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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03. 2022

되로 주고 말로 받은 크리스마스

아이는 매년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아빠와 산타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아이가 일 년 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러 가는 것이다. 아이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는 것도 좋지만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4년 전이다. 시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옷을 입고 길에서 사탕을 나누는 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 행사에 참가했다. 처음에는 산타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아들은 아주 좋아했다. 그때만 해도 어렸던 아들은 산타할아버지 코스프레가 마냥 신났던 것이다.


시에서 준비한 사탕을 빨간 산타주머니에서 꺼내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주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작은 사탕 하나에, 산타옷을 입은 모르는 사람의 인사에 즐거워했다.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즐거웠다. 낮에 시작했던 행사는 밤까지 이어졌다. 나누어줄 사탕은 많았고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배가 고파서 산타옷을 입은 우리는 근처 죽집에서 죽을 먹었다. 죽집 사장님도 손님들도 즐거워했다. 우리는 죽을 먹고 나오면서 사장님과 손님들에게도 사탕을 주었다.


그때 아이는 아주 즐거웠던 모양이다. 그 후에는 그 행사가 없었지만 아들이 원해서 아들의 친한 친구들의 선물과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나눌 사탕을 준비했다. 그리고 산타옷을 챙겨 입고 남편과 아들은 집을 나선다. 어느 해는 친구의 집이 너무 멀어서 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처음 가 보는 친구의 집을 찾아 길을 헤매기도 했다. 올해는 친구의 집이 거의 1킬로미터 거리에 있어서 한참을 걸어갔다고 했다. 그래도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더 즐거워했다. 매년 남편과 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볼이 빨개져서 돌아왔다.

산타가 되어 출동하는 아들과 아빠, 그리고 아들이 직접 포장한 선물
코로나라 싫어할 줄 알았는데 한통 산 사탕이 부족해서 편의점에서 더 사야 했다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파트 경비실에도 산타가 찾아갔다. 작은 선물이지만 경비아저씨는 환하게 웃으셨다고 한다. 아파트 근처 파출소에도 낯선 방문객이 찾아갔다. 힘센 순경 아저씨도 어린 산타 앞에서는 나긋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우리 앞집에는 까칠한 여중생이 살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도 늘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 여중생이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는 소리는 복도를 흔들리게 하는 소리였다. 그런데 산타옷을 입고 엘리베이터에 탄 아들이 건넨 사탕을 받은 여중생이 활짝 웃었다면서 남편과 아들은 신기해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도 일주일이 지난 31일 밤의 일이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연 남편이 급하게 아들을 불렀다. 아들이 선물을 주러 갔던 친구가 아빠와 함께 찾아온 것이다. 손에는 커다란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친구가 답례로 준 케이크를 받고 감사하면서도 미안했다. 우리는 아들의 용돈에서 부담 없이 선물을 골라서 줬는데 답례로 받은 선물은 너무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1킬로미터를 걸어서 선물을 주고 왔더니 크리스마스 당일날 이렇게 더 큰 선물로 돌아왔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열려고 봤더니 거기에는 친구가 쓴 카드와 함께 밀리의 서재 1년 구독권이 들어있었다. 남편과 나는 너무 놀라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이건 너무 과한 선물이었다. 아들의 용돈으로 산 만원도 안 되는 선물, 고사리 손으로 귀엽게 포장한 선물이 거대한 선물 덩어리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친구도 크리스마스 당일날 선물을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아들이 선물한 것보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선물이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나는 우리가 보낸 선물에 비해 너무 큰 선물을 그냥 받아도 될까 고민했다. 다시 뭐라도 보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다시 또 친구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망설였다. 한참 의논 끝에 그냥 감사히 받기로 했다. 그리고 밀리의 서재는 지금 우리 가족의 도서관이 되었다. 아들은 좋아하는 책 신간도 있다고 좋아했다. 남편은 운전하면서 오디오북을 들을 생각에 행복해했다. 나는 반납이 늦어 대출정지로 빌릴 수 없었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는 친구였던 그 아이는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옷을 입고 나타난 친구가 반갑고 고마웠던 모양이다. 반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자가격리 중인 그 친구에게 아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힘내'라는 편지와 함께 심심할 때 놀 수 있는 장난감을 문에 걸어주고 오기도 했다. 아마 그 친구도 매년 찾아오는 산타 친구에게, 자가격리 중인 자신을 응원해 준 친구에게 커다란 선물이 되고 싶었던 것이리라. 두 아이의 우정을 지켜보는 나는 흐뭇하고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난다. 지금을 살고 있는 모든 어린이들이 새해에는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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