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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Dec 19. 2021

눈이 왔다. 아이들이 돌아왔다.

어제 오후부터 밤늦도록 예쁘게 눈이 내렸다. 자려고 누웠는데 눈이 내리고 있어서인지 커튼 사이로 보이는 밖이 환했다. 내다보니 가로등 아래 얌전하게 굵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예쁘게 내려서 잠들기 아까운 밤이었다. 누웠다가도 몇 번을 다시 일어나 창밖을 보고 또 봤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거실 창 가득 눈이 쌓인 산 풍경이 예술이었다. 일 년 내내 예쁜 산이지만 눈이 내리면 정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인 풍경이다. 아들은 얼른 밖에 나가고 싶다며 좋아했다. 아침을 먹자마자 아들은 썰매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먼저 나온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경사가 있는 아파트는 눈이 오면 커다란 눈썰매장이 된다. 여기저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이 오니까 아이들이 돌아왔다.


 올해는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유난히 없었다. 어린이집 하교시간에 잠깐 그네를 타는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적막할 정도로 아파트가 조용했다. 얼마 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왔다. 가끔 만나서 놀던 아이들이 더 이상 아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연락을 해도 놀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아이도 점점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않고 있던 참이다. 아파트는 추위와 함께 움직이지 않고 웅크린 거대한 생명체가 된 것 같았다.

 

오늘은 달랐다. 여기저기 아이들이 썰매를 끌고 다니고 있었다.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은 진지했다. 오리 군단을 만드는 아이는 잠옷에 롱 패딩만 걸치고도 추위를 잊은 듯 한참을 오리모양 집게를 움직였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신이 났다. 아파트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살아 움직였다. 아들도 썰매를 탔다. 눈사람을 만들었다. 아빠에게 눈을 던졌다. 마스크에 가려진 아들의 얼굴이 빨개졌다.


썰매를 끌고 나온 아이의 친구와 우연히 만났다. 두 아이는 놀이터에서 썰매를 끌면서 놀았다. 시소도 타고 눈싸움도 하면서 놀았다. 아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썰매를 타는 아이들 소리가 왁자지껄했다. 아파트가 웃고 있었다. 눈이 오지 않았다면 이불속에서 뒹굴 일요일 아침, 아파트는 오늘도 조용했을 것이다. 뽀드득 소리가 나는 눈을 밟으면서 걸었다. 한참을 걸으면서 보석처럼 예쁘게 쌓인 눈을 보고 또 봤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나무에 쌓인 눈, 눈밭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림같이 예쁜 하루였다.


내일도 오늘처럼 축복 같은 하루였으면 좋겠다. 이제 코로나도 걱정도 없는 하루하루였으면 좋겠다. 아파트에 내일도 오늘 같은 웃음소리가 들렸으면 좋겠다. 더 이상 숨죽이지 않는 아파트였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에 아파트가 다시 잠들까 봐 미리 걱정이 된다. 오후가 되면서 빠르게 녹는 눈이 아까웠다. 눈이 녹으면 아이들이 다시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내일도 모레도 아이들은 신나고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다.


내일부터 아이의 학교는 다시 3분의 2 등교로 바뀐다. 방학까지 열흘 남짓 남았다. 아이는 언제 다시 친구를 만나서 신나게 놀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겁을 먹었다. 얼마 전에 아들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놀자고 전화를 했다. 그 아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확진자가 나온 반이 아니라고 하고서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거짓말을 하고 괴로웠는지 친구는 다시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사실은 자기 반에서 확진자 나와서 격리 중이라고 했다. 아들은 집에서 격리 중인 친구의 집 문고리에 선물과 함께 힘내라는 편지를 걸어두고 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에 아이들이 겁먹고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당장 코로나가 끝난다고 해도 아이들의 마음이 예전처럼 편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눈이 오지 않아도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소리를 매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눈이 내렸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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