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내 몸이 쇳덩이에 묶여 바다로 침몰해 가는 기분이었다. 1990년대 후반, 태어날 때부터 복제된 아이들... 아니 장기 기증을 목적으로 복제된 아이들이 다니는 기숙학교 헤일셤. 그곳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클론이라는 사실을, 언젠가는 기증자가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사실을 너무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선생님들이 어릴 때부터 기증자라는 얘기를 해 준 것이 오히려 그 말이 주는 끔찍함을 망각하게 한 것 같다. 학생들은 우리의 학창 시절과 너무나 비슷하게 자란다. 웃고 떠들고 싸우고...
16살이 되어 캐시와 루스, 그리고 토미는 학교를 떠나 농장처럼 보이는 코티지로 간다. 그곳에서 세 사람은 헤일셤 출신이 아닌 다른 클론들과 생활하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서 1년 정도 머무르면서 때가 되기를 기다린다. 간병사가 되어 기증자를 간병하거나 기증자가 되는 것이다.
소설은 간병사로 10년 동안 일하면서 기증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캐시의 시점이다. 캐시는 기증도 간병사로 일하는 삶도 정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캐시는 간병일을 충실하게 해낸다. 그러다가 루스가 기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루스의 바람대로 캐시는 토미와 연인이 된다.
그 당시 기증자들에게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기증자들은 기증을 몇 년 연기해 준다는 것이다. 루스는 캐시에게 토미와 함께 마담을 찾아가라고 한다. 마담은 헤일셤에 다니던 시절에 학생들의 시나 그림 중에서 우수한 것을 가져간 사람이었다. 헤일셤에서부터 지금까지 토미와 캐시가 서로 좋아했다는 것을 루스는 알고 있었다.
캐시와 토미는 루스가 준 주소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집행 연기는 없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헤일셤의 학생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된 배경을 알게 된다. 헤일셤은 클론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에밀리 교장의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작품이란 그걸 만든 이의 자아를 드러내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나? 너희의 작품이 너희의 '영혼'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p347)
너희에게 영혼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라도 있었느냐고?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구나. 얘야, 오래전 우리가 헤일셤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게 대부분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였다고 말이다. 그 이후 우리가 거둔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그런 견해가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단다. 너희 헤일셤 학생들은 바깥세상으로 나온 지금까지도 세상의 실상을 반도 모르고 있어. 바로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통탄할 만한 상황에서 사육되고 있단다. 헤일셤 출신자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야. 헤일셤이 폐교되었으니 이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질 거다. (p357)
토미는 4번째 기증을 하고 죽는다. 캐시는 이제 간병사의 일이 끝나게 되었다. 기증자가 된 캐시 역시 루스나 토미처럼 기증을 하다가 죽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두려웠던 것은 이들이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클론이라고 해서 사람처럼 말하고 사람처럼 웃고 사람처럼 우는 것이 이상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다르다. 마치 사육장의 동물처럼 시간이 되면 수술대 위에서 죽어간다.
누가 진짜일까? 그들의 근원자가 진짜이고 그들이 클론일까? 순서가 다르다고 존재가 다른 것일까?
헤일셤에서 학생들이 미래를 이야기할 때,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에게 기증자로서의 삶을 알려주려고 했던 루시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게 된다. 교장 에밀리는 후에 말한다. 모두 아는 것이 최선이냐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들의 몸이 찢긴다는 것을, 신장을 꺼내 다른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아마 더 끔찍할 것이다. 루시 선생님의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닌 것 같다. 나라면 모르고 싶다.
소설은 영화 'Never Let Me Go'로 만들어졌다. 소설을 읽었을 때는 헤일셤의 학생들이 아팠는데 영화를 봤을 때는 코티지에서의 생활과 기증자로서의 이들의 모습이 아팠다. 특히 마지막 기증을 위해 수술대에 누운 루스의 모습이 시리게 아팠다. 루스의 얼굴에 슬픔이나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잠을 자려고 누운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누운 루스와 루스의 몸에서 장난감 부품을 빼가듯 장기를 빼가는 모습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시렸다. 수술실은 참으로 춥다. 그렇게 추운 이유는 너무 추워서 다른 슬픈 생각보다는 춥다는 생각만 하라고 그런 것처럼 춥다. 그렇게 추운 수술실에서 루스도 토미도 죽어갔다. 그리고 캐시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을 때 '뜨거우니 조심하세요'라는 기계음이 들린다. 정수기는 입력된 소리를 낼 뿐이지만 정수기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 같아서 나는 가끔 위로를 받는다. 내가 11년 동안 운전했던 첫 차를 보낼 때 나는 며칠 동안 심란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보내는 것 같았다. '승리호'의 업동이는 기계일까? 물론 로봇이지만 우리는 업동이가 죽기를 원하지 않았다. 업동이라는 기계에 마음을 주고 말았던 것이다.
마담을 찾아갔을 때 에밀리 교장은 장식장을 걱정하는 시간이나 마음만큼도 캐시와 토미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마담과 에밀리는 할 만큼 했고, 이제 장식장이나 붙들고 살 모양이다. 장식장도 슬픈데, 업동이도 차도 정수기도 마음이 가는데 왜 캐시와 토미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일까?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꿈을 꾸던 헤일셤의 학생들이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그 학생들은 더 인간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