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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27. 2021

연우의 고민

오늘도 엄마는 학교 앞에서 연우를 기다립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연우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엄마는 매일 연우의 등하교를 돕고 있습니다.

 수업이 끝이 났는지 연우 또래의 아이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교를 돕기 위해 나온 선생님들도 보입니다. 아이들 사이에 연우가 나옵니다.

“연우야!”

 연우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엄마는 손을 흔듭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연우는 힘없이 엄마를 향해 걸어옵니다. 엄마는 그런 연우를 걱정스럽게 바라봅니다. 그리고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연우의 손을 잡습니다. 연우와 엄마는 손을 잡고 집을 향해 걸어갑니다. 봄이지만 아직 날씨가 쌀쌀합니다. 엄마는 연우의 옷을 여며줍니다.

 “연우야 오늘 학교는 재미있었어?”

 “네.”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기억이 안 나요.”

짧게 답하고 연우는 말없이 걷습니다. 연우와 엄마의 표정이 어느새 같아졌습니다. 연우처럼 엄마도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걷기만 합니다.

 “연우야 약국에 잠깐 들르자.”

 여전히 말없는 연우의 손을 잡고 엄마는 약국으로 들어갑니다.

 “어서 오세요.”

 “집에 바퀴벌레가 있어요. 바퀴벌레 죽이는 약 좀 주세요.”

 엄마의 말을 들은 연우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하지만 엄마도 약사 선생님도 연우의 표정 변화를 알지 못합니다.

 “이 약을 쓰면 정말 바퀴벌레가 죽는 거죠?”

 “그럴 거예요. 제일 잘 듣는 약이거든요.”

엄마와 약사 선생님의 말을 연우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듣고 있습니다. 약값을 내고 엄마와 연우는 약국을 나섭니다.      


 집에 와서도 연우는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연우가 좋아하는 초콜릿이 있는 냉장고도 열어보지 않습니다. 그런 연우를 걱정스럽게 보던 엄마가 냉장고에서 초콜릿을 꺼내 연우의 방으로 갑니다. 연우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연우가 가장 좋아하는 곤충에 관한 책입니다. 연우는 어릴 때부터 그 책을 좋아했습니다.

 “연우야 초콜릿 먹을래?”

 연우는 엄마가 주는 초콜릿을 말없이 입에 넣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연우야 엄마가 읽어줄까?”

연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엄마는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잠자리, 소금쟁이, 풍뎅이……곤충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곤충들은 사람의 좋은 친구입니다.”

초콜릿을 먹고 있던 연우가 갑자기 눈물을 흘립니다. 책을 읽던 엄마는 갑자기 우는 연우의 행동에 놀라 어쩔 줄을 모릅니다. 연우는 엄마가 들고 있던 책을 뺏어서 바닥에 던집니다. 그리고 연우는 이제 소리 내서 울기 시작합니다.

 “왜 그래? 연우야 왜 울어?”

놀란 엄마의 물음에 답도 없이 연우의 울음은 계속됩니다. 엄마는 그런 연우에게 어떻게 해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연우가 이렇게 변한 것은 며칠 전부터입니다. 연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우는 말이 줄었습니다. 걸음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 한 군데 얌전하게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얘기를 하는 아이여서 오히려 귀찮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말도 없고, 기운도 없어 보여 엄마는 연우가 걱정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시원하게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그저 답답하게 연우를 지켜볼 뿐입니다.      


 연우의 학교 앞에서 엄마는 망설입니다. 연우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연우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신 것은 두 시간 전이었습니다. 연우에 대해 의논할 것이 있으니 학교로 와 달라는 것입니다. 어제 집에서 갑자기 울던 연우의 모습이 떠올라 교문을 들어서는 엄마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연우의 선생님은 젊은 여자 선생님입니다. 연우 하교시간에 잠깐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너무 연우한테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연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인사를 하고 차를 마주하고 앉아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연우가 오늘 교실에서 쓰레기통을 뒤졌고, 아이들이 그런 연우를 놀리는 바람에 교실이 소란스러워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연우는 계속 쓰레기통을 뒤졌고, 그런 연우의 행동은 수업시간에도 계속됐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말을 들은 엄마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어릴 때부터 깔끔한 것을 좋아해서 과자를 먹다가도 몇 번이나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달려가는 아이였습니다. 지금도 연우의 손 씻는 버릇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연우가 쓰레기통을 뒤졌을까요? 엄마는 도저히 연우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께 여러 가지로 죄송해요. 요즘 연우의 행동이 이상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혹시 학교에서 다른 일은 없었나요?”

 “아니요. 제가 알기론 없었어요. 그냥 요 며칠 말이 줄었다는 것 외에 별 다른 점은 없었어요.”

 “도대체 연우가 왜 그런 이상한 행동까지 하는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정말 연우 때문에 너무나 걱정입니다. 형제 없이 혼자 자란 연우가 친구들과 사귀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일까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요? 엄마와 선생님은 연우에 대한 걱정으로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하지만 아무런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엄마는 연우의 손을 잡고 학교 문을 나섭니다.      

 아직 쌀쌀하긴 하지만 봄 햇살이 눈부십니다. 개나리가 활짝 핀 길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노랗게 물든 거리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우와 엄마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엄마는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연우에게 왜 쓰레기통을 뒤졌는지 물어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엄마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연우가 엄마의 손을 놓고 뛰어가는 바람에 엄마는 연우를 따라갑니다. 연우는 길가에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습니다. 엄마도 연우 옆에 앉아 연우가 보는 것을 봅니다. 길옆에는 작은 민들레가 피어있습니다. 아직은 추워서인지 민들레는 너무나 작습니다. 그런데 민들레꽃 주변에 작은 개미들이 모여 있습니다. 아마도 그 주변이 개미의 집인가 봅니다. 곤충을 좋아하는 연우가 개미를 보고 반가워서 달려온 것입니다.

 “연우야 개미네. 정말 너무 귀엽고 예쁘다 그지?”

엄마는 손으로 개미를 잡아 연우에게 줍니다. 연우는 개미를 다시 땅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습니다. 연우의 손을 벗어난 개미는 잠시 어리둥절한지 헤매다가 서둘러 자신의 길을 갑니다. 연우는 개미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듯 걱정스럽게 보다가 말없이 일어납니다. 괜히 머쓱해진 엄마도 일어나 연우의 손을 잡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우가 엄마의 손을 잡으려고 하지 않고 앞서 걸어갑니다. 그런 연우를 바라보는 엄마가 작은 한숨을 쉽니다.      

 집으로 돌아온 연우는 손발을 씻은 후 방으로 들어갑니다. 엄마는 연우가 먹을 간식을 준비합니다. 연우의 고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엄마는 말없이 연우를 지켜보기로 합니다. 연우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오늘 연우의 간식은 떡볶이입니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연우를 위해 간장으로 소스를 만들었습니다. 연우가 좋아하는 간식이라 엄마는 정성을 다합니다.

 “연우야 떡볶이 먹자.”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연우는 깜짝 놀라 무언가를 감춥니다. 연우가 놀라서 등 뒤로 숨긴 것은 작고 투명한 병입니다. 병 속에는 연우가 넣어 둔 바퀴벌레가 여러 마리 들어있습니다. 연우는 그 병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병에는 바퀴벌레 외에도 연우가 따로 넣어둔 과일 조각이랑 초콜릿도 보입니다. 엄마가 들어오기 전에 연우는 얼른 병을 가방에 넣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저녁이 되고 회사에 갔던 아빠가 돌아옵니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연우가 인사를 하고 아빠의 품에 안깁니다. 아빠는 그런 연우를 사랑스럽게 안아 올려 머리 위로 비행기를 태워줍니다. 연우는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 연우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빠한테는 그래도 웃어주는 연우가 왜 엄마한테는 웃어주지 않는 걸까요? 엄마가 연우한테 무슨 잘못을 했을까요? 엄마는 답답한 마음으로 저녁을 준비합니다.

 저녁을 먹고 세 식구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과일을 먹습니다. 연우는 텔레비전에 빠져서 과일을 먹을 생각도 안 합니다. 아빠가 그런 연우에게 과일을 건네면서 말합니다.

 “연우야 과일 먹자.”

연우는 아빠가 주는 과일을 먹습니다. 그러면서도 연우는 텔레비전에 빠져 있습니다. 연우가 텔레비전만 보는 것이 서운한 아빠가 다시 말을 겁니다

 “연우야 오늘 학교에서 뭐했어?”

아빠의 질문에 연우는 무슨 대답을 할까 망설입니다. 자기가 쓰레기통을 뒤졌다고 말하면 아빠가 혼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빠도 그런 연우에게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요즘 연우가 이상하다고 엄마가 말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던 연우는 스르르 잠이 듭니다.

“오늘 학교에서 연우가 쓰레기통을 뒤졌다고 선생님께서 전화를 했었어요. 그래서 학교에 갔다 왔어요.”

엄마의 말에 아빠는 놀라서 엄마를 봅니다. 하지만 엄마가 너무 걱정할까 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합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

그렇게 말은 하지만 아빠도 연우가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연우에게 요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엄마도 아빠도 알 수가 없습니다. 걱정된 마음으로 아빠는 잠든 연우의 머리를 쓸어줍니다. 연우는 깊이 잠이 든 모양입니다. 아빠의 손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빠는 연우를 안아서 연우의 침대에 눕히고 이마에 뽀뽀를 합니다.

“연우야 잘 자.”

“아빠 개미는 우리 친구야?”

자는 줄 알았던 연우가 졸린 목소리로 아빠에게 묻습니다.

“그럼 우리 친구지”

아빠는 연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대답합니다.

“아빠 바퀴벌레도 우리 친구야?”

이 질문에는 아빠가 조금 망설이면서 대답을 합니다.

“바퀴벌레도 우리 친구야 나쁜 친구. 연우 이제 자야지”     

 연우의 이불을 여며 주고 아빠는 연우의 책상에 어지럽게 펼쳐진 책들을 정리합니다. 연우가 낮에 읽었던 동화책들도 있고, 숙제를 마친 공책도 있습니다. 그리고 연우가 숙제로 하는 그림일기장도 펼쳐진 채로 있습니다.

그림일기에 그려진 그림은 연우가 며칠 전에 그린 것입니다. 울고 있는 연우 옆에 작고 까만 벌레가 있습니다. 파리이거나 바퀴벌레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엄마가 파리채를 들고 벌레를 잡는 그림이 보입니다. 그림만 있고, 일기의 내용은 없습니다. 아빠는 연우가 그린 그림을 보고 연우가 사랑스러워 살짝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림일기를 덮어 다른 책들과 나란히 정리합니다. 연우가 잘 자도록 불을 끄고 아빠는 연우의 방을 조용히 나갑니다. 연우는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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