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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24. 2021

아빠 그곳에서는 편히 쉬세요.

어제가 아빠의 기일이었다.

19년 전,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 나갔는데 열린 방문 사이로 아빠가 보였다. 언제나처럼 누워있었는데 느낌이 달랐다.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쉬는 작은 떨림조차 없었다. 나는 아빠 옆에 가지 못했다. 느낌으로 아빠의 몸이 풍기는 차가운 분위기를 알았다.


친척집에 다니러 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이상하게 그냥 눈물이 났다. 아빠가 이상해 엄마 무서워 집에 빨리 와 줘. 아침을 먹던 엄마가 택시를 타고 왔다. 엄마는 서슴없이 아빠를 안아 일으켰다. 아빠는 정말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응급차가 오고 경찰이 왔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집에 있었던 나만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았다. 전날 있었던 일들, 아빠와 나눈 이야기, 이상한 점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경찰서에서 나와서 아빠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고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혹시 아빠를 미워해서 돌아가신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아빠 사진을 보니까 정말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조문을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 하루 종일 굶어서 뱃속이 공기처럼 둥둥거리는 것 같았다. 내 몸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아빠를 화장하고 추모관에 모시고 나오면서도 머리가 멍했다. 나와 한 집에서 자고 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공기도, 길도, 나무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를 생각하거나 아빠를 부르지 못했다. 아빠에게 받았던 상처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은 미움들이 고스란히 내 몸에 쌓여서 곪아가고 있었다. 아빠를 찾아 추모관에 가서도 나는 꽃을 꽂아두고 말없이 있다가 왔다. 뭔가 말을 시작하면 댐이 무너지듯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코로나로 작년 아빠 기일에 가지 못했다. 대신 집에서 제사상을 차려서 아들과 남편과 아빠를 기억했다. 올해도 아빠 제사에 가지 못했다. 절에 가서 추모하는 초를 피우고 아빠를 생각했다. 지금의 나보다 10살 많은 55살에 아빠는 돌아가셨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빠가 너무 젊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인생은 어땠을까? 할머니가 아빠한테 자주 화를 내는 것을 봤다. 아마 아빠가 어릴 때는 더 했을 것이다. 요즘 자꾸 아빠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한없이 밉기만 했는데 아빠가 참 불쌍하고, 아빠한테 미안하다. 요즘 자주 아빠가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술 한잔 하면서 한껏 흥에 취해 부르던 아빠의 노래, 아빠의 목소리가 내 노래와 겹쳐 듀엣곡이 된다.


절에서 초를 켜 두고 마음 속으로 아빠한테 말했다.


아빠 그곳에서는 편히 쉬세요.


정말 아빠가 그곳에서는 편안했으면 좋겠다. 맛있는 안주에 향기로운 술 한잔 하면서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르는 아빠의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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