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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18. 2024

주는 마음 받는 마음!

 학부모 독서모임 회원 중 한 분이 비즈로 만든 핸드폰줄을 회원들 모두에게 선물했다. 뽑기로 가져갔는데도 한 사람 한 사람 딱 맞는 색깔로 선물이 돌아갔다. 받는 사람은 하나를 받겠지만 만들어주는 사람은 여섯 명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모두들 고맙다는 말을 하고 고맙게 선물을 받았다. 다음 모임에서 한 분이 선물한 분에게 어리광 섞인 말투로 투정을 부렸다. 고리 부분이 끊어졌다며 A/S를 해달라는 것이다. 선물한 분은 자기보다 열 살은 많은 분의 투정에 환하게 웃으면서 A/S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다시 예쁘게 만든 핸드폰줄을 받은 그분은 카톡 프로필 사진을 새로 받은 핸드폰줄로 바꿔놓았다. 자칫 무례하거나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귀여운 투정을 부린 그분은 선물이 자기의 마음에 쏙 들기 때문에 고쳐서라도 간직하겠다는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 마음을 알고 다시 만들어 선물한 사람은 베풀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선물한 분의 요즘 취미는 비즈다. 비즈로 핸드폰 케이스를 꾸미기도 하고 핸드폰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취미에 돈도 많이 들고 작품은 나날이 늘어간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고 쌓아두면 아깝다. 그래서 선물했는데 앞에서는 고맙다고 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보다 잘 사용하고 있다고, 끊어진 것 고쳐서 사용할 만큼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울까? 그분은 주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분 좋게 투정하면서 고쳐달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분을 볼 때마다 참 마음이 따뜻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한 번은 그분이 마트에서 많이 샀다면서 음식을 나눠준 적이 있다. 같은 동에 사는 그분은 그렇게 가끔 우리 집 현관문에 먹거리를 걸어두고 갈 때가 있다. 받으면 꼭 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 꼬인 성품의 나는 다시 집에 있는 것 중 그나마 좋은 것을 그분의 집 현관에 걸어뒀다. 잠시 후에 카톡이 울렸다. 에구 나눠먹지도 못하겠네. 감사하모니카하게 먹을게요~~ 이렇게 톡이 왔다. 장난스럽게 고맙다고 말하는데도 그래서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분은 받을 때 충분히 고마움을 드러낸다. 그리고 줄 때는 또 넉넉한 마음까지 담아서 준다. 그분을 볼 때면 주는 마음을 헤아려서 받을 줄 아는 사람, 받을 마음을 알고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내가 가지지 못한 넉넉함이다.


오래전에 비가 많이 와서 수해를 입은 지역을 배우분이 방문해서 봉사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집이 물에 잠겨서 세간이 모두 흙탕물에 젖은 집이었다. 열두 살이나 열세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집에 혼자 있었다. 어른들은 직장에 나갔거나 물에 빠진 집을 정리하는 중인지 집에 없었다. 배우분이 그 아이의 점심을 준비하면서 도마는 없니? 국자는 없니? 자꾸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없다고 대답했다. 원래 없었는지 물에 잠겨서 쓸 수 없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꾸 아이에게 그런 걸 묻는 게 싫었다. 그 아이 입장에서 가난한 살림, 물에 잠겨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불편할 것 같았다. 한창 남들 시선 의식할 나이의 아이에게 자꾸 묻는 것이 불편해서 내가 텔레비전을 향해 화를 냈다. 왜 자꾸 저런 걸 물어봐. 사람 비참하게. 그러자 옆에서 같이 보던 남편이 저렇게 아이의 상황을 잘 보여줘야 후원금이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배우분이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나는 머리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차이구나. 늘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는 그 마음을 아는구나. 반면에 늘 받기만 해서 받는 것이 불편한 나는 대답하면서 목소리가 자꾸 작아지는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십 년도 넘은 프로그램이었는데도 나는 가끔 그 아이가 생각이 난다. 그 아이가 자라서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때도 있다. 제발 그때 받은 넉넉함을 기억해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받을 때도 진심을 담아 감사할 줄 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장마에 집이 잠겨서 낯선 사람의 온정에 기대야 했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아이처럼 나도 받을 때 목소리가 작아진다. 온 마음으로 감사하지 못한다. 내가 마음이 넉넉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서 마음까지 작아진다. 줄 때는 받는 사람의 마음으로 넉넉하게, 받을 때는 주는 사람의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감사히 받으면 된다는 것을 요즘 나는 배우고 있다. 노력으로 작은 내 마음이 넓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자라기를 바라면서 잘 받고 잘 주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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