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종의 기원과 7년의 밤, 그리고 정유정

by 써니

오랜만에 한국 소설. 오랫동안 궁금했지만 미뤄왔던 작가의 작품이었다. 결과는 대만족, 아니 그 이상이었다. 손을 놓을 수 없는 스토리에 읽은 후에 찾아온 고민과 슬픔, 그리고 알 수 없는 먹먹함. 나에게 아들이 있어서인지 두 작품을 읽고 잠든 아들을 꼭 안아줬다. 우리가 함께 웃고 산책하고 맛난 거 먹고 지내는 오늘, 지금이 주는 소중한 가치를 가슴 깊이 일깨워 준 소설이었다.


종의 기원은 여러 번 추천을 받은 작품이었지만 망설였다. 아이가 없었을 때 나는 스릴러 덕후였다. 스릴러 영화, 드라마, 범죄물... 나는 이런 장르에 탐닉했다. 왜 그랬니? 왜 죽여야 했니? 나는 작품 속 살인범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고, 알고 싶었다. 이런 작품에 빠져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이런 작품을 즐기지 못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와 같았다. 이렇게 무섭고 험한 세상에 나로 인해 태어난 생명이 아슬아슬하게 사는 것이 싫어서 난 남편을 설득, 아니 강요해서 딩크를 택했다. 남편은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6년을 보냈다. 7년 만에 아들이 태어났다. 딩크를 포기하고 한 달도 되기 전에 임신을 한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 나는 첫 목욕도 하지 않은 아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이 있을 수 있다니... 우리 부부는 정말 금이야 옥이야 놀이에 빠졌다. 지금까지...


코로나로 외출과 독서회 금지... 난 '레미제라블'을 완독 했다. 연작을 싫어해서 망설인 작품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읽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다른 평범한 소설과 같은 소설로 불려도 괜찮을까 싶었다. 문제는 이 작품을 읽고 다음 작품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이 작품만큼 흡입력 있으면서 대단한 작품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멋진 신세계', ' 콜레라 시대의 사랑'으로 내 감동의 폭을 줄여나가야 했다. 그리고 만난 작품이 종의 기원이었다. 코로나 방콕에 지친 내게 주는 짜릿한 위로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자극과 재미로 오랜만에 스릴러에 빠져보자. 그래 삐뚤어질 테다.


유진은 간질약을 먹어야 하는 아이였다. 약을 끊으면 발작을 한다는 엄마와 이모의 말에 약에 의존해서 살았다. 수영을 좋아하지만 약을 먹으면서 기록이 나오지 않아 몰래 약을 끊고 발작을 하면서 수영을 포기당했다. 유진은 돌파구를 잃었다. 끓어오르는 피를 식혀줄 물 한잔 같았던 수영이 사라지자 유진은 마음속에 화산을 품게 되었다. 25살, 유진은 다시 약을 끊고 화산은 폭발한다. 그리고 화산은 멈출 것 같지 않다.


25살 유진은 약을 먹지 않았을 때 오는 몸의 가벼움을 위해 며칠 약을 끊고 발작 같은 살인을 하게 된다. 결국 살인을 목격한 어머니를 살해하고 집에 유기한다.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자 의심하는 이모를 살해하고, 자수를 강요하는 친구이자 양형제인 해진까지 죽이고 유진은 세상 속으로 숨어든다. 10살 때 서바이벌 게임을 하다가 화가 나서 형을 절벽에 떨어뜨려 죽이면서 유진의 첫 살인이 시작된다. 엄마와 이모는 유진의 몸속에 흐르는 피를 읽고, 약으로 막아보려 한다. 하지만 유진의 본성을 막지 못한 엄마와 이모는 결국 유진에게 살해된다.


처음에는 헷갈렸다. 유진의 살인이 엄마와 이모의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수영을 못하게 하고, 숨쉴틈 없이 유진을 옥죄는 규칙들 때문에 유진이 폭발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유진이 어린 시절 보여준 폭력성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피 냄새에 민감하고 살인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한 유진은 결국은 살인으로 쾌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존재다. 여기서 다시 의문이 생겼다. 첫 희생자인 유민의 죽음으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엄마의 선택이 옳았을까? 유민이 유진에 의해 죽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동생이 말했던 것처럼 유진이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엄마는 차마 유진을 어찌하지 못하고 약으로 통제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이 심해서 유진은 극심한 두통과 무기력감을 견뎌야 한다. 유진은 엄마 몰래 약을 버리기 시작한다. 엄마가 아무리 유진을 통제하려고 해도 약을 입에 매일 넣어준다 해도 삼키는 것을 확인한다 해도 막을 수 없다. 토해버리면 끝이다. 화장실에서 다 큰 아들을 감시하는 것까지 못할 테니... 그럼 어찌해야 할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남들에게는 끔찍한 살인자이지만, 설령 나의 아들을 죽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아들인 유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고 해도 어린 유진을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든 아들을 보면서 미래의 살인자로 생각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유진은 태어난 살인자이다. 길러진 살인자일 거라고 잠시 헷갈렸지만 아니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피해자를 위해 유진을 정신병원에 영구적으로 가둬야 할까? 아니면 엄마의 말처럼 어린 시절 같이 죽었어야 할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 무고한 사람까지 죽이고 사라진 유진은 이제 약도 복용하지 않는 무장해제된 무기다.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소설의 뒷이야기가 자꾸 걱정이 된다. 머리도 뛰어난 천재 살인범의 춤추는 살인극이 보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이 작품을 읽고 정유정의 작품을 좀 더 읽기로 했다. 7년의 밤.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당기지 않았다. 종의 기원과 같은 이유였다. 결국 종의 기원과 같은 이유로 읽었다. 역시 좋았다. 오랜만에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에 코로나 따위 잊었던 시간이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한 현수, 아이를 잃고 복수를 꿈꾸는 영제의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나는 오히려 주변 인물들이 주는 재미가 좋았다. 짧은 등장이지만 남편의 폭력에 딸을 두고 떠나는 하영, 엄마의 부재와 아빠의 폭력에 놓인 세령에게 오랫동안 연민이 갔다. 특히 세령 혼자 견딘 아빠와의 시간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하영이라는 존재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딸이 어떤 고통을 겪을지 알면서 혼자 떠나는 엄마가 있을까? 왜 하영은 혼자 떠났을까? 하교하는 세령을 데리고 떠났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내가 그 입장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영제보다 용서할 수 없는 존재가 하영이다.


어린 시절 나 역시 아빠의 술주정과 폭력에 시달렸다. 나는 어린 시절에 집에서 잠을 잔 시간보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집 밖에서 잔 시간이 더 많았다. 겨울에는 누군가의 하우스에서, 이웃집에서 수치심을 따뜻한 아랫목과 바꾸고 자기도 했다. 여름에는 누에를 키우는 잠실이나 마구간 위 창고에서 잤다. 우리 형제들 대부분 그런 어린 시절이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난 왜 엄마가 아빠랑 살까 생각했다. 왜 이혼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난 엄마가 아빠랑 헤어지면 당연히 우리를 다 데리고 아빠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엄마 혼자 떠날 것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자주 엄마한테 아빠랑 이혼하라고 했다. 어찌 됐든 엄마는 아빠랑 이혼하지도 우리를 버리지도 않았다. 악마 같은 시월드와 아빠의 폭력에도 엄마는 우리를 지켰다. 엄마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동네 친척이 엄마한테 아이 두고 떠나라고 했단다. 아직 새 출발 가능하니까 떠나라고... 엄마는 동네 어귀에서 짐을 들고 망설이다가 결국 다시 집으로 갔다. 아기가 눈에 밟혀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단다. 물론 우리 아빠가 오영제처럼 돈이 많지도 않고, 오영제만큼 악랄하지 않다. 나는 세상을 바꾼 영웅보다 우리 엄마를 존경한다. 엄마는 엄마의 세계를 지켰다.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엄마는 나중에 병든 아빠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간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는없다 아니지만 하영은 세령을 돌아봐야 했다. 자기 자식을 죽음 속에 버린 것에서 결코 세령은 자유로울 수 . 세령은 과연 영제가 죽인 것일까? 세령을 과연 현수가 죽였을까? 미친 영제를 차라리 하영이 죽이지 그랬어... 그랬다면 수많은 사람이 살았을 텐데.. 아니 적어도 세령은 살았을 텐데... 적어도 프랑스에 혼자 가지 말았어야지...


무기력한 존재, 현수가 세령을 죽였을까? 아빠가 무서워서 달아나다가 차에 뛰어든 세령을 차로 치게 된 현수가 영제의 복수의 대상이 된 것은 순전히 영제의 광기일 뿐이다. 물론 음주운전을 한 현수도, 세령을 죽이고 호수에 던진 현수도 두둔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과정이 있다. 왜 세령이 그곳에 가게 되었나? 고작 12살의 어린 여자 아이가 밤거리를 공포에 질려 달려야 했던 이유부터가 이 사건의 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제의 광기에 죄를 묻는 것은 당연하고, 하영에게 나는 가장 큰 이유를 묻고 싶다.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텼을 세령을 그대로 버릴 작정이었냐고...


현수의 아들, 서원은 사건 후에 오랜 시간 경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도 영제는 집요하게 서원을 괴롭힌다. 하지만 서원은 마음이 굳은 사람이다. 처음 영제를 만났을 때도 그랬고, 마지막에 영제를 만났을 때도 서원은 흔들리거나 약해지지 않는 존재다. 이런 사건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무능하고 술꾼이지만 마음 따뜻한 아빠와 억척스럽지만 그래도 아들을 위하는 엄마와 평범하게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다면...


아마 현수가 교도소에서 매일 생각했던 만약이 바로 이런 것이겠지. 아들 서원이 멋진 남자가 되게 해 주고 싶었던 작은 바람이 무너지지 않길 바래서 죽인 세령... 세령을 병원으로 데려갔다면...


정말 이 소설만큼 만약... 이 많이 생각나는 소설이 있을까?


또 하나 나는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댐에 갇혀 수장될 위기의 아들, 그 아들을 위해 수문을 열면 마을이 위험하다. 나였더라고 해도 수문을 열었을 것이다. 내 눈에서 아들이 죽는 모습을 어떻게 보겠는가. 결국 현수는 감옥에 가고 침묵한다. 영제는 사라진다. 현수의 아내, 은주를 죽이고...


결국 영제도 감옥에 가겠지만 수문을 열게 했던 영제의 행위는 물에 잠긴 마을처럼 침묵 속에 잠겼다. 서원은 여전히 카메라 앞에 언론의 장난감이 된다. 어떻게 마무리되어도 서원은 이 놀이에서 언제까지나 언론의 장난감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희생자의 가족도 언론에게 달콤하지만 가해자의 가족은 얼마나 단맛이겠는가. 다행히 서원은 마음이 단단하다. 앞으로도 서원은 그럴 것이다. 이 소설의 뒷이야기를 상상해도 서원이 쉽게 쓰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독자들을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의 기원의 결말보다 마음이 편한 결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서원을 지키는 아저씨가 있으니까? 아저씨는 왜 끝까지 서원을 지키는 것일까? 고작 보름 함께 한 룸메이트일 뿐인데... 세령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원빈의 '아저씨'처럼 서원을 지키는 아저씨도 멋있는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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