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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02. 2021

달래의 추억

어린 시절 이른 봄에 나는  달래를 캐러 다니곤 했다. 매년 같은 장소에 달래가 있었다. 작년에 내가 야무지게 캤는데 올해 가보면 다시 달래가 대머리 아저씨 머리카락처럼 듬성듬성 길게 나있다. 달래는 반드시 뿌리까지 캐야 한다. 달래는 잎과 뿌리를 함께 먹어야 향이 좋은 채소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달래를 캔 기억은 있지만 먹은 기억이 없다. 내가 캔 달래를 엄마가 어떻게 요리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유난스럽게 나물 캐기를 좋아한다. 40이 넘은 지금도 들에서 산에서 쑥이나 냉이를 보면 캐고 싶어서 심장이 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들을 캐지 않는다. 나는 쑥이나 냉이를 캐는 것만 좋아하고 먹는 것은 싫어한다. 봄나물들은 유독 향기가 진해서 먹을 때도 향기에 다른 음식들이 묻히지만 먹고 나서도 입안에서 그 향기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봄나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래도 이른 봄에 언 땅을 밀고 나온 쑥이나 달래의 보드랍고 은은한 향기를 코로 느끼는 것은 겨울 동안 움츠린 심장을 펴고 맡고 싶게 하는 향이다.


시골에서 살던 내가 도시에 와서 처음 충격을 받은 것은 달래나 쑥, 냉이 같은 것들을 돈 주고 사 먹는 것이었다. 시골에서는 산에 들에 주인도 없이 있는 나물들을 이삼천 원씩 주고 사 먹다니... 그것도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양을. 그런 내가 결혼을 한 후에는 까닭 모를 향수에 봄나물을 살 때가 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봄나물을 먹지 않는다.


12살 아이는 입맛이 시골 어르신이다. 6살 때부터 호박잎 쌈을 야무지게 싸 먹고는 맛있다 로 마무리하는 아이다. 아이는 달래만 보면 달래장이 먹고 싶다고 한다. 번거로운 손질 탓에 나는 망설이지만 결국은 살 밖에 없다.


달래는 손질이 까다롭다. 뿌리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하나하나 손질한다. 뿌리 근처에 있는 흙이나 작은 지푸라기 같은 것들을 일일이 손질하고 시든 잎을 다듬는다. 그리고 식초물에 담가 둔다. 생으로 먹어야 향이 진한 달래는 씻을 때 꼼꼼하게 씻어야 한다. 그렇게 씻은 달래를 쫑쫑 썰어서 그릇에 담고 진간장과 고춧가루, 통깨와 참기름 등등의 양념을 넣고 섞어준다. 아들은 달래를 듬뿍 떠서 갓 지은 녹두밥에 쓱쓱 비벼먹는다.

맛있다!

아들이 말한다.


밥 한 공기를 비운 아들은 한 그릇 더 , 똑같은 방법으로 비우신다. 밥을 먹는 동안 아들의 표정이 행복하다. 이렇게 달래장에 밥 두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아들은 멸치볶음, 콩나물 무침, 김치를 차례로 비운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 년을 답답하게 하는 동안에도 아들은 소소한 시골밥상 한 그릇에 언제나 엄지 척해준다. 코로나 따위 달래장으로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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