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총이 있어서 선생님을 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늘 복지센터에서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내게 한 말이다. 그 아이는 나를 보면 선생님이 제일 싫어요. 책이 싫어요. 선생님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인사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얼굴을 볼 때마다 그렇게 말하니 무시하려고 하지만 마음에 미세하게 상처가 생긴다. 하루는 다른 돌봄 선생님한테 말했다.
"선생님 지후가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대요. 내가 정말 싫은가 봐요."
"선생님 그런 말에 신경 쓰지 마세요. 저한테는 총만 있으면 선생님을 쏘고 싶다고 하니까."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초등학교 2학년, 아홉 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니 그 아이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 아이는 왜 모든 선생님들,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상처 주는 말만 하는 것일까? 그 아이의 가정에서의 생활을 짐작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요즘 아이들은 게임이나 폭력적인 영상을 많이 보기 때문에 그렇게 폭력적으로 말하는 것일까? 센터에 갈 때마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 것일 좋은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루는 돌봄 선생님의 얼굴이 출근할 때부터 유독 지쳐 보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돌봄 선생님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어젯밤에 지후 꿈을 꿨어요. 그런데 꿈 이야기를 하기도 무서워요. 꿈 때문에 깨서 잠을 설쳤더니 피곤하고 힘들고 마음도 불편하네요."
돌봄 선생님이 말로 표현하기도 끔찍한 꿈이란 무엇이었을까? 선생님은 하루 종일 지쳐 보였다. 그렇게 센터의 사회복지사 선생님, 돌봄 선생님을 비롯한 센터장님 조차 혀를 내두르게 하는 지후의 말을 나는 무시하려고, 듣지 않았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 아이의 총구가 나를 겨누기 시작했다. 지후는 총이 없어서 나를 쏠 수 없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하지만 지후는 모를 것이다. 이미 지후는 나를 쏘고, 돌봄 선생님을 쏘고,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쏘고, 많은 아이들을 향해 총을 쏘고 있다. 지후의 말은 아이들과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싸움을 말리는 선생님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무기가 된다. 우리 중 누구도 그 아이의 총알을 피할 수가 없다.
나는 책을 읽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계약한 일 년이라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만이라도 속 시원하게 마음에 있는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지후는, 아니 많은 아이들은 독서, 책이라는 단어만으로 나를 비호감으로 여겼다. 이제는 그래도 아이들 중에 나와 책을 읽는 시간을, 나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아이도 생겼다. 다른 책은 싫은데 내가 선정한 책들은 재미있다고 하는 아이도 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집에서, 학교에서 겪은 일에 대해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후는 마음을 닫았고,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나를 아프게 할 무기로만 쓰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이 아이와 잠자리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따뜻하고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지후는 나와 책을 읽을 때 1분만 읽을 거예요.라고 한다. 그리고 소리 내어 1에서 60까지를 센다. 그리고는 나간다. 이제 나는 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아들에게도 책을 강요한 적이 없다. 아이가 책을 읽고 싶을 때만 읽어줬다. 아이가 만화책을 많이 읽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읽었으면 하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그리고 아이가 읽고 싶어 하지 않으면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해도 반납했다. 나는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이 싫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읽기 싫은 책을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가 책을 읽는 시간을 즐기기를 원한다. 즐겁게 읽어도 좋은 책들이 많아서 좋은 세상이다. 그런 내가 센터에서는 책을 강요하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괴물 선생님이 되었다.
센터에는 정말 책이 많다. 책꽂이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책들에 아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지난 네 달 동안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 읽는 아이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센터장님은 독서와 미술,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미술과 독서, 바이올린이 일주일에 세 번씩 아이들에게 제공된다. 얼마나 귀하고 값진 시간인지 아이들은 모르고 있다. 단지 놀고 싶은 시간을 방해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센터에 계시는 선생님들과 센터장님, 사회복지사 분들은 모두 아이들을 애정으로 돌보고 있다. 그 아이들의 센터 밖의 생활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센터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인지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이곳조차 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아이들은 모르고 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선생님을 향해 총을 쏘고 싶다고, 선생님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지후가 정말 나를, 다른 선생님들을 총으로 쏠 생각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아이는 그냥 말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런 말들이 습관이 된 것이다. 다른 말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선생님들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관심이고, 그것이 대화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가 그 아이에게 따뜻하고 예쁜 말을 가르칠 수 있을까? 이미 마음에 총 맞은 나는 밤이 깊도록 마음에 박힌 총알을 빼고 있다. 깊이 박히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상처는 상처라 아픈가 보다. 그 아이가 지금은 총을 쏘지 않고 편히 잠들었으면 좋겠다. 누구의 꿈에서도 그 아이가 총을 쏘지 않기를 바란다.
*내용에 등장하는 '지후'는 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