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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Dec 19. 2021

생일날 연탄을 나르는 아이

어제는 올 들어 가장 춥다고 했다. 아들과 남편은 아침을 서둘러 먹고 집을 나섰다. 몇 주 전에 미리 신청해둔 연탄봉사를 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겨울이면 아들과 남편은 연탄봉사를 하러 갔다. 나는 팔을 쓰는 일은 피해야 해서 연탄봉사에는 한 번도 함께 하지 못했다. 올해는 신청 가능한 날이 아들의 생일밖에 안 남아서 아들은 생일을 연탄봉사를 하면서 보내게 되었다. 아들에게 신청 전에 물어봤을 때 아들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날씨가 춥다는 말에 아들과 남편의 옷을 단단히 챙겨 입혔다. 귀마개와 모자, 장갑까지 무장해서 보냈다. 다행히 노동의 결과, 땀이 날만큼 더웠다는 말에 안도했다. 아들은 연탄을 나르면서 즐거웠다고 했다. 예전에는 한 사람씩 옆사람에게 전달하는 방식이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한 장씩 들고 나르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아들은 연탄을 들고 갈 때는 무거웠지만 빈손으로 다시 연탄을 가지러 갈 때는 힘들지 않아서 좋았다고 했다.


아들은 연탄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가 편하게 보일러를 틀어서 하는 난방과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아들은 연탄봉사를 통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나르기에 너무 많은 연탄, 값이 싸다고 하지만 연탄을 사기에도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온 아들의 얼굴은 밝았다.


시골에서는 전기보일러나 장작으로 난방을 하지만 나도 연탄을 땐 적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별거를 했을 때였다. 나는 동생과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외할머니가 사는 곳으로 가면서 엄마는 가서 자리 잡으면 데려가겠다면서 방을 구해 주었다. 엄마의 친구라는 분 집이었다. 엄마의 친구였지만 남보다 못한 그 아줌마에 대한 쓰린 기억만 남긴 자취생활이었다. 그때 갓 고등학생이 된 나는 번개탄에 불을 붙여서 연탄에 처음으로 불을 붙여봤다. 처음에는 연탄에 불이 붙지 않아서 고생도 하고 번개탄 연기에 눈물 콧물 흘렸더랬다. 한밤중에 연탄불을 갈고 나면 매캐하고 쎄한 연탄 냄새 때문에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연탄가스 중독 없이 어린 나와 동생이 자취생활을 마친 것이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고 없이 살아남게 해 준 것만으로도 욕심 많고 매정했던 엄마의 친구분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연탄처럼 산다는 일은 매캐하지만 따뜻한 것, 고되지만 감사할 일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살아보니 알 것 같다.


추운 곳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나는 미역국과 잡채로 생일상을 차렸다. 미역국을 좋아하는 아들은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연탄봉사를 다녀온 위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연탄을 나를 때의 무게와 그 무게만큼 가벼웠던 마음을 나와 나누었다. 생일날 게임 마음껏 해달라고 해도 들어줬을 텐데 연탄봉사라니. 그래도 즐거웠다고 말하는 아들이 그저 대견하고 고맙다.


돌아오는 길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보고 아들은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생일날에 눈이 펑펑 내리니까 생일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같다고 했다. 마치 하늘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하늘이 정말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12살의 생일을 누군가를 위해 추위와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아이에게 하늘이 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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