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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Dec 10. 2021

엄마 멈추세요!

어젯밤이었다. 다른 날보다 늦게 잠자리에 든 아들이 내일 학교 준비물로 사인펜이 필요하다고 했다. 얼마 전에 끝이 망가지고 색도 나오지 않아 사인펜을 버린 것이 생각났다. 나는 혹시 어디 굴러다니는 사인펜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아무리 찾아도 한 자루도 보이지 않았다. 아들에게 혹시 사인펜이 아니라 색연필은 안 되겠냐고 물었다. 아들은 트리를 그려야 하는데 사인펜이 색이 진해서 예쁘다고 했다. 나는 다시 사인펜을 찾아 집을 뒤졌다. 색연필은 3~4개, 크레파스는 5~6개가 있는데 유독 사인펜은 보이지 않았다.

"아들아 색연필로 색칠을 해도 이쁠 것 같은데. 크레파스도 색깔이 진하고 이쁘지 않을까?"

"사인펜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정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아들은 보통 내가 이렇게 말하면 바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런 아들이 계속 사인펜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정말 필요한 것이다. 거의 열 시가 된 시간에 사인펜을 사러 가자니 귀찮았다. 아들에게 내일 학교에 가면서 사자고 하고 일단 아들을 재웠다.


"엄마 그래서 사인펜은 가져갈 수 있는 건가요?"

아침에 아들이 일어나자마자 물었다.

"그럼. 학교 가면서 사면돼."

"사인펜 사서 가면 학교에 늦을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들은 사인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평소보다 10분 일찍 아침을 먹었다. 아들이 혼자 문방구에 가서 사인펜을 사면 되지만 나도 근처에 볼일도 있고 해서 우리는 같이 가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아들의 등굣길에 함께 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고, 얼굴에 닿는 공기가 오히려 상쾌했다.


"엄마 멈추세요!"

갑자기 아들이 팔로 나를 막으면서 말했다. 횡단보도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자동차가 오고 있었다. 나도 그 차를 봤기 때문에 그냥 한 발짝 앞으로 간 것뿐이었다.

"엄마 설마 차가 오는데 건너려고 했던 건 아니죠?"

"응? 아니야. 그냥 한 발만 간 거였어."

"다행이네요. 큰일 날뻔했어요."

아들의 말을 듣고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내 몸을 막아서던 아들의 든든했던 팔이 생각났다. 지금 아들이 나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인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내가 항상 아들의 보호자였는데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를 지켜주려고 하나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훌쩍 자란 아들이 서운하기도 했다. 이제는 내가 아들에게 든든한 보호자가 아닌 건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인펜을 사고 학교 앞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아들이 3학년 때까지 나는 매일 아들의 등하교를 함께 했다. 갓 입학한 아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대견하기도 하고, 낯선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애기애기했던 아들이 어느새 자라서 엄마를 걱정해주다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 든든함, 아이가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나보다 아직 키가 작지만 엄마는 내가 지키겠다는 아들에게 느끼는 든든함인가 보다.


"설마 학교 안까지 같이 갈 생각은 아니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아들이 말했다.

"아니야. 신호 바뀌면 엄마는 갈 거야."

신호가 바뀌고 아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학교에 가는 것이 신난 것처럼 폴짝폴짝 뛰어갔다. 학교를 향해  뛰어가는 아들을 한참 지켜봤다. 아들은 학교 안으로 사라졌지만 나는 아들이 들어간 문을 바라봤다. 아들의 신이 난 뒷모습,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럴 때 아들은 또 애기애기했다. 내가 지켜줘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보다. 그냥 학교에 뛰어가는 뒷모습만으로 마냥 귀여운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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