔들흔들 보였지만 예은이는 그네를 멈추지 않았어요. 할머니와 엄마처럼 예은이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거든요.


 하지만 동생에 대한 예은이의 생각은 다음날부터 달라졌어요. 그날 이후로 예은이의 집은 예은이가 아니라 동생이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예은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딸기를 먹을 때도 예은이보다는 동생이 먼저였어요. 제일 크고 먹음직스러운 딸기만 골라 예은이 입에 넣어주시던 할머니께서도 엄마 앞에 딸기를 골라 놓으시면서
  “이건 예은이 동생 꺼.”

하시는 거예요. 예은이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갈 때도 그랬어요. 항상 예은이가 좋아하는 피자를 먹으러 가던 엄마가

 “오늘은 동생 좋아하는 걸로 먹자. 예은이가 양보해 줘.”

하시면서 예은이의 볼을 살짝 꼬집으십니다. 그리고는 보기에도 이상하고 냄새도 고약한 순대를 먹으러 가시는 거예요. 단지 예은이 동생이 좋아한다는 이유였어요. 이제 할머니도 엄마도 예은이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예은이는 그럴 때마다 떼를 쓰면서 울었지만 오히려 동생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확인해야 했어요. 도대체 예은이 동생은 언제 나오는 건지, 왜 엄마가 동생의 몫까지 먹어야 하는지 예은이는 알 수가 없었어요.   


 예은이는 이상하게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항상 예은이 보다는 동생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동생은 정말 이상한 음식만 먹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예은이는 동생이 분명 못생기고 뚱뚱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몇 달이 지나자 예은이는 자기 생각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얼마 전부터 엄마의 배가 불러온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지요. 뚱뚱한 동생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예은이는 정말 속상했어요. 이젠 예은이는 엄마를 마음대로 안을 수도 없게 되었어요. 예은이가 엄마를 안으려고 하면 엄마는 예은이의 두 팔을 살짝 잡으시면서

“예은아, 엄마 배가 불러서 예은이를 안기가 힘이 들어. 엄마 뱃속에 동생이 있어서 예은이를 안으면 동생이 아파해.”

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은이는 속상했지만 평소에 너무나 궁금했던 일을 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엄마……내 동생이 풍선이야?”

예은이의 물음에 엄마는 의아해하시면서

 “응? 왜?”

라고 예은이에게 되물으셨어요.

 “엄마 배가 풍선처럼 동그랗게 커지고 있잖아.”

예은이는 엄마의 배를 손을 가리키면서 진지하게 말했어요. 예은이의 말에 엄마는 그제야 예은이의 말을 이해한 듯 조용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예은이 동생은 풍선이 아니야. 하지만 풍선처럼 약하니까 예은이가 잘 돌봐 줘야 해. 지금처럼 엄마한테 안기려고 하면 풍선처럼 약한 동생이 아파하거든.”

엄마의 말을 듣고 예은이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어요. 기분이 이상해졌거든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지도 않고, 그네를 타고 싶지도 않았어요. 예은이의 마음을 달래러 온 엄마에게 조차 예은이는 아무 말하지 않았어요. 엄마도 할머니처럼 아빠처럼 동생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머니와 아빠가 동생만 챙긴다고 생각했을 때도 예은이는 참을 수 있었어요. 그래도 엄마는 항상 예은이를 동생보다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늘 예은이를 사랑스럽게 안아주셨던 엄마가 동생 때문에 자기를 안아줄 수 없다고 하니까 예은이는 너무나 쓸쓸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예은이는 동생이 태어난다고 해도 동생을 절대 예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파랗던 나무들이 빨갛게 노랗게 예뻐지고 있어요. 이제 엄마의 배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어요. 예은이는 요즘 엄마 걱정에 엄마 곁을 떠날 수가 없어요. 풍선처럼 부른 엄마의 배가 갑자기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아서 엄마 옆에 있어야만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에요. 엄마가 화장실에 갈 때조차 예은이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화장실 문을 두드린답니다. 엄마의 목소리라도 들어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낮에도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갔던 예은이는 생선가게 아주머니도, 야채가게 아저씨도 모두 엄마의 배를 보고

“어휴! 금방이라도 예은이 동생 나오겠네.”

라고 하시는 말을 들었어요. 풍선 같은 엄마 배에서 동생이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는 예은이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가 걱정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은이는 잠을 꾹꾹 참아가며 엄마를 지키고 있는 것이랍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예은이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갑니다. 약상자에서 뭔가를 꺼낸 예은이는 조심스럽게 엄마 아빠가 주무시는 방으로 갔어요. 엄마 배속에 동생이 생기면서 예은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잘 수 없게 되었어요. 대신 예은이는 할머니와 함께 자게 되었어요. 다행히 엄마방은 밤에도 항상 열려있어요. 깜깜한 방에서 예은이는 혹시 엄마 아빠가 깰까 봐 더듬더듬 고양이 발로 엄마에게 다가갔어요. 그리고는 엄마의 풍선 같은 배에 예은이가 다칠 때마다 엄마가 붙여주시던 일회용 반창고를 조심스럽게 붙여 주었어요. 다시 고양이 발로 방을 나온 예은이는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방으로 돌아가 할머니 옆에 누웠어요. 마음이 놓여서인지 예은이는 곧 깊은 잠에 빠져 들었어요.    

 

 모두가 잠든 예은이의 집에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어요. 하늘의 달도 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드문 별만이 조는 듯 한 고요한 밤이 깊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고요하게 푸른 새벽이 올 무렵에 엄마는 아빠와 함께 힘든 표정으로 병원을 향했어요. 드디어 예은이의 동생이 태어나려고 하나 봐요.     

 예은이는 이 모든 사실을 모른 채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어요. 잠든 예은이의 꿈속에서, 예은이는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비치는 방에서 그네를 타고 있어요. 예은이는 마치 하늘을 나는 나비처럼 예쁘게 그네 위에서 날고 있어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예은이가 현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열린 현관문 사이로 파란빛이 들어와요. 그 빛을 따라 파랗고 예쁜 풍선이 하나 들어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열린 현관문을 통해 파란 풍선들이 예은이의 집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현관문이 활짝 열리자 셀 수 없이 많은 풍선들이 파란빛을 따라 예은이의 집으로 들어왔어요. 예은이는 그 광경에 완전히 넋을 잃었어요. 집으로 들어온 파란 풍선들은 예은이를 감싸고 또 감쌌어요. 예은이는 풍선에 둘러싸여 그네에서 공중으로 둥둥 떠다니게 됐어요.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예은이의 몸은 가볍고 자유로웠어요. 어느새 거실은 파란 풍선과 빛으로 가득 채워졌어요. 조금 전까지 거실에 가득했던 햇살도 파란빛에 밀려 창문 밖으로 사라졌어요. 파란 풍선과 파란빛에서는 박하사탕 같은 기분 좋은 냄새가 나요. 예은이는 파란빛과 파란 풍선에서 나오는 향기와 풍선 구름을 타고 공중을 나는 기분에 취해 너무나 기분이 좋았어요. 꿈속에서 풍선 손님을 만나 행복한 예은이는 엄마에 대한 걱정도 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듭니다. 잠든 예은이의 얼굴은 너무나 행복해 보여요. 마치 예은이의 꿈속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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