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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27. 2021

점점 싫어지는 직장동료가 있었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동네에 살거나 같은 직장에 다닐 때는 함께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고, 술도 한잔 하면서 친하게 잘 지낸다. 그러다가 이사를 가거나 이직을 하게 되면 그 전의 사람과는 다시 만나는 일이 드물다. 처음에는 연락이 오면 종종 만나기도 하지만 점점 연락이 뜸해지면서 크리스마스나 새해인사 문자도 주고받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옛 직장 동료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진다.


그런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직장동료가 있다. 좋은 기억이 아니라 나쁜 기억으로 가끔 떠오르는 사람이다. 내가 근무했던 학원에 두 사람이 함께 들어왔다. 우연히도 동갑이었던 남자 선생님과 여자 선생님이었다. 여자 선생님은 젊고 예쁘고, 조용했다. 남자 선생님은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 늘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답답하지 않게 일하는 편이었다.


시험기간이라 주말에도 수업이 있었던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몇몇 선생님들이 학원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세명의 선생님과 동갑내기 신입 선생님 둘이 함께였다. 말을 많이 하는 일이라 수업 후에 마시는 맥주맛은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일행 중에 커플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애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신입 남자 선생님이 커플에게 혹시 상대가 양다리 걸친 걸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쿨한 성격의 여자 선생님은 양다리는 헤어지자는 말을 돌려하는 거니까 헤어져야지 라고 했다. 남자선생님은 양다리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자기를 선택한다면 한 번은 용서하고 계속 만나겠다고 했다. 그때 그 신입 남자 선생님이 말했다. '이선생 양다리잖아. 이선생 생각은 어때?' 이선생은 남자 신입 선생님과 동갑인 여자 선생님을 말하는 것이다. 순간 이선생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아니라 짜증이 보였다. 동갑이면서 같이 학원에 들어온 인연으로 종종 따로 만나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모양이다. 동기라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공개적으로 자신의 치부를 가볍게 떠벌이는 동료에 대한 분노가 섞인 표정이었다. '그걸 왜 지금 얘기해? 박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커플 여자 선생님은 짜증스럽고 실망스럽다는 말투로 박샘에게 말하고 분위기는 어색하고 불편하게 변했다. 내가 생각해도 박샘이 경솔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학원에서 이일로 박샘이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찌 됐든 나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달 후, 나는 부친상을 당했고 학원 선생님들이 다 조문을 다녀갔다. 장례식이 끝나고 학원에 출근을 했을 때였다. 복도에서 마주친 박샘이 인사를 해왔다.


"정선생님 괜찮으세요? 힘드셨죠?"

"네. 조문 와주셔서 감사했어요."

"네 뭘. 그런데 정선생님 그날 보니까 얼굴이."

"네?"

"아 그날 보니까 얼굴이 영 그렇더라고요. 화장발인가 못 알아볼뻔했어요."


정말 헐이었다. 너무 황당해서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얼굴이 어떠해야 했다는 뜻이었을까? 화장이라도 하고 있어야 했다는 뜻이었을까? 그날 내 얼굴이 어땠는지 안 봐도 뻔하다. 평소에도 잘 붓는 얼굴이 울어서 팅팅 부었을 것이다. 머리는 뒤로 질끈 묶고, 상복을 입었으니 꼴이 정상은 아니었겠지. 그렇다고 부친상 당한 동료에게 그게 합당한 말이었나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양다리 걸친 동기에 대해 떠벌이던 그 남자의 실체를 실감했다. 남의 일일 때는 이상한 사람이네 싶었는데 내가 당해보니 최악이네가 되었다. 넉살 좋던 사람이 무례하고 개념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다시는 그 사람과 말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그 남자에게 양다리를 걸친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했다가 된통 당했던 이샘이 느꼈을 배신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이샘과 박샘은 학원에서도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었다. 나 역시도 박샘 앞에서는 침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내 치부를 떠벌이고 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내 옷차림이나 화장, 그 외 어떤 부분에 대해서 나에게 솔직을 가장한 상처를 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그냥 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여과 없이 말할 뿐인지 아니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고 작정하고 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 물론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남의 치부를 쉽게 생각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은 지키려고 한다. 같이 일하는 동안  그 선생님이 내게 보여준 모습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처음에 서글서글해서 좋았던 그 선생님은 갈수록 싫어지다가 결국에는 최악으로 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무난하게 잘 지냈던 동료들보다 그 최악의 남자의 '헐'했던 말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더, 만날 일도 없는 지금까지도 점점 더 그 선생님이 싫다. 나이가 들어서도 나는 여전히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너그러움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나이가 더 들고, 마음이 더 부드러워지면 그 선생님이 했던 말에 '헐'하지 않게 될까? 나이가 나를 더 성숙하게 한다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에게 '헐'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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