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탁에 거의 매일 올리는 메뉴(?)가 토마토다. 토마토를 두고 과일이 아니라 야채라고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그저 반찬이다. 우리 가족들은 토마토를 정말 좋아한다. 대부분의 야채를 맹목적으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중 가장 많이, 가장 자주 먹는 것이 토마토가 아닐까 한다.
토마토가 없으면 나는 토스트를 먹기가 힘이 든다. 갓 구운 식빵에 아주 살짝 딸기잼을 바른다. 그리고 그위에 얇게 자른 토마토를 올리고 다시 식빵을 올린다. 한입에 앙 베어 먹으면 빵이 주는 먹먹함을 토마토가 달래준다. 그래서 토마토가 떨어지면 나는 식빵이 있어도 굽지 않는다.
토마토는 모든 반찬과 잘 어울리지만 그중 제일은 삼겹살이다. 삼겹살을 구우면 우리는 삼겹살 양보다 훨씬 많은 야채를 준비한다. 상추와 깻잎은 기본, 아이의 최애 야채인 쑥갓이 있으면 아이는 일단 쑥갓을 먼저 든다.
"엄마 조선 태종은 쑥갓을 안 먹었대요. 알고 계셨어요?"
로 시작된 쑥갓에 대한 역사공부는 덤이다. 물론 나는 태종의 야채 취향에 관심이 없었고, 야채 취향까지 기록한 우리 선조들의 섬세함만은 인정한다.
각종 야채와 더불어 토마토를 준비한다. 커다란 토마토는 작게 잘라준다. 방울토마토를 준비할 때는 모든 반찬과 삼겹살이 준비된 후에 식탁에 올려야 한다. 안 그러면 식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방울토마토 한 접시 정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이와 남편은 오며 가며 식탁의 토마토를 순삭 해 버린다. 삼겹살과 구운 마늘과 손이 많이 가지만 아이가 좋아해서 여름마다 만드는 깻잎장아찌와 역시 남편이 좋아해서 내 허리와 바꾼 곰취장아찌까지 식탁에 올리고 각자의 취향대로 먹기 시작한다. 삼겹살에 토마토를 곁들이면 느끼할 수도 있는 삼겹살이 상큼해진다. 마치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개운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익히거나 기름과 함께 먹어야 영양섭취가 좋아지는 토마토는 삼겹살과 딱이다.
어릴 때 엄마는 고추밭에 한 줄은 토마토를 심었다. 여름 장마가 오면 익은 토마토는 비 비린내를 품으며 벌어지고 썩어버리지만 그 외에 토마토는 기르기 쉽고 편한 간식이다. 우리는 고추밭에서 김을 매고 나서 집으로 갈 때 빨간 토마토를 따서 먹으면서 걸었다. 토마토를 옷에 쓱 닦아서 꼭지 반대쪽을 한입 베어 문다. 그리고 토마토 국물을 먼저 쪽쪽 빨아먹는다. 그러지 않으면 앞 옷에 토마토 씨앗 몇 개를 심게 된다. 여기서 싹이 나서 토마토가 열리면 좋겠지만 보통은 그냥 지저분한 아이가 되고 만다. 국물이 없는 토마토는 이제 여유 있게 베어 먹으면 된다. 토마토는 과육도 맛있다. 적당히 파근하고 적당히 상큼한 맛은 노동에 대한 달콤한 보상이다. 토마토 꽁지에 남은 것까지 야무지게 먹다 보면 토마토 잎의 보송하고 푸른 향내가 손에 묻는다. 토마토 잎에서 나는 향기를 맡고 있으면 토마토 밭에 있는 것 같다.
간식이 늘 부족했던 우리 형제들은 계절에 따라 산과 들에서 간식을 따서 먹었다. 늦봄에는 오디와 산앵두를, 늦여름에는 머루와 다래를, 늦가을에는 귀염 열매를 따서 먹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때의 우리가 얼마나 간식에 허기졌는지 알게 되었다. 산에 산딸기도 보리수도 그 외 달콤한 간식이 없는 날에 우리는 토마토를 따기 위해 밭으로 갔다. 빨간 토마토가 없어서 주황빛이 살짝 도는 토마토를 따서 집으로 오는데 두 살 많은 동네 오빠가 놀렸다. 야 먹을 게 없어서 안 익은 토마토를 따먹냐? 나는 부끄러웠다. 나중에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보고 나는 그때의 나를 생각했다. 바보야 토마토는 초록색일 때도 먹는 거야. 구워서 먹는 거라고! 외치고 싶었다. 초록색 방울토마토만 장아찌로 만들 수 있어. 그것도 모르지 바보야!
40년이 넘게 먹어 온 토마토! 빨갛고 예쁜 토마토! 맛있어서 매일 먹는 건지 매일 먹어서 맛있는 건지. 토마토! 넌 정말 불멸의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