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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14. 2021

먼저 사람이 되어라!

1년 반전에 나는 사람이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코로나 1년 반을 집에서 보내면서 나는 점점 동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독서모임, 영화모임, 학부모 모임으로 바쁘던 내가 1년 반 동안 그들을 다 끊고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생활이 다분히 짐승스럽다는 것이다. 하루 세끼 밥 챙겨 먹고 때 되면 자는 것 외에 딱히 하는 일이 없다. 인간의 조건이 하루 세끼의 식사와 어두워지면 잠드는 것이라면 나는 인간이기에 충분하다. 만약 인간의 조건에 끼니와 잠 외에 다른 정신적인 것이 필요하다면 나는 아마도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2주 전 드디어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남편과 나는 서둘러 노쇼백신 신청을 하고 병원에서 올 전화를 기다렸다. 남편은 금방 접종할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서두른 덕분에 접종에 성공했다. 아들이 태어나고 나와 남편은 매년 독감백신을 접종해왔다. 부모인 우리가 아이에게 병을 옮길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백신 접종은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생존 키트 같은 것이었다.


코로나 접종도 같은 이유로 서둘렀다. 혹시라도 우리가 아이에게 코로나를 전파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더 조심스럽고 불안했다. 코로나 백신 접종은 독감백신 접종과 다른 공포를 주었다. 독감백신을 맞을 때는 주삿바늘이 무서웠지만 코로나 백신은 병에 담긴 투명한 주사약이 무서웠다. 남편은 아무런 증상도 없었지만 나는 며칠 앓아야 했다. 하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백신 접종을 마치고 나니 갑자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예전처럼 사람 친구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나의 백신 접종과 무관하게 1년 반 동안 연락 두절하고 지낸 사람들에게 당연히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올 만나자는 전화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내 생활도 매우 짐승스러웠지만 겉모습도 그랬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내가 점점 사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1년 반 동안 미용실에 가지 않은 탓에 곱슬거리면서 숱이 많은 머리는 점점 미스코리아 사자머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샴푸를 하고 머리를 말리느라 풀어 제치고 있으면 남편은 다급하게 아들을 불렀다. 또미야 집에 사자가 나타났어!


사람이 되기 위해 먼저 미용실 예약을 했다. 예약한 날짜가 다가올수록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다. 마치 처음으로 놀이동산에 가는 아이의 마음 같았다. 예약한 날짜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미용실에서 4시간 30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서 백신을 맞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얼마나 답답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고작 4시간 반 쓰고 있으면서 중간중간 마스크를 확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이들이 하루빨리 마스크 없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방식이든 아이들에게 마스크 없는 세상을 되돌려주고 싶다. 머리를 하고 집에 들어서자 아들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꾸벅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누구세요?'


이제 곧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오프라인 독서회를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날이 당장 내일이 될지도 모르니까 더 이상 사자머리는 안 된다. 새로 개봉한 영화관에 아마 사자는 입장이 안될지도 모른다. 고작 미용실 한번 다녀왔을 뿐인데 삶의 활기로 심장에 산소가 채워지는 기분이다. 완전히 마스크를 벗고 아이가 현관문을 나가 등교하는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기쁠까? 아직은 어린이들의 백신 접종이 어려워서 부모만 접종한 것이 아이에게 미안하다. 숨 막히는 마스크를 쓴 아이들의 마음에도 뿌옇게 서리가 끼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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