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하고 백일이 지난 후부터 세은은 복직을 했다. 진영이 육아휴직을 쓰고 딸, 수아를 돌보고 있었다. 세은은 도저히 수아를 바라보면서 행복에 겨운 엄마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분만 직후에 수아를 안은 순간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 수아의 얼굴, 오른쪽 볼에 크고 파란 점이 있었다. 아니 그건 점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마치 파도가 치듯 파란 얼룩이 얼굴에서 귀로 넘어가면서 점점 옅어지게 나 있었다. 그건 볼의 반 가까이를 덮고 있는 얼룩이었다. 진짜 바다처럼 에메랄드빛 짙고 예쁜 파란 얼룩이었다. 세은은 일 년은 하겠다고 생각했던 모유수유를 백일도 되기 전에 끝냈다. 그리고 바로 복직신청을 했다. 일을 핑계로 늦게 집에 들어갔다. 실제로 일만 열심히 한 탓에 회사에서는 출산 후에 성과를 많이 내고 있었다. 진영은 수아에게 넘치게 사랑을 줬다. 진영의 눈에도 수아의 점이 보일 텐데도 전혀 그 점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세은이 고집부려서 백일도 안된 아이를 데리고 큰 병원 피부과 데리고 갔다. 병원에서는 아직은 어려서 수술은 힘들다고 했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한다고 해도 성장하는 동안 재발할 수도 있으니까 중학생은 되고 수술은 생각해 보자고 했다. 세은은 절망스러웠다. 한쪽 얼굴 절반을 파도모양 파란 점을 가진 여자 아이라니. 왼쪽, 점이 없는 얼굴이 눈부시게 이쁘지 않았다면 세은이 덜 슬펐을까? 세은은 수아를 안아주거나 챙기지 않았다. 진영이 없을 때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이유식을 챙겨주기는 했지만 안아서 얼굴을 보면서 말하기가 힘들었다. 도저히 자기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살면서 조금도 부족하거나 남을 부러워할 만한 일이 없었던 세은이었다. 지금은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돈이 없어도 얼굴에 파란 점이 없는 아이만 보면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럴수록 세은은 수아를 멀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수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귀하고 소중했다. 그래서 수아를 안을 수가 없었다. 수아에게 젖을 물리는 순간, 수아의 얼굴을 보면 세은은 날카로운 칼이 심장을 빠르게 베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너무 아픈 고통이었다. 누구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딸의 얼굴조차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세은은 새벽에 출근하고 자정이 가까워서 퇴근을 했다. 그럴수록 딸이 보고 싶었지만 고단한 몸에 모성을 묻었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세은의 전화가 울렸다. 진영이었다. 시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일하는 자신에게 전화를 할 정도면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세은은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를 마치고 시아버지는 잠이 들어 있었다. 옆에서 시어머니와와 진영이 걱정스럽게 앉아서 잠든 시아버지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수아는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다. 세은은 수아가 자고 있는 유모차를 들여다보고 남편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저 왔어요. 아버님은 어떠세요?”
“검사결과 나와봐야 알 수 있대.”
진영이 대답했다.
“어디가 안 좋으신 거야?”
“얼마 전부터 아버지가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거나 버스를 잘못 타고 엉뚱한 곳에 가 계신 모양이야. 건망증이려니 나 걱정할까 봐 말 안 하고 계셨대. 그런데 어제는 집을 못 찾아와서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거야. 고속도로 입구에서 헤매고 계신 것을 지나가는 차에서 신고해서 다행히 사고는 안 당했는데 큰일 날 뻔했어. 그래서 머리 쪽 검사를 몇 개 했어.”
“아이고 큰일 날 뻔하셨네. 치매 뭐 그런 거야?”
“결과 나와봐야겠지만 그런 것 같아.”
진영은 세은과 얘기를 나누면서 수아를 살폈다. 잠에서 깨려고 하는지 수아가 뒤척이더니 찡얼거렸다. 진영이 수아를 유모차에서 안아 올렸다. 진영의 품에 안기자 수아가 다시 잠들었다. 세은은 잠든 수아의 등을 토닥였다. 안 본 사이에 수아는 훌쩍 자라 있었다. 돌잔치도 진영이 거의 준비해서 치렀다. 몇 달 뒤면 두 돌이었다. 세은은 수아가 낯설었다. 세은은 수아를 언제나 분만 후에 안았을 때의 모습으로 기억했다. 수아가 이렇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았다. 수아가 자라는 만큼 커지고 있는 파란 점이 두려워서 세은은 수아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세은이 수아의 등을 토닥이고 있는 사이에 시아버님이 깨어났다. 시어머님과 남편이 침대 가까이 다가가면서 시아버님의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수아가 깨어났다. 잠투정을 하는지 수아가 울기 시작했다. 진영이 몸을 움직여서 수아를 달래느라 애를 썼다. 시아버님이 수아를 향해 팔을 뻗었다. 시어머님이 아버님의 몸을 일으켜 앉게 했다. 진영은 수아를 시아버님의 품에 안겨드렸다. 검사에 지친 표정이었던 시아버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얼굴 가득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수아도 할아버지 품이 좋은지 울음을 그치고 방긋방긋 웃었다. 병원이 아니라 호텔에 놀러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시아버님의 검사결과는 치매로 나왔다. 그런데 검사 이후에 인지검사가 정상으로 나와서 다시 검사를 더해보기로 했다. 다시 뇌검사를 하고 다 정상으로 나와서 여러 가지 더 검사를 해야 했다. 결론은 치매가 아니라고 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한 후로 시아버님이 잊어버리거나 정신없어하지 않았다. 퇴원을 하고 나서도 집을 못 찾거나 현관번호를 까먹는 일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짧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부모님 두 분의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여행도 자주 가시고 매일 함께 산책하는 모양이었다. 세은이 출근하고 나면 집으로 와서 진영과 수아와도 시간을 자주 보내는 것 같았다. 세은은 신경 쓰지 않았다. 바쁘게 일하느라 임신 전의 몸무게로 살도 빠져서 외모만으로는 아이를 출산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세은의 드레스룸은 매달 사모은 가방과 액세서리가 늘어갔다. 그렇게 사모은 것들도 세은의 심장을 가르며 지나가는 통증을 없애지 못했다.
수아의 두 돌이 지나고 진영도 복직을 해야 했다. 수아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두 사람은 맞벌이 부부가 되었다. 세은은 수아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영이 일을 그만두고 수아를 키우기를 바랐다. 어린이집에서 얼굴에 점이 없는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기죽을 수아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수아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것도, 데리러 가는 것도 진영이었다. 세은의 이런 모습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진영은 세은보다 수아에 대한 마음으로 세은을 참아냈다. 퇴근 시간인 것도 모르고 일하고 있는 세은에게 진영이 전화를 했다. 도저히 수아를 데리러 갈 수 없을 것 같다며 오늘만 어린이집에 가 달라는 것이었다. 세은은 어떻게든 핑계를 댔지만 수아를 데리러 가야 했다. 어린이집 앞에서 세은은 긴 숨을 쉬었다. 벨을 누르는 손이 떨렸다. 선생님 손을 잡고 수아가 나왔다. 엄마를 보고 수아가 환하게 웃으면서 뛰어왔다. 같이 놀아주지도 않고 차갑기만 한 세은에게 수아는 항상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세은은 수아를 꼭 껴안았다. 하루의 피곤이 가시는 것 같았다. 수아의 얼굴을 볼 때는 몰랐던 편안함에 세은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순간 세은은 놀라서 뒤로 넘어질뻔했다. 열명 정도의 아이들이 자신과 수아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수아가 집에 가려고 하면 매일 이렇게 나와요. 아버님이 오실 때도 매일 그랬어요. 어머님은 오늘 처음이라 놀라셨죠?”
“네? 왜요?”
“아이들이 모두 수아를 좋아해요. 울고 떼쓰던 애들도 수아가 옆에 가서 손을 잡아주면 울음을 그치고 수아랑 재미있게 놀아요. 수아는 정말 보물 같은 아이예요.”
“기분 좋은 말씀이네요. 다른 아이가 집에 갈 때도 아이들이 배웅을 나오나요?”
“아니요. 다른 아이들을 배웅하는 아이는 거의 없어요. 수아가 저희 어린이집에서 최고 인기 있는 친구라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세은은 수아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나왔다. 파란 점 때문에 친구들이 싫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보물 같은 아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수아야 어린이집 어때? 재미있어?”
“응. 좋아.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최고야.”
“다행이네. 우리 수아 대단하네.”
세은은 수아와 잡은 손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수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면서 파도 같은 점을 볼 자신은 없었지만 수아가 불행하게 자랄 것 같지 않아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세은은 수아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수아가 여섯 살이 되었다. 그동안 세은과 수아가 함께 여행을 간 적도 함께 시간을 보낸 것도 거의 없었다. 진영이 주말마다 박물관이다 캠핑장이다 데리고 다녔지만 세은은 함께 가지 않았다. 낯선 사람, 낯선 곳에서 수아에게 집중될 시선이 싫어서였다. 걱정했던 대로 수아가 자라는 만큼 점도 커졌다. 색깔도 더 진해지는 것 같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수아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는 거였다.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이 모두 수아를 좋아한다고 했다. 유치원에 가서도 비슷했다. 여전히 수아와 노는 아이들은 수아를 좋아했고, 사소한 말다툼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수아에 대한 세은의 마음도 많이 편해졌다. 그래서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었다. 엄마와의 첫 여행에 수아는 정말 행복해했다. 정말 엄마도 같이 가냐고 묻고 또 물었다. 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들떠서 재잘대던 수아가 잠이 들었다. 진영도 오랜만에 세은과 떠나는 여행이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세은은 새삼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엄마, 아내였다는 생각을 했다. 도무지 인생에서 부족함이라고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에게 수아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딸과 함께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세은은 포기하고 살았다. 세은이 받을 상처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받을 시선이 싫어서였다. 언제나 예쁘고 화려하고 밝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복을 막을 것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수아의 파란 점은 세은에게 불행이고 부끄러움이었다. 여섯 살이 되기까지 수아는 누구에게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수아에게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고 수아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했다. 수아와 진영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뒷자리에서 잠든 수아를 돌아보았다. 오른쪽 볼에 있는 파란 점에 세은은 다시 심장을 베이고 말았다. 앞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세은은 수아와는 다르게 도무지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면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
진영의 차가 휴게소로 들어갔다. 어느새 잠에서 깬 수아가 휴게소를 보고 좋아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간식거리를 고르면서 수아는 날아갈 듯 폴짝폴짝 뛰었다. 그런 수아의 뒷모습을 세은은 행복한 얼굴로 바라봤다. 간식을 사들고 차로 가던 세은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떨어뜨렸다. 차에서 내려 휴게소로 가려고 세은의 방향으로 걸어오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진 것을 보고 놀라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세은은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차 쪽으로 걸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세은은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세은은 놀라서 달려갔다. 수아가 쓰러진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신고를 하거나 심폐소생술 하는 사람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수아는 말없이 쓰러진 사람의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세은은 다음 순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쓰러졌던 사람이 깨어나서 일어난 것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면서 괜찮냐고 묻고 있었다. 깨어난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수아는 세은을 발견하자 엄마 하면서 달려왔다. 여섯 살 해맑은 웃음을 웃으면서 달려오는 수아를 세은은 두 팔로 꼭 안아주었다.
“수아야 저 사람 어떻게 깨어났어?”
세은이 물었다. 수아는 세은의 손을 잡고 차를 향해 걸으면서 말했다.
“몰라. 왜 일어났는지 모르는데.”
“그럼 왜 그 사람 손 잡았어.”
“그냥 아파 보여서 잡았어.”
뒤늦게 간식을 사들고 차로 걸어오던 진영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녀의 모습을 보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세은은 부족함이라고는 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