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산책하러 나가면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부는 며칠이었다. 그래서 방심했다. 오늘은 다시 습하고 더운 딱 한여름 날씨다. 역시 가을은 아직 멀었나 보다. 올여름은 정말 덥고 길다. 끝나려나 했는데 다시 시작이다. 아침부터 땀이 난다. 지하철역 승강장의 숨 막히는 더위도 다시 시작이다. 아마도 올해는 가을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처럼. 길을 걷다가 무심코 나무를 봤다. 어느새 노란 잎이 조금씩 보이고 바닥에는 떨어진 낙엽도 보인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어머! 가을이야?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가을이 맞았다. 가을의 기준이 날짜일까? 아니면 날씨일까? 날짜라고 한다면 절기상 추석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날씨로 한다면 지금은 가을이 아니다. 아직도 더위는 여름처럼 숨이 막힌다. 날짜도 날씨도 아니라면 가을은 무엇으로 찾아오는 걸까? 바로 단풍과 낙엽으로 찾아온다. 아직 더우니까 단풍도 낙엽도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무는 가을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지키고 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아마 나는 다시 어머! 가을? 하고 감탄할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겨울이 너무 급하게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언제 와도 놀라지 않을 겨절에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언제 가도 아쉽지 않게 우리에게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남기고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