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주차정산을 하다가 한동안 멍해졌다. 차번호를 누르는데 정산기가 자꾸 번호가 틀렸다는 것이다. 분명 나는 정확한 번호를 눌렀는데 왜 이러지 하면서 다시 차번호를 눌렀다. 또 틀렸단다. 그런 차가 주차장에 없단다. 그럼 내차는 지금 어디 있다는 말인가. 기계야 제대로 확인한 거 맞냐? 나는 죄 없는 기계를 탓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는 마음으로 다시 차번호를 눌렀다. 또 아니란다. 뭐야? 진짜 왜 이래?
그러다가 주차정산기 앞에서 얼굴이 붉어졌다. 만약 이 기계가 감정이 있다면 나를 비웃었을 것이다. 내가 기계를 탓하면서 일 똑바로 하는 거 맞냐며 누른 것은 내 전화번로 뒷 4자리였다. 다행히 이 기계는 나를 비웃지는 않는 것 같았다. 차번호를 누르자 친절하게 정산을 해주고 감사하다고 한다. 부끄러움에 서둘러 정산을 마치고 차 시동을 걸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솔직히 기계한테 쪽팔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 스스로에게 쪽팔렸다.
주차장을 벗어나면서 내가 왜 기계 탓을 하면서 내가 실수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마 그것은 내 무의식, 저 밑바닥에 깔려있는 나쁜 본성 때문일 것이다. 신혼시절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이 가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왜 자꾸 다른 사람 핑계를 대냐고. 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을 하느냐고. 그러면 나는 그 싸움에서는 무조건 지고 말았다. 내 가장 약한 부분, 내 가장 비겁한 부분을 들킨 순간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나한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결국 나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백하게 상대가 잘못한 일까지도 그 일의 시작에서 내가 했던 작은 선택이나 행동이 원인이 되어 일이 커진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화가 나서 상대를 탓하거나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생기는지 비관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도 행동도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고 나를 조심시켰다. 그래도 늘 실수는 있었고 그럴 때는 어김없이 원인을 내가 아닌 상대에서 찾는 버릇이 나왔다.
다행히 요즘은 남편과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서인지, 아니면 내 나쁜 버릇을 많이 고친 것인지 남편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내 안에는 남 탓하는 내가 살고 있다. 왜 나는 자꾸 남 탓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변명하는 나를 보면 속으로 그런 내가 싫은데도 나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바꾸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부끄러워도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바로 그것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다.
남 탓하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나는 불리할 때는 먼저 털어놓는다.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도 잘못을 인정하고 나면, 그 잘못에 대한 훈계나 충고를 듣는 고통을 견디기만 하면 그 후에는 마음이 후련해진다. 아이들과 독서수업을 하다가 학생의 얼굴을 손으로 만진 일이 있었다. 이마를 손으로 살짝 만진 것이다. 나와 책 읽는 시간을 많이 좋아하고, 나한테 살갑게 굴던 아이였다. 수업에 들어오면서 그 아이가 내 책을 살짝 던지기도 하고 장난을 많이 치는 상황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자기를 때렸다며 화를 냈다. 나는 사실 황당했다. 그 상황을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4명의 여자 아이들이 시끌벅적 장난치면서 교실로 들어왔고, 아이들이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상황이었다.
숨 막히게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센터에 사실을 알렸다. 학생들이 많은 센터에 특성상 작은 일도 보고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센터에 사실을 알리면서 내가 변명할 많은 말들이 있음에도 원인은 나였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구구절절 나를 변명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하기 싫은 일이라 몸이 긴장하고 말이 두서없이 나왔다. 그래도 내가 조금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성장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오래전 나를 돌아보게 해 주었던 남편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때는 아팠지만 나는 나의 진짜 모습, 부끄러워도 받아들이고 다듬어야 할 부분을 남편에게 배웠다. 그러고 보면 세상일에 우연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신혼시절의 치열한 싸움이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자라게 하는 것을 보면. 항상 잘잘못을 정확하게 따져주는 남편이 차갑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더 많은 시간 동안 나를 위로하고 다시 실수하지 않게 하려는 남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부부로 시간을 쌓은 만큼 나의 많은 부분에 남편의 마음과 지혜도 쌓이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