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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21. 2021

라면을 요리하는 남편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는 주말이다. 남편이 점심에 짜장라면을 해 먹자고 한다. 간단하게 먹는 이런 식사 참 좋다. 그런데 양파가 없으니 근처 마트에 가서 사 와야겠다고 한다. 인스턴트 짜장라면을 끓이면서 꼭 양파가 필요해?라고 묻고 싶지만 참는다. 남편에게는 꼭 필요한 재료라는 것을 아니까.


산책 삼아 양파를 사들고 느긋하게 집에 왔다. 부엌에서 남편은 이미 인스턴트 짜장라면을 요리하고 있었다. 프라이팬 가득 양배추를 볶고 있는 옆으로 이미 볶은 돼지고기가 접시에 담겨 있다. 이쯤 되면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게 아닌가 싶지만 분명 간단하고 편리한 인스턴트 짜장라면을 끓이는 것이다.


남편은 손질한 양파를 양껏 깍둑 썰어서 볶기 시작한다. 기름에 볶은 재료들의 맛있는 냄새가 집전체에 퍼지기 시작한다. 재료가 준비되자 그제야 면을 삶기 시작하는 남편. 삶은 면을 볶은 재료와 섞어 다시 볶는다. 접시에 담긴 짜장라면이 중국집 삼선짜장의 기운을 풍긴다.


"오~~ 이건 거의 삼선짜장인데!"


고생한 남편에게 고마움의 의미를 담아 감탄사를 날린다. 그리고 한 젓가락 먹어보니 와! 진짜 맛있다. 아삭아삭 씹히는 양배추와 양파의 식감이 어딜 봐도 짜장라면의 맛이 아니다. 이건 뭐 중국집 차려도 될 듯한 맛이다. 이번에는 고기와 함께 면을 먹어본다. 와! 진짜 미쳤다. 고기 식감이 양파를 넘는 것을 보면 나는 분명 육식동물이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나는 또 생각한다. 이 남자는 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인스턴트 라면을 끓이면서 남편은 항상 이렇게 공을 들인다. 간단하게 먹을 짜장라면을 요리처럼 만들어낸다. 중국집도 아닌데 양파는 꼭 있어야 한다. 양배추는 많이, 중국집보다 무조건 많이 넣는다. 고기는 그날그날 냉장고가 허락하는 것을 넣는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우가 들어가기도 한다.


국물라면을 끓일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대파보다 필요한 것은 콩나물이다. 그리고 집에 있는 버섯을 손질해서 넣는다. 팽이버섯이나 느타리버섯, 표고버섯은 항상 집에 사두는 편이라 버섯을 양껏 넣는다. 크게 쓴 대파를 넣고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계란을 넣어준다.


이렇게 끓인 라면을 대하는 나와 아들은 당황스럽다. 이것은 라면이 아니라 라면 전골 같은 비주얼이다. 라면인데 분명 면인데 면보다 채소가 많다. 면이라도 건져먹을라치면 물결치는 채소를 헤치고 면을 찾아 건져내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나는 진심 궁금하다. 라면은 간단하고 편한 것이 매력인데 이렇게 정성을 쏟을 거라면 차라리 육개장이나 버섯전골을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이건 분명 인스턴트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남편에게 인스턴트 라면을 대하는 바른 태도를 가르쳐준다.


일단 라면봉지 뒤에 적힌 양만큼의 물을 넣고 끓인다. 물이 끓으면 라면과 스프를 넣고 계란 하나를 톡 깨서 넣는다. 대파는 귀찮으면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래도 라면은 참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렇게 라면 끓이는 방법을 가르친 지 어느덧 십 년을 훌쩍 넘었다. 신혼 때부터 남편은 라면만은 나한테 맡기지 않았다. 자기가 끓여야 맛있다고. 그렇게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데 맛없기도 힘들겠지.


남편이 이번에는 면 삶는 시간까지 재면서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인지 정말 맛이 있었다. 짜장라면을 할 때 면이 너무 익어서 식감이 떨어질 때가 많은데 면이 딱 적당하게 익었다. 다 먹을 때까지도 처음 느낀 삼선짜장의 풍미를 즐길 수 있었다.


면을 다 먹은 나는 아삭아삭 씹히는 양배추와 양파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맛있게 먹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맛있게 먹으면 다음에 더 정성을 다해서 라면을 끓일 텐데 생각하면서도 자꾸 젓가락이 움직인다. 아들도 맛있는지 채소까지 맛있게 먹었다.


잘 먹는 우리를 보고 남편은 뿌듯하게 말했다.


"내가 이번에는 정말 재료 하나하나 신경을 썼거든. 맛있지?"

"응 맛있어. 면 삶을 때 초까지 재더니 면이 정말 잘 됐어."

"항상 면이 너무 익어서 이번에는 레시피에 있는 시간만큼 익혔더니 괜찮더라고. 역시 레시피를 따라야 돼."


헉! 레시피대로 했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레시피대로라면 물과 라면만 있으면 되는 것 같은데. 뭐 필요하다면 계란이나 대파 정도가 필요하겠지. 그게 바로 제대로 된 라면의 레시피란 말이야. 이렇게 시간 오래 걸리고 정성 가득 들어간 음식은 인스턴트가 아니란 말이야. 제발 인스턴트 정신을 가지란 말이야!라고 외치고 싶지만 참는다. 지난 17년 동안 바뀌지 않는 남편이고, 갈수록 더 정성스러운 라면을 끓이는 것을 보면 내 말이 안 먹히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라면을 나처럼 물과 라면, 계란만으로 끓이지 않아도 된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넣어 먹기도 한다는 것을 나도 텔레비전에서 봤다. 심지어 라면 요리대회도 본 것 같다. 다만 남편이 맛없게 대충 라면을 끓이는 나를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나도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다. 평화로운 주말 낮에 뒹굴뒹굴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간단한 한 끼가 라면이다. 밥해 먹을 때보다 많은 재료와 남겨진 엄청난 양의 설거지는 인스턴트 정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남편은 항상 이렇게 반박한다. 맛있으면 되는 거 아냐? 남편의 말이 맞다. 맛있으면 되는 거다. 그런데 남편은 모르고 있다. 라면은 레시피대로만 끓여도 충분히 맛있다. 특히 주말 낮에 세 식구가 함께 먹는 라면은 무조건 맛있다. 간편하고 빨라서 더 맛있다. 그것이 인스턴트 라면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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