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파트 놀이터에서 고학년 아이가 저학년 아이를 때려서 경찰이 오고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온 고학년 아이의 할아버지는 이만한 일로 사람 오라 가라 하냐며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손자를 신고한 피해 학생의 젊은 엄마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후 지인들과 차를 마시면서 그 이야기를 하다가 때린 애가 우리 아파트가 아니라 바로 옆 단지 임대아파트 아이라고 무심코 내뱉었다. 집에 돌아와서 설거지를 하던 나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평소 임대아파트에 대해 비하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던 내가 오히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일어나지 못해. 네가 가겟집 애도 아니고, 보살피는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길바닥에서 놀고 있어. 엄마가 그러지 말랬지. 그러지 말랬잖아.
(P.22)
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김혜진)>을 읽으면서 나는 머릿속에 나도 모르게 그어진 수많은 경계선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 경계선의 어느 쪽에서 살아왔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나는 경상도의 외진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 서울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간 날, 저녁까지 놀다가 나오는데 그 친구의 엄마가 하는 말이 들렸다.
"사투리 쓰지 말라고 했지? 그러다가 시골애처럼 되려고 그래?"
나에게 간식을 주면서 상냥하게 웃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갑자기 냉동고에 들어간 것처럼 친구 엄마의 목소리는 얼어 있었다. 나는 항상 경계선의 안쪽, 남일동에 있었다. 그런 내가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그 아이의 출신을 언급하는 것은 내가 받은 무시에 대한 열등감의 표출이었다고 변명해 보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홍이는 남일동에서 나고 자랐다. 홍이의 부모님은 남일동을 떠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행정구역이 나눠지면서 남일동을 벗어나 중앙동 주민이 된 홍이의 부모님은 남일동에서 살았던 기억까지 지우려고 한다. 하지만 홍이의 마음은 언제나 남일동에 걸쳐있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따돌림 당하는 직원을 홍이는 외면하지 못한다. 홍이는 남일동에서 중앙동으로 바뀐 지역에서 살지만 여전히 남일동 출신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기억 때문에 홍이는 따돌림 당하는 직원과 어울리고, 자신도 따돌림을 당하면서 억눌렀던 분노가 알레르기로 표출된다. 오직 남일동의 제일약국에서만 약을 구할 수 있는 알레르기란 바로 홍이의 분노가 홍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일동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레르기 약을 사러 남일동에 간 홍이는 그곳에서 주해 모녀를 만난다. 홍이의 부모가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 싶어 했던 남일동에 남기 위해 주해는 몸과 마음을 다한다.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마을버스가 다닐 수 있게 청원서를 받으러 다닌다. 주해로 인해 마을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묻는 홍이에게 주해는 말한다. 자신이 필요해서 하는 거라고. 주해는 꼭 남일동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벗어나고 싶은 곳 남일동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마지막 정착지이자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홍이는 어렴풋이 알게 된다.
주해의 딸 수아의 초등학교가 남일동 출신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배정되자 주해와 홍이는 학교를 찾아간다. 주해의 노력으로 수아는 중앙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결국 남민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처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요즘도 이런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읽기가 불편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모습을 바꾸고 여전히 우리 주변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신축 아파트 지상으로 택배차량이 출입하는 것을 막은 일이 있었다. 그 기사를 접하면서 여전히 우리는 나보다 약한 존재를 찾아내고 그들에게 자신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욕구가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남일동에 재개발추진위원회가 들어서면서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주해도 수아도 들떠 있을 무렵, 3년 전 사건의 피해자들이 주해를 찾아온다. 주해가 간호조무사로 있던 소아과에서 생긴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주해를 상대로 병원에서 있었던 일의 진실을 밝히라며 집요하게 괴롭힌다. 그들은 왜 의사가 아닌, 간호사도 아닌 간호조무사였던 주해를 향해 분노하고 있었을까? 가해 집단 중에 가장 약한 존재인 주해는 피해자들에게 가장 손쉬운 상대였을 것이다. 그들은 피해자라고 말하지만 결국 주해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해가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하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 쉽게 화낼 수 있고, 더 잔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주해는 남일동에서도 남지 못하고, 더 외진 곳으로 떠난다. 그리고 남일동의 재개발도 무산된다. 마치 아무렇게나 골목길에 버린 쓰레기 더미처럼 남일동은 피하고 싶은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소설의 시작과 끝은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남일동이 철거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홍이는 포클레인에 의해 부서지고 쓰러지는 남일동을 끝까지 지켜본다. 홍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부모님이 벗어나고 싶어 했던 남일동이었을까? 아마 홍이가 보고 싶었던 남일동은 주해가 머물고 싶었던 남일동이었을 것이다. 주해를 끝까지 믿어주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주해를 외면했던 주민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비겁함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홍이는 보고 싶었을 것이다. 끝내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시 알레르기가 심해진 홍이는 남일동이 모두 불타거나 무너져 내려서 자신의 불편한 마음까지도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일동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남일동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알레르기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 어느 곳이든 존재하는 차이와 차별의 경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홍이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남일동에 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남일동을 혐오했던 홍이의 어머니처럼 나역시 무시 받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뿌리가 되어 또 다른 혐오를 키워 가고 있었다. 작품을 읽고 부끄러운 나의 민낯과 마주하면서 남일동이 무너지는 모습을 끝까지 목격하고 싶어 했던 홍이와 같은 마음으로 나는 남일동의 몰락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