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의 차가 건물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올 무렵 전화가 울렸다. 지호가 피자 먹고 싶어 한다며 집 근처 매장에서 포장해 오면 좋겠다는 남편의 전화였다. 지호 핑계를 대고 있지만 남편의 생각일 거라는 것을 수영은 바로 알았다. 아파트 카페에 자주 올라오는 피자집 얘기를 남편이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이 아닌데도 맛이 좋고 친절하다며 자주 아파트 카페에 글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수영도 가끔 커피를 마시는 지인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피자를 즐기지 않는 수영은 그 말을 무시했지만 피자나 빵을 즐기는 남편에게는 솔깃한 정보였던 모양이었다. 자신이 피자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도 피자를 포장해 오라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 그 피자가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수영은 이번 한 번은 남편의 뜻대로 하기로 했다. 수영은 남편이 보내준 피자가게 전화번호를 눌러 포장주문을 했다. 자신은 집에 가는 길에 김밥을 사갈 생각을 하며 라디오 채널을 바꿨다. 저녁시간의 라디오에서는 퇴근길에 막히는 도로에 대한 정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수영이 피부관리 때문에 다니는 피부과에서 집까지는 십오 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수영이 방금 나온 건물의 피부과에 다닌 지 2년째로 접어들었다. 수영의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가 저녁해를 받아 빛이 났다. 단정하게 자른 검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다. 수영은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피부관리뿐 아니라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만큼 군살 하나 없을 만큼 체중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렇게 자기 관리에 철저한 것은 수영의 성향 때문이 아니다. 살찌고 추해진 자신을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이유가 더 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 쓰지 않은 모습을 남편에게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수영은 늘 동동거리며 살아왔다. 남편은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 눈에는 항상 처음 만났을 때처럼 예쁘다고 했지만 수영은 남편의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남편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수영이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살찌고 기미가 잔뜩 생긴 수영을 본다면 남편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실물을 보지 않았을 때는 한없이 너그러운 법이다. 삼십 대 초반의 수영에게는 아직 젊은 생기와 시들지 않은 외모가 있었다. 십 대 시절부터 외모에 대해 집착했던 수영에게 아이를 출산한 후에 변한 모습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다. 다시 출산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운동과 식단, 관리에 시간과 돈을 아까지 않으면서도 딸 지호를 챙기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임신한 순간부터 태교와 출산, 모유수유까지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려고 해 왔다. 아이에게 먹이는 음식 하나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 탓에 얼마 전까지도 수영이 신경 써서 만든 음식만 지호에게 먹였다. 아이와 자신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지금의 생활에 수영은 불만이 없었다. 남편의 적지 않은 연봉이 수영에게는 안정적인 행복을 보장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이런 삶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수영에게는 꼭 지켜야 하는 행복이었다.
피자가게 앞에는 두 대의 배달 오토바이가 서 있었다. 저녁시간이라 배달주문이 많은 모양이었다. 차를 세우고 수영은 가게로 들어섰다. 가게 사장인 듯한 여자가 인사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배달기사인듯한 남자 두 명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사장이 피자를 포장한 봉투 두 개를 들고 뒤쪽 주방에서 나와 기사에게 봉투를 건넸다. 남자들은 봉투의 주소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
“포장주문 가지러 왔는데요.”
“네. 거의 다 됐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사장이 이렇게 말하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사장을 기다리면서 수영은 가게를 둘러봤다. 테이블이 두세 개 있었지만 주로 배달이 많은 것 같았다. 매장 손님은 한 테이블도 없었다. 매장은 작은 카페처럼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테이블마다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는데 하트 모양의 다육이화분이 앙증맞았다. 가게를 둘러보는 동안 배달기사인 듯한 남자가 들어왔다. 주방에서 사장이 피자봉투를 들고 나오면서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피자봉투를 수영에게 내밀었다. 봉투를 받아 들고 수영은 카드를 건넸다. 카드를 받아 들던 사장이 수영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수영은 불쾌해서 고개를 돌렸다.
“혹시 수영이? 혹시 수영이 아니야?”
“네? 내 이름을 어떻게?”
순간 수영은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차마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서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 민주야 김민주. 기억 안 나?”
“어? 어. 민주 니가 어떻게......”
수영은 자기도 모르게 긍정의 답을 하고 말았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니 자기는 수영이 아니라고 말해야 했는데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말이 나오고 말았다. 순간 수영은 피자를 든 봉투를 던지고 나가고 싶었다.
“수영아 이게 얼마만이야. 이 동네 살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너 좋아 보인다.”
“그... 그래. 나 갈게.”
“수영아 잠깐만. 우리 오랜만인데 좀 더 얘기하자. 나 금방 이 배달건만 만들고 나올게.”
“아니야. 바빠서 가볼게.”
수영은 더 말을 하려는 민주를 뒤로 하고 가게를 나왔다. 놀라서 굳은 몸이 뻣뻣하게 움직였다. 목 뒤쪽이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저릿했다. 어느새 식은땀이 등을 적시고 내려갔다. 김밥을 사갈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수영은 집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를 하고도 바로 내리지 못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남편의 전화였다. 차가 들어왔다는 알림이 울렸는데도 오지 않으니 전화를 한 것이리라. 수영은 전화를 받지 않고 피자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 바닥을 밟은 발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역시 소문대로네. 지호야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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