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토요일에 엄마 아빠랑 김동식 작가님 북토크에 갈래?"
나는 망설이면서 말했다. 아들은 요즘 어디 나가자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 중1이다. 짧은 방학을 오로지 집에서만 보내기로 작정한 듯 집에서만 뒹굴뒹굴 굴러다니는 중이다. 아니 굴러다닌다면 차라리 운동이라도 될 텐데 아들은 그냥 머물러 있다. 마치 가구처럼.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느냐 책을 들고 있으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런 아들에게 외출을 얘기하는 것은 사실 조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김동식 작가를 좋아하는 아들이니까 혹시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물어봤다. 역시나가 역시나였다. 아들은 평소와 다르게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작가님께 드릴 편지까지 썼다.
작가님을 만난다는 설렘에 우리는 평소보다 일찍 북토크 장소에 도착했다. 작고 예쁜 서점이었다. 서점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솔직히 깜짝 놀랐다. 김동식 작가님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북토크 시작 20분 전이었는데도 작가님이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북토크 시작직전에 서점으로 들어오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일찍 작가님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 같아서는 작가님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게 맨 앞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북토크에 참석하는 인원이 20명이라 작가님이 가까이 보였지만 나중에는 후회했다. 맨 앞자리에 앉을걸.
시작하기 전에 작가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셔서 좋았다. 10시 30분, 안녕하세요 북토크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작가님의 말과 함께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인사말이 끝났을 때 조금 늦게 도착한 분들이 있었다. 그러자 작가님이 마치 처음이라는 듯 다시 안녕하세요 북토크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다시 인사를 하셨다. 늦게 도착한 분들을 위해 다시 인사를 하신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말 따뜻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 북토크에서는 작가님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작가님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다. 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냈던 십 대 시절부터, 주물공장에서 하루 종일 뜨거운 용광로 쇳물을 부으면서 지퍼고리를 만들던 시절의 작가님의 이야기였다. 작가님의 삶은 뜨거운 용광로만큼이나 녹록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작가님은 자신을 잃지 않고 묵묵히 인생을 살아냈다. 그 삶의 시간이 고스란히 작가님의 목소리와 몸짓, 그리고 얼굴에 나타났다.
작가님은 오늘이 있기까지 세 가지가 필요했다고 말씀하셨다. 운과 꾸준함, 그리고 좋은 태도였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작가님이 운이 좋았다는 말을 할 때 놀랐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고 많이 반성했다.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건빵으로만 버틴 시간들, 그리고 가난한 자신을 사기 친 사람들과 주물공장에서의 10년을 어떻게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성공한 작가가 되기까지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성공이라는 결과가 주어졌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가령 성공한다고 해도 그 시간 동안 겪었을 아픔이나 상처들을 겪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 작가님은 정말 천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작가님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재능을, 성공을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의 성공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힘든 인생을 산다고, 다른 사람들이 응원해 준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꾸준히 한다고 해도 성공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김동식 작가님의 성공은 처음부터 작가님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역시 천재였나, 천재가 답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는 2시간 동안 작가님은 정말 마음까지 이곳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작가님은 달랐다. 처음 작가님의 글에 댓글로 응원해 주던 그분들을 대하듯 오늘 만난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열고 대해 주셨다. 모든 질문에 마음으로 답해주셨다. 시간을 핑계로 질문을 차단하지 않고 마지막 한 분의 질문까지 들어주셨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작가님의 얼굴은 온통 웃음이었다. 나는 작가님의 책을 아주 좋아한다. 우리 가족 모두 작가님의 책을 좋아해서 차를 타고 갈 때는 밀리의 서재를 들으면서 토론을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오늘은 작가님의 책이 아니라 작가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글을 남긴다. 김동식 작가님은 얼굴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 속에 더 아름다운 무언가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