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점심으로 순대를 먹고 싶다고 해서 산책 삼아 같이 순대를 사러 갔다 오기로 했다. 나는 에코백에 뚜껑 있는 유리그릇을 챙겼다.
"엄마 이건 왜 가져가는 거예요?"
아들이 물었다.
"여기에 순대를 담아 오려고."
"굳이 그릇을 가져갈 필요가 있을까요?"
아들은 참 인생 번거롭게 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유리그릇을 가져가서 순대를 담아오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어.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일회용품들이 많으니까 꼭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줄여보려고."
"아~네~!"
아들은 이해했다는 말투로 답했다. 요즘 학교에서도 환경에 대한 수업을 많이 해서 금방 이해하는 것 같았다.
분식집에 가기 전에 나는 마트에 먼저 들렀다. 아들은 이번에도 그냥 지나지 않고 물었다.
"엄마 순대를 사러 가는데 왜 마트에 온 거예요?"
"떡볶이는 여기서 사려고."
"왜요? 분식집에도 떡볶이 있는데."
"그렇긴 한데 분식집 떡볶이는 만들어서 계속 놔두잖아. 분식집이 차가 많이 지나가는 대로변인데 뚜껑 없이 계속 놔두면 먼지도 앉고 사람들도 많이 다니는 길이라서 엄마는 신경 쓰이더라고."
"엄마 그런 이유라면 왜 순대는 분식집에서 사는 거예요. 순대도 만들어 놓잖아요."
아들이 끈질기게 따져 물었다. 나는 순대는 식거나 굳는 것을 막기 위해 뚜껑을 덮어둔다고 했다. 아들은 자기가 봤는데 뚜껑 안 덮어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분식집은 떡볶이 뚜껑을 덮어둔다고 했다. 나는 아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하고 반조리 떡볶이를 사서 마트를 나왔다. 아들은 마트 근처 분식집까지 가는 동안에도 계속 엄마가 틀렸다고 말했다. 나는 아들의 말이 맞다면 떡볶이도 분식집에서 사기로 아들과 약속했다. 당연히 아들의 말이 틀리고 내 말이 맞았다. 나는 아들에게 보란 듯이 유리그릇에 순대를 담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급하게 떡볶이를 만들었다. 아들은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부엌을 어슬렁거렸다. 떡볶이가 다 만들어질 무렵 아들은 뭔가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 형사처럼 다급하게 말했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환경 생각한다면서 이건 아니지 않아요?"
"왜?"
"순대를 사면 플라스틱 하나만 사용하면 되는데도 그릇을 가져갔는데 떡볶이를 마트에서 사서 만드니까 쓰레기가 더 많이 나왔는데요. 이럴 거면 굳이 순대를 그릇에 담아올 필요가 있었을까요? 떡볶이 쓰레기가 더 엄청나네요"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만든 반조리 떡볶이는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지가 5~6개나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오늘 점심은 환경을 위해서는 부적절했던 것 같았다.
"또미야 네 말이 맞아. 그런데 엄마는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을 절대 쓰지 않겠다는 게 아니야. 내가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겠다는 거지. 네가 먹을 음식인데 찻길에 오래 노출된 떡볶이를 먹이는 것보다는 이게 최선이라고 엄마 나름 생각한 거야."
"아~ 네네!"
아들의 대답은 긍정이 아니라 이해는 안 되지만 엄마 생각이 정 그렇다면 인정할게요. 정도의 말투였다. 우리는 그렇게 적당히 환경을 생각하고 또 적당히 환경을 파괴하면서 점심을 먹었다. 물론 떡볶이를 아예 집에서 조리했다면 아예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적당한 게으름까지 더해진 난장의 점심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약간, 아들 생각하는 마음과 나의 게으름이 가득 담긴 점심
나는 제로 웨이스트가 아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설거지 바를 사기도 했고, 장바구니를 열심히 들고 다니기도 한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간단하게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싶을 때도 많지만 최대한 자제한다. 지난겨울에 해물찜을 오랜만에 시켰는데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같이 배달되어 왔다. 그 후로는 플라스틱 용기가 최대한 적은 치킨이나 피자 정도를 한 달에 한두 번 시켜먹고 다른 배달은 시키지 않는 편이다. 세상 편리한 밀키트도 나오는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한번 사보고 다시 사기가 망설여졌다. 일회용 봉지를 어쩔 수 없이 사용할 때는 여러 번 씻어서 사용한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환경을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다. 나는 게으른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만큼은 노력하고, 사용해야 할 때는 최소한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런데 아들이 보기에는 내 노력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해도 오늘의 나는 아들 앞에서 논리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 환경을 위해서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사용하지 않는 분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면 나는 자꾸 작아진다. 내가 그분들처럼 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실천하려고 한다. 아예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믿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