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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31. 2021

#바나나 #붕어빵 #성공적

방학하기 전 아이의 학교 숙제로 건강간식 만들기가 있었다. 수업을 통해 건강한 간식에 대해 배운 후에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재료를 준비하라고 선생님은 미리 알려주셨다. 아들은 어떤 간식을 만들까 고민하더니 <과일 요구르트>를 만들겠다며 나한테 미리 재료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이 부탁한 재료는 망고와 바나나, 그리고 플레인 요구르트였다. 후숙 과일인 망고는 며칠 전에 미리 사고 바나나와 플레인 요구르트는 전날 사 두었다.



온라인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들은 요리에 들어갔다. 이 과제의 포인트는 건강한 재료와 셀프요리에 있었다. 아들은 망고 손질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망고 손질은 어려우니까 껍질과 씨만 내가 제거하고 아들은 망고를 깍둑썰기로 잘랐다. 플레인 요구르트를 그릇에 담고 자른 망고와 바나나를 모양 내서 얹었다. 



요리가 끝나고 사진을 찍은 아들은 이건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아들?"

"엄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요. 요리를 해야 하는데 이건 요리가 아니라 요구르트를 그냥 그릇에 담은 것 같은... 이러면 과제로 올리기 좀 그런데."



"그래? 그럼 어떻게 할까? 다른 것도 만들어볼까?"

"다른 거 뭐요?"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니 숙제니까."

"엄마 생각이 안 나요. 집에 재료 뭐 있어요?"

"재료? 음... 바나나?"

"아 엄마 바나나로 뭘 해요?"

"아 아들 집에 팬케익 가루도 있어. 우리 바나나랑 팬케익 가루로 간식 만들면 되겠다. 뭐가 좋을까? 와플? 붕어빵? 그래 붕어빵 어때?"

"엄마~~ 바나나로 어떻게 붕어빵을 만들어요. 전혀 어울리지 않거든요."



요즘 아들의 말투가 누가 봐도 10대다. 욱 하고 올라올 때가 많다. 원하는 재료 사다 바친 엄마에 대한 보은이 고작 이런 말대꾸라니. 하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을 괜찮은 간식으로 승화시키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일단 삐뚤어진 아들의 말투는 패스하기로 했다.

"아들 일단 만들어 보자. 사진만 올리면 되니까 맛없어도 되잖아."

"엄마 그리고 과제는 건강간식이에요. 붕어빵은 건강한 간식이 아닌 것 같은데. 맛없는 안 건강간식이 되겠네요"

또 욱 올라오려고 하지만 조금 더 어른인 내가 착한 말로 본때를 보여주기로 했다.

"붕어빵은 건강간식이 아니지. 하지만 바나나 붕어빵은 건강간식이 되는 거야. 일단 해보자."

그렇게 미덥지 않은 표정의 아들을 달래며 팬케익 가루에 우유와 계란을 넣고 반죽을 했다. 그리고 바나나를 동그랗게 잘랐다.



붕어빵 팬에 기름을 바르고 반죽을 넣고 바나나를 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 또 반죽을 덮어야 하는데 실수로 반대편 팬에 반죽을 부었다. 이런... 뚜껑을 덮는데 반죽이 반이나 흘러내렸다. 벌써 망한 분위기가 풍겼다. 하지만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일단 기다렸다. 반이 넘는 반죽의 탈출로 구멍이 뽕 뚫린 붕어빵이 완성됐다. 실패를 이겨내고 두 판을 더 구웠다.

 


요구르트와 붕어빵을 사진으로 찍으니 나쁘지 않았다. 아들도 비주얼에는 만족한 것 같았다. 과제 게시판에 사진을 올리고 붕어빵을 먹어보기로 했다. 기대는 -100프로였지만 의외로 맛있었다. 아들은 맛있다며 두 마리를 더 드셨다. 잘 먹는 아들을 보니 아들의 뚱한 말투까지 귀엽게 보였다. 바나나 붕어빵 대성공이었다. 시크한 10대 아들까지 예뻐 보이게 만드는 맛이다. 동그랗게 자른 바나나가 구워지면서 잼처럼 변해서 적당히 달아서 더 좋았다. 정말 건강한 맛이다.

 


둘이서 5개를 먹고 하나는 아빠를 위해 남겨뒀다. 퇴근을 한 남편에게 붕어빵을 먹어보라고 했다. 맛있게 먹는 남편에게 이거 바나나 붕어빵이야 라고 했더니 바나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맛있다고 했다. 붕어빵은 팥소가 들어가야 제일 맛있다. 하지만 팥소가 없거나 너무 단 붕어빵이 부담스러울 때는 바나나 붕어빵을 구워 커피와 함께 먹으면 부담스럽지 않은 아침으로 좋을 것 같다. 과제 게시판에 올린 아들의 사진에 선생님은 집에서 붕어빵까지 굽다니 대단해요!라고 댓글을 남겨주셨다. 선생님의 글을 읽은 아들의 얼굴에 민망하지만 기분 좋다는 미소가 몽글몽글 피어났다. 방학이 시작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아들과 꽁냥꽁냥 붕어 몇 마리 더 구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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