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by 써니

그렇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바틀비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번역에 따라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로 번역한 것이 소설의 문맥과 맞다고 생각한다. 안 하고 싶다는 것은 하기 싫다는 감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안 하는 편을 택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안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성실한 필경사인 바틀비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안 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창비 출판사 번역은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로 번역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창비출판사의 번역을 쓰기로 했다.


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며칠 전에 읽었다. 세계 3대 단편으로 평가받는다는데 나는 이제야 알게 된 작품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었기 때문에 비슷한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모비딕이 거친 자갈길을 맨발로 걷는 기분이라면 이 작품은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걷는 기분이었다. 처음에 발이 아프지는 않지만 신발 사이로 들어간 미세한 모래가 발을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하는 것처럼 이 작품이 그랬다. 바틀비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다가도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지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나이가 지긋하고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재판에서 열띤 변론을 하기보다는 부자들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편하게 지내는 인물이다. 그런 '나'는 법원의 주사 자리를 맡고 일이 많아져서 바틀비를 필경사로 채용하게 된다. 바틀비는 침착한 인상처럼 엄청난 양의 필사를 성실하게 해냈다. 그런데 필사한 문서를 검토하자는 '나'의 말에 바틀비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일을 시작으로 바틀비는 '나'가 시키는 아주 사소한 일 하나도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한다. '나'는 화가 났지만 바틀비가 필사를 아주 성실하게 해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일요일에 사무실에 들른 '나'는 바틀비가 사무실에서 먹고 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무실을 집처럼 사용하는 바틀비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나'는 혼자 텅 빈 월가를 지키는 바틀비의 고독을 아파한다. '나'는 바틀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졌고 바틀비에게 개인적인 것들을 물어본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바틀비는 더 이상 필경사 일도 '안 하고 싶어'한다. 이제 바틀비는 사무실에 있는 의자나 기둥처럼 존재한다. 결국 '나'는 바틀비를 내보내기로 하지만 바틀비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나가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나'는 바틀비를 사무실에 남겨두고 다른 건물로 사무실을 옮긴다. 그 후로도 바틀비는 사무실에서, 건물에서 계속 머물다가 건물주에 의해 구치소에 수감된다. 구치소에서 바틀비는 음식을 먹는 것조차 하지 않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다.


바틀비는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침착하게 말하지만 그의 말은 생각보다 크고 무거웠다.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이게 하고 숨 막히게 하고, 심지어는 사무실의 다른 사람들이 그의 표현을 따라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무실에 혼자 벽을 보고 있는 바틀비, 모두가 떠난 월가에서, 텅 빈 사무실에서 바틀비가 느끼는 외로움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을까? 바틀비의 외면은 소름 끼칠 만큼 정적이지만 그의 내면은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면서 세상과 고독에 맞서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들처럼 적당히 편하고 쉽게 살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아프지만 자신이 택한 길을 가는 사람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바틀비는 설명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바틀비는 바로 나이기도 하다. 바틀비의 고집스러운 침묵과 저항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일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이런 고집스러운 부분을 가지고 있다. 허먼 멜빌의 다른 작품 <모비딕>에서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고래 모비딕에 대한 에이헤브 선장의 고집스러운 복수심과도 닮아 있다. 중학생 이후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고집스럽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의 집착도 어느 면에서는 바틀비와 비슷한 것 같다. 단지 에이헤브 선장과 나와 달리 바틀비는 하지 않는 것에 집요하게 매달릴 뿐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남들이 다 '네'라고 할 때 두려움 없이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죽음조차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조용하게 받아들이는 바틀비의 강인함에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어쩌면 바틀비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집착으로 먹고 소유하고 집착하듯, 바틀비는 죽음에 대한 집착으로 죽음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린 것이다. 그의 죽음은 바스러질 듯 약한 것이지만 동시에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그의 세계였다.


'나'는 많은 것을 바틀비에게 주려고 했지만 결국 바틀비는 '나'가 주는 일도, 돈도 음식도 집도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것을 바틀비에게 주었다. 바틀비의 죽음은 외로운 것이지만 '나'가 있었기에 또한 완전한 것이었다. '나'가 바틀비를, 그의 죽음을 알고 있고 아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삶이란 어쩔 수 없이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바틀비는 죽어서도 실바람 같은 소문으로 '나'에게 흔적을 남긴다. 결국 인생에서 완전한 성공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바틀비는 완전히 텅 빈,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꿈꾸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존재했고 여전히 남아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매력적인 인물 바틀비를 생각하고, 그가 남긴 메시지를 새겨보면서 자꾸 생각이 복잡하게 뻗어가기만 할 뿐 정리를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만약 작가가 의도한 것이 이것이라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나는 일상의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바틀비를 생각했다. 그의 고독과 단호함, 다른 무엇도 꺾을 수 없었던 강한 의지를 생각했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정하겠다는 고집, 심지어 죽음조차 자신을 덮치게 두지 않겠다는 의지로 죽음을 향해 겁 없이 걸어갔던 바틀비를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의 화자인 '나'처럼 바틀비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짧지만 멋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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