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우무묵을 보고 반가워서 사 왔다. 우무묵을 좋아하거나 맛나게 요리하는 방법은 모른다. 그래도 마트에서 우무묵을 발견하면 오래 만나지 못한 절친을 만난 것처럼 덥석 집어오고 싶어 진다. 집으로 가져와서 며칠을 냉장고에 넣어두고도 해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무묵은 요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냥 바라보고 있기 좋은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매미가 맴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시원한 우무묵 한 사발 마시기 참 좋은 날이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에 작은 오일장이 있었다. 유명하고 큰 장은 아니었고 근처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장이었다. 그 장이 내가 살던 마을에서 버스로 25분 정도 거리였기 때문에 자주 가보지는 못했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그 오일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우무묵 한 사발을 먹어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 간식에 인색했던 엄마가 사준 것은 아니었다. 동네 아주머니가 사준 우무묵 한 사발 맛은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내 기억에는 볶은 콩가루를 물에 풀고 설탕을 넣고, 큼직한 조각 얼음까지 넉넉하게 넣어서 시원하고 달달한 맛이었다. 시원하고 달달한 콩물과 투명하고 미끄러운 우무묵이 목으로 넘어가는 기분 좋은 느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7~8년 전에도 마트에서 우무묵을 팔아서 하나 사온 적이 있었다. 집에 볶은 콩가루가 없어서 우무묵보다 훨씬 비싼 볶은 콩가루까지 샀다. 설탕도 넣고 얼음도 넣고, 마지막으로 우무묵을 넣어서 사발째 들고 마셨다. 그런데 한 모금 마시고 나머지는 버려야 했다. 그 맛이 아니었다. 그 고소함, 그 달달함, 그 시원함이 아니었다. 인절미를 물에 풀어서 마신 것 같은 맛이 났다. 그 후로는 우무묵을 보고도 사 올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저히 그 맛을 재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우무묵을 어떻게 먹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분명 누군가는 내가 마신 그 우무묵 맛을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콩물에 콩국수처럼 먹기도 하고 잡채처럼 각종 볶은 채소와 무쳐서 먹기도 하는 것 같았다. 미숫가루에 타서 시원하게 마시는 방법도 있었다. 볶은 콩가루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았다. 인터넷에 있는 레시피는 대부분 맞으니까.
이번에는 미숫가루를 타서 우무묵을 넣었다. 내 기억에는 분명 미숫가루가 아니었지만 그 고소함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미숫가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숫가루에 설탕 넣고 얼음 넣고, 우무묵을 넣었다. 예전에는 사각 우무묵이었는데 지금은 먹기 편하게 채 썰어 있어서 좋았다. 아들에게 한 컵, 나도 한 컵 우리는 우무묵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니 아들은 한입 먹고는 '우웩! 무슨 맛인지 도저히 모르겠어. 게다가 이 미끄럽고 투명한 건 맹맛인데 끝 맛이 톡 쏘기까지 하고 이상해.'
사실 나도 아주 맛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볶은 콩가루보다 먹을만했다. 그렇다면 예전에 시장에서 먹어본 것은 미숫가루였나 보다. 물론 그때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그날의 뜨거운 햇볕과 허기가 우무묵을 더 맛있게 만드는 황금 레시피였나 보다. 지금은 단 간식이 지천에 널려서 오히려 보이는 데도 참아야 하지만 간식이 귀했던 시절에 먹은 우무묵 한 사발 맛은 지금은 다시 맛보기 힘든 시원함이었다.
맛은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지만 나는 우무묵 한 사발을 다 마셨다. 마실만했다. 사악하게 많이 넣은 설탕 탓에 미숫가루가 달달했다. 목으로 넘어가는 아들은 우웩 했던 우무묵의 식감이 좋았다. 그리고 나를 시골 오일장으로 데려가는 우무묵의 마법도 좋았다. 음식은 아마도 추억으로 먹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추억이 없었다면 어설프게 만들어서 마신 우무묵은 그냥 맹맛 그 이상도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추억 한 사발 말아서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배가 빵빵하게 불렀다. 배가 꺼질 때까지 나는 이 추억의 포만감에 노곤하게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