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한 아들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서울 근처의 시골마을에 사는 우리에게 서울에 가는 것이 여행 같을 때가 있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롯데타워 옆을 지나 우리는 서점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교보문고 잠실점이다. 주차를 하고 서점으로 가면서 묘하게 떨렸다. 아들과 가끔 도서관이 아닌 서점에 가서 책을 빌리지 않고 살 때도 있지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가는 서점은 어느 여행보다 설레고 긴장된 공간이었다.
제목을 검색하고 진열된 장소에서 책을 찾았다. 한참만에 드디어 찾았다. 남편의 책이 서점에 있다. 몇 번을 읽은 책을 뽑아서 처음 보는 것처럼 펼쳐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남편한테 책 옆에 서라고 하고 사진, 아들과 함께 또 사진.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기분이 묘했다. 드디어 남편이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남편과 나는 결혼 전부터 작가를 꿈꾸었다. 우리는 함께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글을 썼다. 언젠가는 우리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되기를 바라면서 쓰고 실패하고 다시 썼다. 공모전에서 턱걸이로 떨어졌을 때 헐값에 넘기라는 전화에 분개하면서 꼭 작가가 되겠다던 남편이었다. 꼭 영화로 만들겠다는 말에 각색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좁은 방에서 합숙하면서 글만 쓰던 시절도 있었다.
아들과 보낸 특별한 시간들을 글로 옮긴 남편의 책은 영화도 소설도 아니지만 아주 특별한 드라마를 담고 있다. 남편은 아들의 아빠라는 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아빠의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했다. 남편의 책은 아들을 키우고 놀고 책을 읽으면서 보낸 매일을 담은 것이다. 그렇게 남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이 서점에 있다. 우리는 누군가 꼭 이 책을 사주기를 바라면서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두고 서점을 나왔다. 우리 세 사람 모두, 아니 나는 여전히 감격스러워서 벅차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우리 가족의 독서회를 주제로 쓴 책을 남편이 출판사에 투고했을 때 대부분 정중한 거절의 메일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중 두 개의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메일을 보내왔고 결국 한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기로 결정했다. 회의를 하면서 출판사 대표님께서 아들이 쓴 독후감을 읽고 출판을 결정했다는 농담을 하셨다고 했다. 남편의 출판! 아들이 다 했네! 나는 남편을 놀려먹기도 했다.
나는 한 번도 출판사에 글을 투고한 적이 없었다. 수없이 공모전에서 떨어지면서도 공모전만 고집한 것은 거절 메일이 두려워서였다. 공모전은 당선되지 않으면 아무 연락이 없으니까 직접적인 거절을 당했을 때의 쓰라린 고통은 없다. 남편은 백개가 넘는 거절 메일을, 그 쓰린 고통을 감내할 용기를 가진 덕분에 당당히 책을 출판하자는 메일을 받았다. 남편은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역시 무슨 일을 하든 고통을 감내할 용기를 가진 자만이 달콤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남편을 통해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남편의 책이 엄청 많이 팔려서 2쇄 3쇄를 찍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특별한 독서 이야기, 그 특별한 드라마가 서점에 진열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 뿌듯하고 행복하다. 누군가가 그 책을 사 갔으면 좋겠지만 책은 오늘도 서점에서 다소곳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가족을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어느 가족이 그 책을 사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책을 읽고 대화하면서 눈이 오는 겨울 저녁을 따뜻하게 보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