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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ug 04. 2021

코로나 시대의 여름휴가

1. 은밀하게 시원하게

남편의 휴가날짜가 정해 질 무렵에는 확진자가 안정되는 분위기였다. 남편과 나, 양가 부모님이 모두 백신 1차 접종을 끝낸 상태였다. 그때 휴양림에서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보낼 생각으로 어렵게 예약한 곳이 유명산 휴양림이었다. 코로나로 작년 1월 이후로 1년 반을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 아이와 부모님의 건강과 자영업자가 코로나로 인해 가지는 위험부담 때문이었다. 백신을 접종하고 나면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황은 더 나빠졌다.


부모님과 합의하에 여행을 취소하고 휴양림을 취소하려고 하니 아까웠다. 극성수기에 운 좋게 휴양림 예약에 성공했는데 취소하자니 다시 언제 이런 기회가 오랴 싶었다. 그런데 아들도 나도, 심지어 남편도 여행이 쏙 내키지 않았다. 집 밖에 나가서 잠깐만 걸어도 땀이 나는 날씨에 여행을 갈 생각 하니 이미 지치는 기분이었다. 계곡이 좋은 산이지만 휴가철이라 사람들이 많으면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계곡이라지만 마스크 쓰고 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머무는 방 창문에서 보는 뒷산 풍경이다. 칡잎이 창문 가득 싱그러웠다.


여행 전날까지 고민하다가 그냥 가기로 했다. 뭐 사람 많으면 밤에 산책만 해도 좋은 곳이니까. 내켜하지 않는 아들과 걱정스러운 우리 부부는 포기한 휴가라 별 준비도 없이 출발했다. 휴양림 입구 계곡부터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우리가 잡은 숙소가 외진 곳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숙소 바로 앞 계곡, 그중에 가장 얕아서 아무도 없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시원하고 좋았다. 편의점에서 사간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서 한두 시간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은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들은 본능적으로 물수제비를 하면서 놀았다. 조금 아래 계곡은 물이 깊어서 수영도 가능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미 많았다. 우리는 마스크 없이 외진 계곡에서 마음 편히 시원한 시간을 보냈다. 이미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차가워서 덥지 않고 집콕의 답답함을 어느 정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작지만 맑고 시원한 계곡이 있다면 코로나 시대에도 휴가는 가능하다.  


2. 코로나 시대,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다림?

계곡물은 투명할 만큼 깨끗했다. 발 주위로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갔다. 한참을 멍하니 물 멍, 물고기 멍을 하다가 나는 물고기를 잡아 보고 싶어 졌다. 작은 플라스틱 그릇이나 비닐봉지로 물을 퍼올려보지만 나한테 잡힐 눈먼 물고기는 없었다. 포기하려다가 아주 얕은 웅덩이에도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이 보였다. 그 정도의 깊이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역시 나보다 물고기가 빠르고 똑똑했다. 나는 손을 모으고 물고기를 기다렸다. 물고기들은 돌멩이 색깔과 확연하게 다른 내 손 색깔에 속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꼼짝도 안 하고 기다렸다. 물고기가 내 손을 계곡의 일부라고 착각하기를 바라면서. 그랬더니 어느 무신경한 물고기 한 마리가 내 손바닥에 정확하게 올라왔다. 나는 재빠르게 손을 물밖로 퍼올렸다. 잔뜩 힘주고 모은 손바닥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또미야 또미야 내가 물고기 잡았어. 맨손으로 잡았어. 엄마 짱이지?"

나는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입으로 요란스럽게 소리소리 지르면서 아들에게 자랑했다.

"어디? 와 엄마 대단하다. 어떻게 잡았어요?"

아들은 감탄하면서 페트병을 들고 왔다. 우리는 병에 물을 채우고 조심스럽게 물고기를 넣어주었다. 작은 물고기는 좁은 페트병 안에서 어리둥절한 듯 빠르게 움직였다.

"또미야 내가 물고기를 잡은 비결이 뭔지 알아? 바로 기다림이야. 물고기가 내 손을 낯설게 느끼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더니 내손으로 들어오더라. 그때 잽싸게 잡아 올렸지."

"와! 대단."

아들은 감탄하면서 병 속의 물고기를 보고 또 보았다. 물이 깊었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절대 잡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맨손으로 잡은 물고기를 아들에게 보여주니 기분 좋았다.

"또미야 우리 물고기 사진만 찍고 바로 놓아주자. 이 병 속에 오래 있으면 답답하고 더워서 죽을지도 몰라."

"네."

우리는 물고기 사진을 찍고 바로 계곡물에 놓아주었다. 예전에 다슬기나 물고기를 잡아서 페트병 같은 곳에 물과 함께 넣어둔 적이 많았다. 조금 더 보다가 놓아주려고 했는데 더워서인지 놀다가 와서 보면 죽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얼마나 그 생명체들에게 미안했던지. 조금 더 보겠다는 내 욕심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니 더 미안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다슬기도 다른 물고기도 잡으면 몇 분 안에 바로 놓아주었다.

작은 물고기야 놀라게 해서 미안해!

아들은 어릴 때 낚시하고 싶다고 할 때가 많았다. 싼 낚싯대를 사서 호수나 개울, 바다에서 낚시를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강화도에서 망둥어 낚시를 했는데 여러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아들은 낚시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망둥어를 잡아서 기분은 좋은데 망둥어 입에 걸린 낚싯바늘을 빼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망둥어가 아플까 봐 아들도 남편도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빼내느라 진땀을 뺐다. 그리고 다시 망둥어를 바다에 놓아주는데 잠깐의 손맛 때문에 망둥어가 받은 고통이 너무 큰 것 같다고 남편도 아들도 다시 낚시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내가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은 것도 마찬가지로 잠깐의 내 즐거움 때문이었다. 나한테 잡힌 물고기는 아마 익숙하지 않은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무서웠을 것이다. 아직 어린 물고기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주변을 살피면서 도망갈 궁리로 바쁘게 움직였을 것이다. 다행히 손으로 살짝 떠올려서 몸에 상처는 안 났을 테니 그나마 덜 미안했다. 물고기가 마음을 놓고 내 손바닥 위로 올라올 때까지 조용하게 기다려준 덕분에 상처 없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아예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계곡 놀이를 즐기고 싶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히 물고기는 계곡물에 놓아주자마자 바로 넓은 계곡물을 빠르게 헤엄쳐갔다. 자신에게 정확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뜨거운 여름 날씨에 , 납량특집급 섬뜩했던 체험으로 더위는 싹 달아났으리라.  



3. 집토끼가 산에 가면 산토끼가 될까?

갑자기 떠난 여행으로 저녁은 간단하게 먹었다. 따로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것을 챙겨갔기 때문에 나물반찬에 풋고추, 토마토 정도에 며칠 전에 사놓은 삼겹살 한팩이지만 세 식구가 먹기에 양이 많았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나섰다. 길 따라 걷는데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허연 물체가 보였다. 저게 뭐지 하면서 가까이 가보니 토끼? 아니 토끼 모형인가 싶었다. 토끼 모양의 그것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우리는 보고 있었다. 그래서 마치 휴양림 중간중간에 있는 동물 모형들처럼 이것도 모형 같았다. 한 10초쯤 지났을 때 갑자기 토끼 모양이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기 시작했다. 우리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쪼그리고 앉아서 토끼를 보았다. 토끼는 하얀색과 회색이 섞인 털을 가진, 커다란 귀가 쫑긋한 모습이었다. 토끼를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귀가 이렇게 큰 토끼는 처음인 것 같았다. 토끼는 우리가 바로 앞에서 쳐다보는데도 신경도 쓰지 않고 풀만 뜯었다.

길토끼일지도 모를 산토끼, 실물이 사진보다 99배 더 예쁘다.

아들이 풀을 뜯어 입 가까이 가져갔더니 아들이 주는 풀을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토끼를 보면서 노는 데 산책하던 한 가족이 신기해서 다가왔다.

"기르시는 토끼예요?"

"아니요? 산책하다가 마주쳤는데 도망을 안 가서 신기해서 보는 중이었어요."

"어머 이 토끼 희한하다. 생긴 것도 예쁘고. 이렇게 큰 걸 보면 집토끼 같은데 누가 키우다가 여기다 두고 갔나 보네. 털도 산토끼 같지 않고."

그러고 보니 토끼가 드물게 예쁜 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풀이 많은데도 사람이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도 이상했다.

"예전에 토끼를 집에서 키웠는데 냄새가 너무 나서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지인한테 줘버렸는데 이 토끼도 누가 키우다가 힘들어서 산에 살라고 여기 두고 간 모양이에요. 사람 손을 탄 것 같아요."

그분은 그렇게 말하면서 토끼에게 풀을 뜯어 주었다. 토끼는 그분의 말을 증명하듯 풀을 받아먹었다. 우리가 산책로를 걷다가 다시 올 때까지 토끼는 그곳에 있었다. 그 사이 5살가량의 꼬마애가 토끼를 보고 좋아서 따라가니까 놀라서 도망을 갔다. 그런데 토끼가 도망가는 장소가 산 쪽이 아니라 사람들의 숙소 쪽이었다. 테라스에 모기장을 쳐놓고 저녁을 먹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토끼가 신기해서 모기장 밖으로 나와서 한참을 쳐다봤다.


정말 이 토끼는 유기 토끼였을까? 다음날 새벽, 남편이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까 그 토끼가 숙소 앞에 와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반가워서 다가갔더니 토끼는 옆 숙소를 향해 달아났다고. 누군가 이곳에 두고 간 토끼는 매일 예전 보호자가 자기를 다시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숙소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토끼는 도망가면서도 산이 아닌 숙소를 향해 달렸다. 집토끼를 산에 두고 가면 산토끼로 행복하게 살 거라는 생각으로 산에 버린 것이리라. 집토끼가 산으로 가면 산토끼가 되는 것일까? 아마 아닌 것 같았다. 이 토끼는 자꾸 사람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마 이 토끼는 산에서 살지만 집토끼, 아니 길토끼로 사람이 오면 반가워서 다가가면서 살게 될 것 같았다. 털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길토끼를 만났다. 집토끼도 아닌 산토끼도 아닌 길토끼지만 풀이 많은 곳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겨울이 와도 토끼는 본능적으로 잘 살겠지? 아니면 어떡하지? 길토끼를 만나서 한참을 걱정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떠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그 토끼는 다른 누군가가 귀여워서 주는 풀을 뜯으면서 그 숲에 유일한 길토끼로 살아가겠지. 아마 끝내 산토끼는 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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