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위를 봤다가 깜짝 놀랐다. 비둘기 네다섯 마리가 지하철 승강장위 난간에 앉아 있었다. 마치 반상회라도 하는 듯 진지했다. 지금까지 비둘기는 도시의 공원, 인도 위를 느리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역 천장을 지배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난간 위를 여기저기 곡예하듯 날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둘기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도 위를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승강장을 따라 위를 보면서 걸었다. 비둘기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면서 살고 있었다. 저위에서 뭘 먹고 사는지, 아니 지하철역 천장에는 왜 간 것인지 생각해 봤다. 먹을 것은 내려와서 구하더라도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으로 날았을 것이다. 도시의 비둘기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비둘기의 천적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비둘기는 원래 하늘을 나는 새가 맞다. 도시에 살면서 사람들의 음식을 먹으면서 몸이 커지면서 뒤뚱뒤뚱 걷는 비둘기가 된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비둘기들은 드디어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이다.
걷다가 보니 위에서 하얀 눈 같은 것이 떨어졌다. 한여름에 지하철역에 눈이라니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봤다. 지하철역 철망 같은 구조물에 하얀 비둘기 사체가 보였다. 거기서 깃털이 하나씩 날리다가 지나가는 아주머니의 옷에 붙었다. 그분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바쁘게 걸어갔다. 순간 정말 이곳은 비둘기가 지배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태어나는 비둘기들도 있을 것이고, 먹고 자고 사랑하다가 저 하얀 비둘기처럼 죽을 곳을 찾아 영원히 잠이 들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는 비둘기들은 원하지 않기 시작했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는 이제는 비위생적이고 귀찮은,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뒤지는 존재가 되었다. 걷다가 비둘기가 보이면 멀찍이 돌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들의 공간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길을 내고 지하철을 만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면서 살아갔을 비둘기들은 도시의 어둠과 더러움이 되었다. 나 역시 비둘기들을 반기지는 않았다. 심지어 내 머리 위에 죽어 있는 비둘기는 더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다. 내 머리 위에도 떨어졌을지 모르는 하얀 깃털이, 죽은 비둘기가 내뿜는 죽음이 두려웠다. 철도공사에 전화를 했다. 승강장 번호와 함께 죽은 비둘기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했다. 확인해 보겠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마침 도착한 지하철을 타고 그곳을 벗어났다. 하얀 비둘기가 사라져도 그곳에는 또 많은 비둘기들이 그들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위를 잘 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머리 위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니까 도시의 뚱뚱한 비둘기의 생명도 귀하게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마치 하수구의 쥐처럼, 어디서든 살아남는다는 바퀴벌레처럼 비둘기도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겨야 할까?
지하철역을 벗어나면서 지하철역 안에서 비둘기의 자리는 어디일까를 생각했다. 아니 지하철역에서 사람의 자리는 어디일까 생각했다. 우리가 우리의 자리라고 생각한 곳은 정말 우리의 자리일까? 사람들이 쫓아낸다고 해도 어디에도 가지 않고 그들의 자리를 지킬 비둘기들과 인간의 아슬아슬하고 찝찝한 공존의 결말은 어떻게 날까? 걸으면서 자꾸 떠오르는 하얀 비둘기의 누운 몸을 떨치려고 애를 썼다. 이제부터는 지하철역에 가면 위를 자꾸 보게 될 것 같다. 다시 철도공사에 전화를 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