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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에 생일은 무슨?

by 써니

수요일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 중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어제보다 더한 통증에 놀라긴 하지만 여전히 그냥 감기네 하는 수준이다. 나는 원래 집콕을 좋아해서 일이 주 정도는 현관 밖을 안 나가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자가격리 일주일은 나에게 아주 가볍다. 코로나 덕분(?)에 일도 안 하고 일당을 받게 됐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인후통이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수준이었지만 여전히 백신 1차 접종 후에 앓았던 오한보다는 가벼웠다. 이 정도면 백신보다 코로나인가 하는 철없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침도 안 넘어가게 아픈 목에 밥을 욱여넣었다. 약은 먹어야 하겠기에. 밥을 먹다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오늘 내 생일이네


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픽 하고 나온 말이었다. 오늘은 나의 46번째 생일이다. 뭐 코로나가 우리나라 건국이래 최고치를 달리는 시점에 생일이 뭐 별거겠나 싶어서 피식! 하고 생일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바닥으로 소리 없이 떨어지는 생일 글자는 데굴 굴러서 아들과 남편에게 갔나 보다.


6학년 아들이 수업 시간 짬짬이 써서 준 생일카드

아들이 직접 그린 축하카드를 줬다. 아들은 코로나 자가격리로 줌 수업을 하고 있다. 아들의 반에서 3명은 집에서 줌 수업을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등교를 한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줌으로 자가격리 중인 아이들에게 교실의 모습과 칠판을 보여주면서 수업을 하고 있다. 아들은 쉬는 시간에 카드를 만들어서 엄마한테 축하의 말을 썼다고 한다. 카드에 담긴 아들의 진심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전해졌다.


오후에 남편은 배달앱에서 조각 케이크를 시키고 역시 배달앱에서 꽃을 주문했다. 결혼 1주년 이후 처음 받아보는 꽃이다. 나는 예전부터 꽃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은 오늘도 망설이다가 코로나 격리라 마땅히 해 줄 게 없어서 주문한 꽃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미, 나는 장미를 아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들꽃을 닮은 안개꽃도 있다. 나는 이상하게 아주 화려한 장미와 아주 작고 앙증맞아서 눈에 띄지도 않는 별꽃 같은 들꽃을 좋아한다. 장미를 보고 있으면 어쩜 이렇게 꽃잎 한 장 한 장 정성을 들여 피었을까 싶어서 감탄을 한다. 들꽃을 보면 어쩜 이리 외진 곳에 눈에 뜨지도 않게 작은 꽃잎이 맺혔을까 싶어서 대견하다.

꽃 선물이 좋아지는 46살이다.


봄소식이 들리면서 나도 요즘 꽃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노란 프리지어 꽃을 사서 책상 위에 놓아두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 장미도 사고 싶었다. 그런데 곧 시들 텐데 뭐 하면서 막상 주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사준 꽃이 어여쁘고 어여뻤다. 남편이 생일인데 그래도 케이크는 사야지 했을 때는 코로나 시국에 생일은 무슨? 됐어. 했는데 막상 작은 조각 케이크와 예쁜 꽃을 보니까 마음에 봄이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코로나 시국에도 생일은 생일이다. 역시 코로나보다 사람이 세다. 아니 사랑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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